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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10.01 먼저 보낸 사람의 이런 저런 생각
  2. 2018.01.22 애증의 동료
  3. 2018.01.16 코딩야학
  4. 2017.12.29 20171228
  5. 2017.11.24 만 30세가 된 밤, 프레이리를 만나다
  6. 2017.10.24 '행복'을 의심하기 20171022_SUN
  7. 2017.10.24 안전과 도전 20171021
  8. 2017.10.21 결국 또 병을 얻음 20171019-20
  9. 2017.10.21 편안했던 기초 상담 20171018
  10. 2017.10.17 화요일은 꽃친과 20171017
2018. 7. 11. 

D-33 


드디어 남편을 먼저 보냈다. 다행히 저 세상으로 먼저 보낸 것은 아니고 러시아로 보냈다. 


왜 둘이 같이 떠나지 않고 남편이 한 달 먼저 떠나냐는 질문을 정말 많이 받았다. 질문을 받기 전에는 전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질문을 받고 보니 그러게 왜 그랬나 싶다.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강력한 한 가지의 이유 보다는 자잘한 여러가지 이유가 합쳐져서 이런 결정을 하게 되었다. 신혼여행 때 남편은 파리를 가고 싶어했는데 내가 반대했더니 자기 뜻을 접으면서 그럼 나중에 자기 혼자 파리를 보내달라고 하더라. 그럴 일이 있겠나 싶어서 알겠다고 했는데 그럴 일이 꽤 빨리 생긴 듯 하다. 파리 뿐만이 아니라 이미 유럽여행을 두 번이나 한 나에 비해 가보지 못한 도시들이 많은 남편이 어차피 사직하고 쉬고 있는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일찍 가서 먼저 여행하고 있기로 했다. 나는 아직 휴직이 시작되려면 한 달이 더 남았고, 이미 여행한 나라들을 또 가기 보다는 북유럽 나라들의 교육현장을 탐방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리고 또 공식적으로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솔직한 내 마음 중에 하나는, 그냥 재밌을 것 같아서이다. 뭐라도 좀 독특하게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고 남편과 6주 동안 떨어져 있다가 만나면 어떤 기분일까 궁금하기도 하고, 각자 여행하다가 만나면 할 이야기도 더 많을 것 같고 그래서! 


그런데 이렇게 시차를 두고 출발하기로 한 결정이 참 많은 것에 영향을 미쳤다. 한달 전부터 남편은 본격적인 출국 모드에 들어갔다. 매일매일의 체크리스트를 만들어서 빼놓지 않고 준비하기 위해 애썼다. 그런 그에 비해 나는 일 하느라 바쁘기도 했지만 마치 영영 여행은 떠나지도 않을 사람인 것처럼 지냈다. 애써 그의 모드에 맞춰보려고 했지만 당장 내 눈 앞에는 여행가기 전 한국에서 잘 마쳐야 할 일들이 현재진행형으로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쉽지 않았다. 


몇 주 전 미국 출장을 위해 비행기에 타고 멍하니 생각에 잠겨있다보니 지난 6개월 동안 남편의 생활, 그리고 그 마음이 어땠을지 내가 하나도 이해하고 있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미안했다. 누군가는 일 안하고 쉬고 있으니 좋겠다고 말하겠지만 생산성 신화의 나라 대한민국에서 쉰다는 게 어디 그리 말 만큼 쉬운 일이겠는가. 몸은 쉬어도 내적갈등은 심했을거다. 어디 말할 데도 없고, 가장 가까이 있다는 아내도 잘 안 들어주고. 심지어 출근 안하니 집안일을 좀 더 많이 해달라는 무언의 압박도 주고. 


출장을 다녀오니 어느덧 남편의 출국이 2주 남짓 남아있었다. 시차적응이 안되어서 초저녁부터 잠에 골아 떨어지는 생활을 1주일 정도 하고, 이제 1년 동안 보지 못할 양가 가족들과 한 주씩 여행을 다녀오니 내 남편을 떠나보낼 날이 정말 코앞이었다. 마지막 3일을 함께 보내기 위해 부랴부랴 휴가를 냈다. 딱히 나랑 할 일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심지어 사람들 만나러 다니느라 정작 나를 혼자 둔 시간이 많았지만 남편에게는 정말 오랜만에 필요할 때 내가 언제든 응답가능한 상황이라는게 좋지 않았을까 싶다. 


작별이 이렇게 간단한가. 배낭 매고 출국장 앞에서 사진 몇 장 함께 찍고 그는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공항버스에서 긴장이 풀리고 이런 저런 생각이 떠오른다. 남편의 카운트다운이 끝나고 나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나의 여행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지만 우리 둘의 여행은 시작됐다는 사실이 묘하게 모순적인 느낌을 주었다. 작년 4월 무심코 던진 말로부터 시작된 어찌보면 터무니 없는 여정이 진짜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어떤 설렘과 각오가 있는게 아니라 약간 어리둥절하다. 


시엄마와 같이 쇼핑을 하고 차를 마시고 조카들을 만나고 저녁까지 먹을 뒤 집에 돌아왔다. 집 문을 여니 기분이 멍하다. 나는 어제와 다름 없이 이 집에 있는데, 이제 그는 없다. 여름 수련회 가듯이 몇 일 뒤에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365일 이상 들어오지 않는다. 30일 뒤에는 나도 오랫동안 이 집에 들어오지 않을 준비를 마치고 그를 뒤따라 가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 두렵다. 


우리는, 남편은, 나는 진짜 이걸 원한게 맞았을까? 


지난 몇 일 동안 그를 보면서 뭔가에 쫓기는 사람 같고, 내가 억지로 그를 이 상황에 몰아 넣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두려울 것이다. 


인천공항에서 헤어진 지 약 10시간 만에 연락이 왔다. 좀 고생을 하긴 했지만 첫번째 도시의 숙소에 잘 도착했다고 한다. 기분이 어떠냐고 했더니, 솔직하게 말해도 되냐면서 ‘내가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나’ 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아하하 하고 웃어 넘겼지만 가슴이 철렁했다. 우리는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인가? 완전히 잘못 맨 단추라는 것이 있을까? 집 문을 열며 느낀 심란함이 더 증폭됐다. 지금 블라디보스톡에 함께 있었다면 ‘우리 지금 뭐한거야?’, ‘잘못되는 일이란 없을거야’하며 서로 이야기로 풀었겠지만 지금은 그의 생각을 상세히 알 길이 없으니 더 불안하다. 


뭔가 좀 비장해진다. 늘 이게 별 일이 아닌 것처럼 생각하고 대단하다고 하는 주위 사람들에게 별 거 아닌 것처럼 대답하곤 했지만 이게 정말 별 일이 아닌게 아니고, 큰 용기와 많은 준비가 필요한 일이고 무엇보다도 삶의 태도와 방식을 바꾸는 결심이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모든 사태가 다 벌어지고 난 지금에서야 실감한다. 


나는 원래 이렇게 모든 일이 벌어진 뒤에야 의미를 느끼는 사람이지만, 이런 각오와 결심, 두려움과 긴장이 발생하리라는 것을 미리 예측하는 능력을 가진 남편은 장기여행 아이디어가 나오고 결정되고 추진되는 동안 얼마나 많이 두려웠을까? 그에게는 씩씩한 내가 마치 모든 것을 다 알고 이겨낸 용기가 있는 사람으로 보였을 것이다. 나는 아직 두려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을 뿐인데. 그런데 저질러 버렸다. 이제 어쩌지?! 


침대에 누워 한참을 뒤척였다. 심란해지자면 한 없이 심란해질 수 있는 문제. 평소라면 남편에게 징징거릴 수라도 있겠지만 지금은 들어줄 사람도 없다. 나 스스로 내 마음을 달래지 않는 이상 누구도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씩씩한 생각이 올라온다. 


시작이야 어떻게 됐든 무슨 상관인가. 우리의 여행 동기가 말이 되는지 안되는지 누가 판단하겠는가. 이 시간과 돈을 쓸 만큼 이 여행이 중요한지, 타당한지 우리 스스로만 설득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타인에게 인정받을 만한 이유인지에 더 신경을 쓴 것은 아닌가 싶다. 


즐기자. 잘못 보낸 시간이란 없겠지. 즐기는 것만이 이 시간을 옳게 만드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게 되니 더 이상 지나간 일은 생각하지 않게 된다. 다가올 시간에 더 집중할 수 있다. 


지난 1년 나는 어떻게 살았는가? 일하고 살고 배웠다. 여행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만나고 대화하고 배우고. 떠돌며 기도하며 깊이 들어가는 시간이 되길 바라고 다짐하게 된다.



2018. 10. 1. 22:58. RSS feed. came from other blogs. Leave a Respo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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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즈돔을 다닐 때 내가 제일 듣기 싫었던 말은 동료였다. 아무리 스타트업이고 수평적인 관계로 일하지만 엄연히 누군가는 사주이고 나는 고용된 직원인데 동료라는 말로 그 구조를 무효화시키는 것이 무책임하다고 생각했다. 


뭔가 회사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을 때 "예지씨는 동료예요, 직원이에요? 동료이고 싶으면 동료로 대접해주고 직원이고 싶으면 직원으로 대우할게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가 그 단어에 대한 혐오감이 가장 피크를 찍었던 때라고 기억한다. 그리고 위즈돔을 떠날 때까지 그 부정적인 인식은 바뀌지 않았고 그 이후로는 동료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 환경에서 일하고 있긴 하지만 가끔다가 동료라는 단어를 들으면 자동적으로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느낌을 받는다. 


동료라는 건 뭘까? 그 단어를 미워하는 마음에는 졸업 직후 마땅히 뜻을 세우지 못하고 어리버리했던 나를 회사로 끌어들이고는 책임은 져주지 못했던 사람들에 대한 원망이 담겨있다. 그러나 이 감정이 단순한 원망을 넘어서서 나를 아득한 무력감에 빠지게 만드는 더 큰 이유는 자립할 수 없었던 다른 누군가를 위즈돔에 끌어들이고 책임지지 못한 내 모습이 자꾸 생각나기 때문이다. 내 머리속에서 조차 그들 앞에 나는 떳떳할 수가 없었다. 


위즈돔은 결국 서비스를 종료했다. 그리고 지난 토요일 그 동안 위즈돔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솔직히 모임에 가기 직전까지 마음이 많이 심란했다. 가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하기도 했다. 문 닫은게 뭐 좋은 일이라고 이렇게 모여서 먹고 마시자고 하나 싶기도 했고 내가 남몰래 원망한 사람들, 그리고 나를 원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사람들을 어떤 표정으로 마주해야 하나 정말 감이 잡히질 않았다. 


내가 내린 결론은 마지막까지 남아서 회사를 지켰던 사람들의 표정을 따라가자는 것이었다. 그들이 웃으면 나도 마음을 놓고 웃으며 우리의 한 시절을 떠나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회사의 마지막을 지켰던 그들은 그 날도 여전히 바쁘게 움직이며 음식을, 물건을, 사람들을 챙겼다. 다행히 발걸음이 가벼워보였다. 


내 마음도 생각보다 좋았다. 옛날 사진들이 인화되어 있었다. 언제 이런 사진을 찍은 적이 있었나 가물가물했다. 사진 속의 내 모습, 우리들의 모습을 보니 갑자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위즈돔에서 일하는 동안 항상 고민스러웠고, 갈팡질팡했고, 잘 될 수 없을거라고 생각했었던 것만 같은데, 사진 속의 나는 꽤 즐거워보였다. 처음부터 이 사업은 잘 될 수 없는 사업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일에 청춘을 바친 우리는 바보 같은 사람들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2~3년 전의 그 시간, 이 사진 속 그 장소에 우리가 함께 있었다는 것은 썩 소중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동료라는 것은 그런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솔직히 지금 다시 그 상황에 처하면 여전히 나는 동료이기를 강요당하는 상황에 화가 날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나고나니 고맙고 미안하고 소중하다. 지나간 것은 다 아름답다는 보편 진리의 한 줄기일 수도 있겠다. 



2018. 1. 22. 22:26. RSS feed. came from other blogs. Leave a Respo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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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딩야학 3기가 진행된다는 소식을 듣고 엉겁결에 올라탔다. 이제 생각해보니 1년차 사회학도인 남동생이 복수전공으로 컴퓨터 공학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매우 흥미롭게 들었던 까닭인 것 같다. 

나름대로 초딩 때부터 펫게임이라는 서비스를 통해 html을 독학하고(배경 음악 깔고 꽃비 내리는 자바스크립트 쓰고 그랬더랬다.) 나모웹에디터로 내 홈페이지도 만들어서 운영해보고 대학생 때는 공대생들의 기피과목중 하나였던 공학전자계산(줄여서 공전계)를 A+ 받았던 나름 코딩 우수생이었다. 

펫게임도 문을 닫고, 건축과 커리큘럼에는 더이상 컴퓨터 과목이 없었다. 홈페이지는 나도 모르는 새에 언젠가 없어졌겠지? 

아무튼 예전부터 관심을 갖고 있었던 생활코딩에 참여한다는 것에 들떠서 뭘 배우는 코스인지도 모르고 무작정 신청한 뒤 정신을 차려보니 html 강의였다. 신청만 해두고 또 빈둥거리다가 종강 이틀 전에 벼락치기로 몰아서 듣기 신공을 발휘하는 중이다. 그렇다, 아직 몇 강의 남았다. 그래도 오랜만에 뭔가를 공부한다는 기분이 참 좋다. 남편도 내가 뭔가 집중해서 공부하는 모습은 처음 봤다며, 멋있다고 하네. 나 원래 멋있거든? 

사실 이번 코스에서 배운 내용은 아주 쉬운 내용들이라서 html에 대한 책이 있다면 첫 1/10 정도의 분량이 아닐까 싶다. 분량으로 치자면 그 정도이지만 이고잉님이 '공부'의 본질에 대해서 아주 깊게 고민하고 만든 콘텐츠이기 때문에 쉽지만 가장 중요한, 더군다나 응용으로 가기 위한 중요함이 아니라 그 자체의 중요함을 품고 있는 내용들이어서 단 몇 시간 강의를 들었을 뿐인데 웹을 지배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뿜뿜한다. 

그러면서 또 요망한 아이디어 하나가 생각이 났는데 말이다. 방랑벽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어디서든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돈을 벌 수 있는 프리랜서 일을 갈망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가장 쉽게 생각하는 것이 글 쓰는 일일 것이다. 요즘 글 못 쓰는 사람은 없으니까 왠지 나도 글을 써서 돈을 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지.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보면 글은 누구나 쓸 수 있기 때문에 엥간히 잘 쓰지 않고서는 돈을 벌 수 없다. 그래서인지 나는 글 써서 돈 번다는 것은 나와 정말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런데 html을 아주 코딱지만큼 배우면서 말이지.. 왠지 내가 뭔가 유비쿼터스 좝을 갖는다면 그것은 글쓰기보다는 웹사이트 만들기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를 차릴 정도는 아니라도 그냥 소일거리 삼아서 용돈은 벌 수 있지 않을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가 웹프로그래밍을 얼마나 잘 하느냐가 아니다. 글쓰기보다 웹프로그래밍이 쉽다는 생각을 왜 하지 못했을까라는 것이다. 혁명적인 생각의 전환!

아이디어라는 것은 항상 맨 처음 생각했을 때가 가장 빛나는 법이다. 내가 늘 경험하는 일이기 때문에 잘 안다. 이 아이디어도 얼마 지나지 않아 금새 빛이 바래겠지. 하지만 또 하나의 진리는 아이디어가 빛이 바랠 때쯤 사소한 실천 하나를 하면 다시 심폐소생이 된다는 것이다. 디테일 하나를 갖추면 그 아이디어는 한 발을 더 내딛고 '뭔가'가 된다. 

이제야 태그 10개 정도를 배운 내가 웹프로그래밍으로 돈을 번다는 것이 아주 허무맹랑한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한 번 내뱉어본다. 옛다 툭. 

여행을 하는 동안 열악한 환경의 단체, 기업들 홈페이지 개보수 해주면서 하루 저녁 맛난 거 먹을 수 있는 돈 정도 벌 수 있음 좋겠다. 아님 예쁜 공예품을 하나 더 살 수 있어도 좋겠고! 

2018. 1. 16. 23:09. RSS feed. came from other blogs. Leave a Respo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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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힘을 쭈욱 빼야 하는 날이었는데, 힘이 줘야 하는 일들이 있었다. 오전을 쉬고 나갔는데도 이상하게 힘이 들더라. 5시 경에는 의자에 앉아 꿈뻑꿈뻑 졸기까지 했다. 결국 잠시 엎드렸다가.

일의 별 진척도 없이 시간만 흘려보냈다. 남편을 기다리며 전화 너머로 짜증을 낼락말락하는 경계선에서 아슬아슬하게 버텼다. 

우울했다. 우울하고 싶었다. 영영 이별은 아니지만 약속된 시간은 끝난거니까. 생각에 잠길 시간이 필요했다라는 느낌이 그제야 밀려왔다. 

'좋게 나쁘게 좋게'라는 제목이 비스듬히 적힌, 친구가 낸 시집을 남편이 들고왔다. 책에 눈길을 준 지가 언제였나 싶다. 글이 참 좋았다. 나는 글을 많이 읽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시는 쉬운 편이 낫다. '이렇게 좋은 시도 신문춘예에 등단이 안되다니' 생각했다. 

김소연 시인이 추천의 글을 쓰셨다. 빨리 추천사를 읽고 싶어서 서둘러 몇 작품을 읽다가 결국 절반도 못 읽고 추천사로 건너뛰었다. 따스하고 힘이 있었다. 사실 김소연 시인과는 한 마디도 나눠본 적이 없지만 어째 친근하고 의지가 된다. 읽다가 눈물이 왈칵 날 뻔 했다. 그녀의 삶은 잘 알지 못하지만 그녀의 글은 안다라고 적은 대목이었던가. 글 때문인지,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생각나는 아이들 모습, 목소리 때문인지 사실 잘 모르겠다. 

내일은, 모레는, 힘을 좀 더 빼야지. 올 한 해 잘 마무리 하려면. 

2017. 12. 29. 01:40. RSS feed. came from other blogs. Leave a Respo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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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30세가 되었다고 해서 거창하게 글을 남기고 싶은 생각은 없었으나, 우연히 감기에 걸려 하루 종일 집에서 자면서 쉬는 바람에 새벽이 되도록 잠이 오질 않아 결국 한 줄 글을 남기게 되었다.


파울루 프레이리의 '페다고지'를 드디어 펼쳤다. '페'로 시작하는 네 글자 단어라서 페미니즘과 비슷해 보이기도 하고, 전혀 그 어원을 짐작하기 어려운 단어이기도 하며, 피스모모에서 '우리는 페다고지를 표방한다'라고 선언해서 더 멋져 보이기도 한, 그러나 무슨 내용인지는 전혀 알 수 없었던 페다고지. 

오늘도 결국 본론으로 들어가지는 못한 채 30주년 기념판에 붙인 서문만 읽었다. 페다고지의 원 제목은 '피억압자들의 교육학'이라고 한다. 브라질 빈민가 출신인 파울루 프레이리는 평생을 교육을 통한 빈민해방에 힘을 쏟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사상은 제3세계 뿐만 아니라 더 기술화된 사회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했다고 하는데, 어서 본론을 읽어보고 싶다!! 파커 팔머에 이어 나의 위대한 스승님이 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꽃친을 운영하면서 고민되었던 많은 부분들에 나름대로 기준을 세울 수 있도록, 최소한 제대로 된 고민의 언어를 가질 수 있도록 도움을 받을 것 같다.

뒤늦게 이렇게 교육학이 재밌을 줄 몰랐다. 뭐 제대로 공부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짜여진 커리큘럼을 따라가기 보다는 내가 갈증을 느끼는 지점에서 하나씩 배워가는 게 더 감격적이다. 역시 배움의 가장 좋은 원동력은 필요다. 배움에는 때가 있다는 말에 반대하면서 동의한다. 배움의 때는 목마를 때다! 

그나저나 새벽 4시가 다 되어 간다. 내일 잘 일어날 수 있겠지. 


잊기 전에 메모해두고 싶은 아이디어가 있다. 책을 읽다가 문득 생각난 것인데, 꽃친의 1년은 '경험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UX와 비슷한 부분이 있을까? 하지만 일반 경험디자인과 다른 점은 디자이너가 모두 정하는 것이 아니라 참여자와 함께 만들어나간다는 점이겠지. 이 부분을 좀 더 정리하면 꽃친을 운영하는데도 유용할 뿐 아니라 꽃친과 비슷한 커뮤니티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아직 그런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이 하나도 없는데도 나는 틈틈이 어떻게 노하우를 전수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다. 어차피 꽃친에서 감당할 수 있는 아이들은 1년에 10명 내외이다. 우리의 운동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민들레 씨가 날아가듯이 여러 곳에 생각이 퍼져서 자라나야 한다. 미리 잘 정리해두었다가 때가 오면 멋지게 전달해야지. 

2017. 11. 24. 03:53. RSS feed. came from other blogs. Leave a Respo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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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사이좋게 교회 가는 길. 하지만 희한하게도 이 길이 종종 논쟁의 길, 싸움의 길이 되기도 한다. 오늘은 그보다 조금 강도가 약한 건설적 토론의 길이었다. 주제는 도대체 행복이라는 게 뭐냐. 어쩌다 시작된 토론인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남편의 주장은 '행복'이라는 것은 근대에 '공리주의'를 주장하면서 만들어진 개념이며 사실 매우 정체가 모호하고 누구도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쫓아가는데 급급한 개념이라고 했다. 주변을 보면 정말 그런 것 같다. 인생의 목표는 행복이라고 하며 다들 행복을 추구하는 삶을 좋은 삶으로 분류하는데 정작 행복에 대한 정의는 제각각이며 매우 주관적이다. 결국 행복에 대해 이야기 하기 위해서는 '당신에게 행복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져서 대답을 다 모아 대충 이런 느낌이다라고 말하는 수 밖에 없다. 

행복은 초콜렛을 먹는 거에요.

행복은 엄마가 아빠 셔츠의 냄새를 맡는 거에요.

뭐 이런 식으로.

행복스트레스라는 것도 있다. 행복하기 위해 노력하는데 도무지 행복해지지 않아서 힘들다는 것이다. 나는 불행한데 주변 사람들은 행복한 것 같아서 더 불행하다. 행복보다는 보다 정확한 상태를 나타내는 말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기쁨, 즐거움, 편안함 이런식으로 말이다. 

나도 어느 정도 동의한다. 그런데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 


작년이었나,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행복한 나라 부탄으로의 여행" 뭐 이런 포스팅을 본 적이 있었다. 작기도 하고 가난하기도 하고 아직 왕이 존재하는 전근대적 나라인데 이 나라 사람들이 그렇게 행복하다고 한다. 작고 가난해도 경쟁이 치열하지 않고 비교적 평등하고 자연을 맘껏 누릴 수 있어서 행복한가보다 싶었다. 이 곳에 가면 행복의 비밀을 알 수 있을까하는 궁금증이 생겼지만 자유여행이 불가능하고 공식가이드 비용이 1일 200불이라길래 여행은 살포시 미뤄두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한동안 소식이 뜸하던 한 지인(이름도 한지인이야...)이 갑자기 무슨 행사에 오라고 연락을 했다. 본인이 소식 없던 동안 사실 영국의 슈마허칼리지와 부탄의 GNH(Gross National Happiness)센터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Good Livelihood 라는 코스에서 공부를 했다고 한다. 그러고보니 한동안 이 분 인스타에 계속 부탄 사진이 올라와서 여행가셨나 했더니 공부하러 가신 거였다. 거기서 뭐 배웠냐고 하니 '잘 사는 법' 배웠다고 한다. 오, 그런걸 가르쳐주는 곳이 있나. 그런 방법 가르쳐주는 것은 별로 믿지 않는 편이지만 이번 행사의 주제인 행복인덱스에 관해서는 관심이 갔다. 

그 행사에 가서 부탄의 국왕이 나라의 발전 정도를 경제량(GDP)으로만 측정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GNH라는 개념을 생각해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면 어떤 기업이 환경을 파괴하는 생산활동을 한다고 하자. 이 기업이 하는 일은 나쁜 일이지만 GDP로만 보자는 +라는 것이다. 그리고 주부가 집에서 열심히 가정을 돌보는 일은 분명 삶을 이롭게 하는 일인데 GDP에는 전혀 잡히지 않는다. 선출된 대통령이 책임감으로 일하는 것보다 왕위를 물려받은 왕이 백성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큰가보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혹시 이반 일리치라도 공부하신 건 아닌지.. 

GNH를 증진시키기 위해 전세계 석학들을 초청하여 행복을 측정하는 지표들을 개발했다고 한다. 4개의 기둥과 9개의 영역이 있는데 여기에는 신뢰할만한 정치, 생활수준, 커뮤니티, 시간활용 등등이 포함된다. 모든 정책을 만들 때 이 기준에 따라서 평가하게 되며 몇 년 마다 전 국민 상대로 이 지표를 기준으로 한 설문조사를 실시해서 행복의 정도를 측정한다. 사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라기 보다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나라에서 행복도를 관리하는 나라라고 해야 맞겠다. 아무래도 신경써서 관리한다면 증진될 가능성이 크겠지. 

이 행사에 다녀오고 나서 이 방법이 꽤 유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와 관련해서 지인님과 꽃친 아이들과 뭔가를 꿍짝꿍짝 꾸며볼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오늘 아침 남편과 한 대화와 행복인덱스가 내 마음 속에 사이좋게 공존하지를 못하는 것이다. 

사실 이런 얘기를 남편에게 처음 듣는 것은 아니다. 행복을 추구하는 삶을 의심하게 하는 계기는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내 입장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다. 당장 급한 일은 아니었으니까 천천히 생각해보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최근에 들어서는 내가 분명한 입장을 가져야 하는 상황이 자꾸 생기는 것 같다. 

자기는 행복한 삶을 추구한다고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B. 하지만 그 아이가 현재 보여주는 모습 뭔가 답답하다. 어떤 이질적인 것이 존재하는 게 분명하다. 그런데 그게 뭐라고 딱 꼬집어서 말해줄 수가 없다. B뿐만 아니라 이 시대 청소년들에게 행복은 큰 화두이다. 행복한 삶을 살으라고 교육하는데 왜 아이들 사이에 혐오가, 폭력이, 조급함과 두려움이 늘어날까. 

이것을 설명해낼 수 있는 말이 나에게는 필요하다. 

2017. 10. 24. 23:46. RSS feed. came from other blogs. Leave a Respo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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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짧은 시간이었지만 남편과 좋은 대화를 나눴다. 어젯밤 1박2일의 일정을 마치고 녹초가 되어 돌아온 남편은 내 이야기를 들어줄 여유가 없었지만 푹 자고 일어난 오늘 아침엔 어젯밤에 들어주지 못한 미안함까지 더해서 더 열심히 들어주었다. 

오늘 아침의 대화는 B에 관한 것이었다. 요즘 내 머리 속에서 가장 골칫덩어리인 꽃치너는 B이다. 친구들에게 관심 없고, 특별히 갈등이 없는 지금도 친구들의 호의와 배려를 무시하며 여전히 분위기를 싸하게 만든다. C가 특별히 B를 위해 소금을 친 계란후라이를 해줬을 때도 눈도 마주치지 않고 짧은 땡큐 한마디만을 남긴 것이 나는 너무 뇌리에 박혔다. 도대체 왜 그렇게 친구들이 싫은걸까. 

B에게 나머지 꽃치너들은 참 우스운 존재들일 것이다. 학교에서 보면 거의 찐따 수준? 감히 자기와 놀지 못하거나 친절을 베풀어도 자기가 조금 베풀어주면 고마워해야할 존재들? 그런데 꽃친에 와서 함께 어울리라고 하니 그 상황이 얼마나 싫겠는가. B에게 있어서 친구들에게 매겨진 계급은(본인은 절대로 부정하겠지만) 공고한 성이다. 3등급 아이들이 1등급인 자기에게 아무리 잘해주더라도 그것은 당연한 일이지 자신도 똑같이 친절을 베풀어야 하는 상황은 아니다. 그런데 심지어 갈등도 심하게 겪었다. 

새로운 눈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 사람도 사물도 경험도. 자기가 알고 있는 딱 그만큼의 틀 안에서 그 밖에 다른 것들에 절대 가치를 부여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아이도 참 강적이다. 청소년들은 경험의 폭이 좁다보니 그런 폐쇄적인 성향을 띄는 것이 아주 희귀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보통은 그 경험을 벗어나는, 자신이 알고 있는 세계의 논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겪으면 경계가 깨진다. 충격을 받기도 하고 열병을 앓기도 하지만 그 틀을 깨고 한 꺼풀 밖의 세계로 나오면서 조금씩 성장한다. 내가 생각한 게 다가 아니었구나. 내가 몰랐던 것이 있구나.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것. 혹은 내가 익숙한 이 경험의 경계 바깥으로 나가고 싶지 않은 것은 어쩌면 누구에게나 당연한 일이다. 나도 아직 그렇고, 더 나이가 든 사람들도 그것이 그리 달가운 일은 아니다. 인간관계, 나만의 생존방식 등을 겨우 조금 쌓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닐 수도 있다니.. 다시 새로 배워야 하다니.. 그 과정에서 비웃음을 당할수도, 비난을 받을수도,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다시 안전한 침대속으로 들어가고만 싶을 것이다. 그게 본능일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저 밖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싶다는 본능도 무의식 중에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조금 두렵긴 하지만 밖에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알고 겪어내야 더 강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그 두 마음 중에 어느 마음이 더 크냐에 따라서 때로는 도전적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방어적이 되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항상 방어적이기만 한 B는 두려움이 너무나 큰 것이겠지? 어떻게 그 밖으로 나올 수 있게 해줄 수 있을까?

안전과 도전의 공존. 

도전하기 위해서는 안전이 꼭 필요하다. 아이들이 도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안전이 없기 때문이다. 누가 안전을 빼앗아 갔을까? 

2017. 10. 24. 01:06. RSS feed. came from other blogs. Leave a Respo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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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게 힘들었다.
고작 8시에 끝난 전날의 야근 핑계를 대고 느지막히 일어나 11시 기초상담 시간에 맞춰 불광역으로 향했다. 뵌 적은 없지만 아빠의 사회활동으로 인해 내가 신뢰를 가지고 있는 가족, 그 가족의 엄마를 만나는 시간이었기에 부담은 없었다.

그런데 6번째 가족의 기초상담을 이어가면서 내 안에 답답함이 쌓이는 것을 느낀다. 아무 문제 없는 건강한 가족이라 할지라도 1년의 방학을 계획하며 느끼는 기대와 불안이 공존하게 마련인데, 그 분들의 기대에 대해서 더 격려하고 불안에 대해서는 조금 안심시키는 말을 드리면서 내 안에 확신이 없다.

객관적으로 따져보면 8할의 아이들이 꽃친에서 좋은 경험을 했지만 나머지 2할의 친구들의 고민스러운 얼굴이 내 마음을 편치 못하게 한다. 꿈에서도, 눈을 뜬 직후에도 머릿속을 꽉 채운다. 

많은 아이들이 하고 싶다고 했던 활동, 그리고 지난 제주여행이 아이들의 정서를 부드럽게 하는데에 아주 효과적이었기 때문에 나도 내심 또 기대했던 정동진 기차여행이 연기되었다. 더 많은 아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날을 기약하게 되었기에 오히려 잘 된 일일지도 모르지만 왠지 모르게 기운이 빠졌다. 갑작스레 금요일 모임을 기획하게 되었는데, 충분히 준비되지 못한 내 마음 때문이었을까 집에 와서 저녁을 먹었는데 갑자기 그게 콱 체해버렸다. 

저녁 8시 경에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다음 날 아침이 되도록 상황이 나아지질 않는다. 결국 처음으로 꽃친 모임을 공식땡땡이 치게 되었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서 잠도 안오는데 계속 누워있었다. 그러다 오후엔 조금 기운이 들길래 너무 심심해서 왕좌의게임 4편을 몰아서 봤다. 총 20시간 정도를 누워있었네.


오늘의 독서 - 왕좌의게임 시나리오...?



2017. 10. 21. 18:44. RSS feed. came from other blogs. Leave a Respo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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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꽃친 3기 두 가족을 기초상담했다.

기초 상담은 사실 아주 진이 빠지는 일이다. 처음 보는 분들과 한 시간 정도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매우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예의도 갖춰야 하고 진솔한 마음도 나눠야 하는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외향적인 사람이어서 그런지 무슨 말이든 많이 하는 분들이 오시면 그나마 나은 것 같다.

오늘은 여자친구 한 명과 어머님 그리고 다른 친구의 아버님이 오셨다. 다행히도 이 분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실 만큼 사교성도 좋으시고 꽃친에 대한 이해도도 높은 분들이었다. 예비 꽃치너 소녀도 물론 수줍었지만 자기 이야기 정도는 또박또박 말할 줄 아는, 무엇보다도 편안한 표정을 한 친구였다.

덕분에 저녁을 거른 야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에너지를 얻었다. 아버님과 함께 오지 못한 남자친구 한 명이 어떤 아이일지 궁금함과 불안함이(아직 기대감까지는 아님) 남아있기는 하지만. 내년 3기가 조금은 편안히 갈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든다.

- 오늘의 독서 : 이지 남미 볼리비아편


2017. 10. 21. 18:39. RSS feed. came from other blogs. Leave a Respo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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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금요일은 전날부터 긴장된다. 


아침에 길을 나서는데 머리가 멍했다. 핸드폰을 두고 나가서 2~3분 거리를 다시 되돌아왔다. 다시 나가면서 오늘 모임이 삼각지인가 광흥창인가 멍하니 생각했다. '아, 광흥창이구나. 그러면 연신내에서 갈아타야 되네.'라고 분명 생각했건만. 어쩐지 3호선을 타고 충무로까지 가버렸다. 사실 그마저도 책을 읽다가 동대입구까지 가버려서 '아이고 충무로에서 갈아타야 되는데 한 정거장 돌아가야겠구나.' 생각하다보니 광흥창에 가야 할 내가 지금 여기서 뭐하는거지 싶었다. 이상해.


아이들이 글쓰기 수업을 듣는 동안 밖에서 두수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꽃친과 동행하신지 한달도 되지 않으셨는데 아이들 개별 코칭을 맡아주기로 하시면서 혹시 내가 귀띔해 드려야 할 사항이 없을까 해서 이야기를 시작한건데, 오히려 두수쌤의 인사이트를 경청하는 시간이 되어버렸다. 사실 꽃친과의 인연은 나보다 짧으시지만 교육에 대한 관심, 경험은 나보다 한 수 위이시기 때문에 두수쌤의 눈으로 본 꽃친은 어떤지, 어떤 필요가 있을지 듣는 것은 귀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머리로는 이해하는데 사실 마음으로는 뭐랄까 자존심이 상한다고 해야 하나, 그런 마음이 들었다. 이러이러하게 하면 더 좋지 않겠냐는 제안은 마치 잘못을 지적하는 것 같고. 이 마음이 극단으로 나쁘게 치닫는다면 '네가 뭘 그렇게 잘 알아? 나도 그런 생각 이미 다 해봤거든?' 이렇게 발전될 수 있는 류의 마음. 하지만 정말 도움이 되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리고 나는 내 자존심을 세우기보다는 꽃친을 더 만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잊을까봐 적어두자면, 꽃친은 파업이고 꽃친 프로그램은 파업프로그램이며 이미 1년을 쉬기로 결단한 것 자체가 큰 용기를 낸 것이기 때문에 꽃친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변화의 4~50%는 시작하면서 달성한 것과 마찬가지다라는데 서로 공감대를 이루었다. 두수쌤은 꽃친에 기본 베이스로 '자아발견, 정서를 다루는 수업,' (또 뭐였지.. 벌써 까먹었다 다음에 다시 여쭤봐야지.)이 진행되면 좋을 것 같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 과정들은 상주하는 선생님(즉, 나)이 다루는 게 좋을 거라고 하셨다. 나도 동의한다. 하지만 내가 뭔가 수업을 한다는 게 잘 엄두가 안나서 대부분은 기획된 수업으로 풀어가려고 하기 보다는 대화로 풀어가려고 했는데 앞으로는 수업으로 구성해둬야 할 것 같다. 


나는 뭐든지 수업이라는 형식이 아닌 관계와 대화, 경험으로 접근하는 경향성이 크고 두수쌤은 뭐든지 수업으로 접근하려는 경향성이 크다. 두 가지 경향이 잘 융합되면 좋겠다. 아예 이 과정 기획을 컨설팅으로 부탁드리는 건 어떨까 싶기도 하다. 이건 꽃친 운영진에 정식 건의해봐야겠다. 


'정서를 다루는 수업'이 마음에 많이 남는다. 어썸스쿨에서도 이런 수업을 한다는데 혹시 매뉴얼을 공유해줄 수는 없을지 문의해봐야겠다. 


어제 하루는 푹 잘 쉬었다면 오늘은 또 여러가지 자극을 받은 날이네. 


- 오늘의 독서 : 멀고도 가까운, 리베카 솔닛. p65~86 (얼음)

2017. 10. 17. 23:38. RSS feed. came from other blogs. Leave a Respo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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