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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10.30 궁금하면 직접 해봐야지 뭐
  2. 2019.10.30 사랑의 뒷담화
  3. 2019.10.21 저도 '꽃친'하고 오겠습니다.
  4. 2019.10.21 주말의 의미 1
  5. 2019.10.21 꽃친쌤도 해봤습니다, 1년의 쉼과 여행
  6. 2019.10.21 푹 가라앉은 일주일
  7. 2019.10.21 연구보고회 꼽사리 발표
  8. 2019.10.21 중국과 홍콩
  9. 2019.10.21 서천에 다녀오다
  10. 2019.10.21 집 구조 바꾸기의 뜻밖의 수확

 

한참 동안 고민해오던 대학원 진학에 대해 드디어 결론을 내렸다. 공부를 더 하고 싶은 생각은 있었지만 이거다 싶은 확신이 들지 않아서 할까 말까를 엄청 망설였었다. 기교연 연구원들과의 대화 이후 내가 정말 준비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세부 전공도, 교수님도 내가 하는 것처럼 검색 정도로 알아봐서는 안 되는 거였다. 그리고 얘기를 듣다 보니 국내 대학원이 매우 폐쇄적인 곳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원을 하기도 전에 미리 교수님을 만나서 인사를 드리는 게 좋고 그렇게 미리 컨택을 한 학생과 교수가 이야기가 잘 맞으면 그 학생을 유치하기 위해 교수가 애를 쓰기도 한다고 한다. 그게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이제 와서 내가 배우고 싶은 교수님들을 알아보고 컨택해보기에는 시간도 너무 촉박하고 혹시나 고압적이거나 권위적인 교수를 마주치게 되면 그냥 기분이 많이 우울할 것 같아 내키지 않았다. 결국 올해 대학원 진학은 안 하기로 했다. 

 

대신 방송통신대 교육학과에 편입을 준비해보려 한다. 학비도 싸고 업무와 병행 가능하고 혹시 이후에 교육학 대학원에 진학을 하고자 할 때 여러모로 가교 역할이 될 것 같다. 사실 나는 타 전공자이기 때문에 교육학에 대한 기초가 없으니까 학부과정만 이수해도 지금보다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또 '나름대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리서치로서의 의미도 있다. '나름대로' 기획 회의를 하는데 부딪힌 문제점 중의 하나는 우리가 방송대의 교육의 질을 잘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도 직접 경험해보기로 했다. '직접 해보기'가 우리 팀의 공식 기획 절차가 될 것 같은 예감.

 

브라이스 캐니언 여행 중에 병구쌤의 '나름대로' 구상을 전해 들었을 때만 해도 정말 너무 발칙한 상상이라서 머리가 어질하고 두려운 마음이 컸는데 언젠가부터 담담해지고 자연스레 받아들여졌다. 어제 간담회에 참석하셨던 꽃친 부모님들의 표정도 무척이나 담담해서 다른 참가자들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새삼스레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사회에 참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교육개혁을 외치는 사람들 중에서도 직접 궤도를 벗어나 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가지는 상상력의 차이가 크다. 하지만 그런다 한들 아파트의 이름 앞에 소중한 결혼 계획을 내려놓는 사람들과의 차이만큼이나 클까. 태극기, 성조기, 이스라엘기 골고루 섞어 배낭에 꽂고 광화문으로 나서는 신실한 장로님들과의 차이만큼이나 클까. ㅇㅇ한 것들은 죽여도 된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과의 차이만큼이나 클까.

 

세계여행 1년이면 대단한 현자는 아니어도 조금은 현명해질 줄 알았는데. 여전히 나는 나다. 꽃친 전후로 바뀐 게 없다는 세준이의 말이 진정 진리인가 보다. 뭔가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도 강박이고 그걸로 내 경험의 긍정적인 면을 증명해야 하는 것도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꽃친 연구에 참여하고 있는 꽃치너들도 어쩌면 자기 최면적 대답에 서서히 질식해 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도 된다. 누군가 계속되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해주면 통쾌하겠다.

 

젠장! 망할 놈의 변화 좀 그만 물어봐요. 하고 싶었으니까 한 것뿐이고 아무 나쁜 일도 안 생겼다는 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의 전부예요.

 

 

 

 

 

2019. 10. 30. 00:07. RSS feed. came from other blogs. Leave a Respo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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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한참 집중력이 떨어져 가던 오후 3시, 올 사람이 없는데 누가 사무실에 들어온다.

"아, 쌤~ 오늘 어쩐 일이세요"

화, 금에만 꽃친에 오시는 유식쌤이 갑자기 사무실에 오셨다.

"이따 근처에서 약속이 있는데 시간이 남아서요. 밖에 조용히 있다가 갈게요."

하지만 유식쌤의 등장으로 우리는 핑계 낌에 티타임을 가졌다. 마침 내가 점심때 사온 꽈배기 간식도 있었기에.

 

쌤들 넷이서 다 같이 아이들 없는 휴식 시간을 가진 건 오랜만인 것 같다. 하지만 오늘도 우리는 열렬히 아이들 얘기를 했다.

주로 지난 모임 후에 있었던 일대일 상담 이야기였다.

 

또미는 요즘 부모님과의 갈등이 한창이다. 서로 못할 말까지 내뱉어 가면서. 이제는 왜 싸우는지 알지도 못하고 서로 증오하는 감정만 더해져 가고 있다. 하지만 얘기를 가만히 들어보면 또미는 부모님 사랑이 너무 고픈 아이다. 여름에 잠시 삼촌댁에 가 있는 동안 떨어져 있던 부모님과의 사이가 가장 애틋했다며. 가끔 3박 4일 정도 같이 여행을 하면 예쁜 사진을 찍어 부모님에게 보낸다. 어느 한 쪽만 잘못해서 싸우는 일은 없겠지만 우리는 주로 아이들을 만나기 때문에 아이들 입장에서 생각하게 된다. 그냥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예쁜 아이들을 하나부터 열까지 못마땅하게만 생각하고 야단치시는 부모님들을 보면 참 안타깝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 싶기도 하고, 오히려 너무 가까이 있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지 못하는 걸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어떻게 보면 가족의 입장에서 제3자일 수밖에 없는 우리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신다는 것이다. 결국 이걸 해결하는 것은 그 가족의 몫이겠지만.

 

한수와 상담을 하는 날 수진쌤은 장난스레 난감함을 표하셨다. 한수는 좀처럼 솔직한 마음을 이야기하지 않는 친구이기 때문에 그렇다. 멀쩡한 척, 쿨한 척, 상관없는 척하면서 하나마나한 이야기들로 시간을 때운다. 그러니 이야기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힘이 빠질 수밖에. 너 이 녀석, 그렇게 대화를 회피하기만 하면 안 되는 거야!라고 따끔한 말을 해주고 싶기도 했지만 언젠가 이 아이가 우리를 더 믿게 되면 진짜 자기 속마음을 뭐라도 얘기하겠지라는 마음으로 그 신뢰 관계를 섣불리 망쳐버리기 싫어서 싫은 소리는 꾹꾹 참았다. 혹시 오냐오냐가 아니라 쓴소리해주는 게 우리 책무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만날 때마다 하면서 말이다. 그러던 한수가 지난 시간에는 슬쩍 자기 얘기를 하더란다. 사실 수진쌤은 한 15분쯤 이야기하시고 한수가 또 시답잖은 이야기를 하면 일찍 마무리하시려고 했단다. 그런데 잠시의 침묵 후에 사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는 얘기를 했다고 한다. 물론 중간중간 센척하는 건 여전했지만, 그 정도는 한수의 자존심일 테니 지켜줘야 한다. 아무튼 은근슬쩍 우리에게 SOS 신호를 보내온 한수가 고맙고 다행이었다. 그동안 잔소리를 꾹 참아온 우리 모두에게 큰 선물이었다. 

 

그렇게 1시간을 네 명의 길잡이 교사들이 모여서 9명의 아이들을 떠올리며 이런저런 마음을 나눴다. 이 정도 비율이 되니까 한 명 한 명의 사정을 들여다보고 마음을 헤아려보고 조금 더 사려 깊게 대하는 게 가능하다. 우리도 사람이니까, 그리고 벌써 애들이 16~17이면 어른들의 마음도 막 공격하고 그러니까, 때로는 속상하고 힘들고 피하고 싶은 이슈들이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판단이 서지 않을 때, 또 다른 성숙한 시선을 가지고 나를 도와줄 팀원이 있다는 것은 정말 든든한 일이다. 우리끼리는 우스갯소리로 애들 뒷담화 한다고 말하곤 하는데 이만큼 사랑을 쏟아붓는 시간이 없다.

 

진로수업 피드백 회의를 하러 오신 지연쌤이 이런 말을 하셨다. 매번 수업이 끝나면 전체 수업과 아이들 개별에 대한 일지를 작성해서 보내주셨다. 수업에 다 참관한 게 아니었던 우리로서는 매우 도움이 되는 자료였는데 그걸 쓰는 게 힘들진 않으셨는지 여쭤보았다.

"조금 시간이 들긴 했지만 저에게도 좋은 시간이었어요. 사실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관심을 가지고 개별적인 상태를 알아차릴 수 있었던 건 일지를 정리하면서였어요. 수업을 하는 중에는 그게 잘 보이지 않거든요."

나도 이 말에 참 공감이 되었다.

 

그래서 쌤들의 아이들 뒷담화 시간은 꼬옥 필요하다. 또미 이야기를 하면서 '이렇게 예쁜 아이를, 이렇게 그냥 있기만 해도 소중한 아이를'이라는 말을 열 번도 넘게 하시는 현아쌤을 보면서 저렇게 사랑스러울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모든 아이들이 아이 10명 당 쌤 4명 정도의 비율로 전적인 사랑과 관심을 받으며 딱 1년씩만 여유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아이들의 삶은 그 시절의 기억으로 얼마나 용기 있어 질까. 이 정도의 돌봄 규모를 어떻게 현실화할 수 있을까.

 

2019. 10. 30. 00:02. RSS feed. came from other blogs. Leave a Respo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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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0

 

남편을 먼저 보낸 신고식을 호되게 치르고 있다. 출국 며칠 전부터 같이 호흡을 맞추며 정신없이 지내다가 긴장이 풀려서 그런 건지, 내게도 다가오는 여행의 시작이 갑자기 실감 나서 그런 건지, 연애를 시작한 뒤 가장 오랜 기간 동안 떨어져 있게 돼서 그런 건지, 처음으로 혼자 해외로 나간 남편이 걱정돼서 그런 건지, 아무튼 아프다.

 

하지만 나에게는 출국 전 마쳐야 하는 몇 가지 중요한 일들이 남아 있다. 그중에 하나는 '꽃다운친구들' 가족들에게 나의 여행 소식, 그리고 그로 인한 긴 부재의 소식을 알리는 일이다. 

 

'꽃다운친구들'(줄여서 꽃친)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가기 전 1년 동안 자발적인 방학을 가지며 휴식, 놀이, 자기 탐구 등의 시간을 가지는 청소년과 그 가족들의 공동체이다. 꽃친은 학교나 학원이 아니라 비영리 운동의 모양새를 가지고 있고, 나는 3년 전 꽃친이 태동할 때 이 팀에 합류하여 지금까지 이 단체의 행정간사로, 아이들의 길잡이 쌤으로, 도대체 이런 짓이 필요한 일이긴 한 건지 고민하는 자발적 연구자로 함께 일하고 있다. 

 

꽃친쌤으로 산다는 것은 1년 동안 17세 내외의 외계인 같은 아이들 10여 명과 일주일에 두 번씩 하루 종일 함께 먹고 논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1년에 네다섯 번 정도 여행을 가면 먹고 놀고 헤어지지 않고 같은 집으로 들어가 쌩얼도 보고 잠꼬대도 듣는다. 특히나 이 시간 동안 무언가 성취하는데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각 아이들의 마음과 생각에 집중하며 관계를 쌓다 보니 그냥 학생과 쌤의 관계 이상의 것이 우리에게 사이에 생겨난다. 

 

2016년에 시작된 1기, 작년의 2기를 거쳐 올 해에도 3기 친구 10명과 신나는 1년의 방학을 시작했다. 그런데 함께 시작한 마라톤을 끝까지 함께 완주하지 못하고 중간에 내가 여행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게 하려고 애초에 시작하기 전인 3월에 떠나려고도 생각했었다. 지금 와서는 반년이라도 3기 친구들을 만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언제, 어떻게 작별을 이야기해야 하는지 여간 고민이 되는 게 아니었다. 미리 말해서 마음의 준비를 하게 해야 하나? 너무 일찍 말하면 아이들이 나와의 관계에 신뢰를 잃은 채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지는 않으려나? 함께 일하는 선생님들과 의논한 끝에 결국 상반기 활동을 마무리하는 발표회 날에 이야기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날이 바로 오늘이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어제 오후부터 시작된 체기가 여전히 몸에 남아 있었다. 카톡을 보니 어제 밤늦게까지 꽃친 쌤들이 수고해주신 흔적이 남아있다. 얼른 뒷 마무리를 내가 하고 집을 나섰다. 먼 길이지만 최대한 좋은 컨디션을 만들기 위해 택시를 타기로 한다. 나의 쉼을 끊임없이 방해하는 택시 아저씨의 무례함에 무응답으로 대응했는데도 내릴 때쯤엔 헛구역질이 났다. 행사를 준비하는데 계속 헛구역질이 나서 결국 극단의 조치를 취했다. 브라를 벗었다. 여행 다닐 때는 노브라로 다닌 적이 가끔 있었지만 한국에서는 그런 적이 없는데, 이걸 풀지 않으면 계속 구역질이 나고 결국 몸을 가누지 못할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도 아니고 아이들과 그 부모님들이 나를 이상한 쌤이라고 생각하면 어쩌지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이게 살아있는 페미니즘 교육이지 싶었다. 거울 앞에 서서 한참을 티가 나나 안 나나 관찰하다가 남자들은 늘 티셔츠 겉으로 티 나게 다니는데 무슨 상관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아파 죽겠는데 속옷 하나 벗는 게 뭐 대수인가 싶었다.

 

다행히도 점점 몸이 좋아져 끝날 때쯤 되니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고, 행사도 큰 무리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마지막으로 온 가족들이 동그랗게 둘러앉아서 꽃친으로 보낸 반년의 시간의 의미를 이야기하는 써클타임 시간을 가졌다. 나의 여행 소식은 이 순서에 알리도록 되어 있었다. 내 컨디션과 씨름하며 행사 진행에만 신경 쓰느라 정작 뭐라고 이야기해야 할지 준비가 되지 않았었다. 고민 끝에 각자의 키워드를 적는 종이에 '나도 꽃친 하고 올게'라고 적었다. '학생의 본분은 공부지'라는 획일적인 고정관념, 그리고 그 안에 도사린 '뒤쳐지면 죽는다'라는 모두의 숨통을 조이는 협박 앞에서 '과연 그럴까?'를 외치며 보란 듯이 놀고 웃고 기다리고 손 잡는 그런 시간, 그런 사람들이 바로 꽃친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잘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이 나를 옥죄어 올 때, 진짜 나는 누구인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생산하는 인간이 아닌 존재하는 인간으로서 보내는 충분한 시간이란 어떤 것인가, 나와 이해관계가 전혀 없는 타인과 만나고 대화하고 우정을 나눈다는 것은 어떤 감각인가를 느끼고 싶어서 떠나는 나의 여행이야 말로 '꽃친'과 꼭 닮은꼴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숙제를 마쳤다. 모인 사람들 중에 미리 알고 있던 분은 거의 없었다. 다소 무책임하다고 느끼진 않을지 걱정했었는데 대부분 나의 취지를 잘 이해해주었고 기대 이상의 격려와 응원을 해주었다. 꽃친을 현재 진행형으로 경험하고 있는 이들이기에 나에게도 꽃친이 필요했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앞으로 어떤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것인지 어렵지 않게 이해한 것 같았다. 

 

남은 반년은 보지 못할 거라는 이야기를 전하니 은혜가 울었다. 꽃친에서 보낸 반년에 시간에 대한 자신의 키워드를 ‘소중함’이라고 적어낸 아이다. 은혜 어머니도 나에게 계속 배신이야를 외치셨다. 그게 싫지가 않다. 나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니까. 모전여전이다. 남자아이들은 헤헤거린다. 장난친다. 마지막으로 사진을 같이 찍자고 했는데 다들 너무 밝게 웃는 거 아니냐며 핀잔도 들었다. 뭐 사실 생각해보면 슬픈 일은 아니니까.

 

우리의 여행이 꽃친 아이들에게 아직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었기 때문에 남편은 출국하면서 출국 포스팅도 하지 못하고 나갔다. 아이들과 SNS 친구이기 때문이다. 이제 뭐든 올려도 된다고 얘기해줬다. 남편이 고생했다고 말해줬다. 글쎄, 고생했나? 생각보다 덤덤하게 지나간 것 같다. 지금 나는 아직 남편이 떠난 여파가 더 크다. 아이들과의 이별도 그 일이 다 벌어지고 난 후에야 여파가 밀려오겠지. 하지만 내년에 더 멋진 예지쌤이 되어 돌아오기로 했으니 그 약속을 힘으로 삼아 그리움을 잘 이겨내 봐야겠다. 

 

 

*꽃다운친구들 : http://www.kochin.kr

 

2019. 10. 21. 22:39. RSS feed. came from other blogs. Leave a Respo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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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도 이제 다 지나간다. 오늘 오전에 빨래를 개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주말에 기대하는 것도 바뀌었구나.'

 

예전에 뭘 기대했는지는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일요일엔 교회를 다녀오면 시간이 거의 다 가버렸기 때문에 주말이란 토요일 하루였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마저도 행사나 약속이 없는 토요일은 흔치 않았다. 오후에 일정이 있다면 일어나서 간단히 아침을 먹고 빨래나 청소 등의 집안일을 한 뒤 나갔다 오면 하루가 끝난다. 오전에 일정이 있다면 주 중과 다름없이 서둘러 집을 나서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주말이란 비록 출근은 하지 않지만 내가 보내고 싶은 모양으로의 시간이 아닌 그냥 그렇게 무엇인가로 채워지는 시간이었다.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 생각해보지도 못한 것 같다. 기껏 해봤자 이번에 개봉한 무슨 영화 보고 싶다 정도. 하지만 그렇게 살아온 지가 벌써 십수 년이기 때문에 딱히 그게 이상하다고 느끼진 않았었다. 

 

하지만 여행을 다녀온 뒤로는 그게 조금 달라졌다. 1년 동안 한국을 떠나 여행을 하는 동안에 그전엔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아니 당연한지 당연하지 않은지 한 번쯤 생각해 볼 대상으로 여기지도 않았던 많은 생활 습관들이 전부 초기화되었다. 시간, 공간, 관계 등 모든 것이 갑자기 다른 세계로 옮겨갔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다시 돌아와서 마주하게 되는 한국 사회, 내가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이 사회의 많은 것들, 그리고 그 속에서 당연하게 살아온 나의 모습을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새롭게 발견하게 된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주말이다.

 

여행하는 동안 그 어떤 일정도 채워져 있지 않았던 백지 같은 하루하루가 주 5일 출근해야 하는 날로 바뀌었다. 그러다 보니 일주일 중 온전히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단 이틀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지, 그리고 얼마나 짧은 시간인지 절감했다.

 

참 애석한 일이지만 나는 빠르게 주 5일 노동자의 일상에 익숙해지고 있다. 성실한 노동자이자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월~금 9시~6시는 내가 아닌 일에 나의 시간을, 아니 나의 자아를 내어준다. 그 시간 동안에는 일과 상관없는 영역에서의 나의 생각, 나의 욕망, 나의 취미, 나의 몽상, 나의 딴지, 나의 기쁨과 슬픔은 잠시 지워진다. 게다가 지워진 나라는 것이 6시가 지났다고 하고 바로 다시 살아 돌아오는 것이던가. 한 시간의 퇴근길 동안에도, 남편과 마주 앉아 밥을 먹는 시간까지도 잘 돌아오지 않는다.

 

매일 하루 일과가 끝난 뒤 좋아하는 책을 읽을 시간, 한 줄 일기를 남길 시간이 도무지 없는 것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1시간 단위로 국영수사과의 경계를 넘나드는 고등학교의 시간표처럼 빠르게 모드를 전환하여 저녁 시간을 쓰는 것은 내게는 버거운 일이다. 매일 핸드폰 어플로 하는 스페인어 공부와 내일의 삭신을 책임져 줄 스트레칭 정도만 겨우 하고 있다.

 

풍과 함께 우리 최소한 일요일만큼은 아무 일정도 만들지 말자고 다짐하고 있다. 현대인이라면 이게 참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일정이 없는데도 일요일에 만나자고 하는 사람을 거절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그런 일은 없었지만 혹시 누군가 일요일에 만나자고 한다면 무슨 말로 거절하는 게 좋을까 가끔 생각해보곤 한다.

 

다행히도 오늘은 우리 둘 다 아무 일정을 만들지 않는데 성공한 날이었다. (이러다 영영 이게 너무 쉬운 일이 되어버리는 건 아니겠지.. 그건 그것 나름대로 좀 비참한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어제는 왠지 잠이 오지 않아 새벽까지 둘이 얘기를 했고 오늘은 한국에 돌아온 뒤로 가장 늦은 시간에 일어났다. 일어나자마자 점심을 해먹고 거실에 널려 있던 빨래를 걷어 개다가 저 생각이 든 것이다.

 

자느라 없어져 버린 오전 시간까지 아까워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제 남은 시간 동안 무얼 할 수 있을지 헤아려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었다. 동네 카페에 가서 맛있는 커피를 마셔야지. 블로그도 써야지. 책도 읽어야지. 작은방에 달고 싶은 커튼도 알아봐야지. 지난 일주일 동안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사느라 내 머릿속에 등장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지극히 사적인 생각들을 꺼내봐야지. 이게 바로 주말이구나. 이게 바로 내가 주말에 기대하는 것이구나. 주말이란, 휴식이란, 안식이란 이런 것이구나.

 

그런 생각들을 하는 동안 내 몸에 느껴지는 감각이 여행을 할 때의 그것과 너무 비슷해서 놀랐다. 그리고 기뻤다.

 

앞으로 내 일상이 더 바빠진다면 이마저도 누리지 못할 수도 있다. 지금 같아서는 주 5일 출근에, 주 1~2회 정도 저녁 일정에, 토요일 하루 일정 정도가 내가 허용할 수 있는 최대 바쁨이다. 이 이상 내 시간을 무언가에 내주기는 싫다. '나는 나구나. 내가 여기 있구나.'라는 생각을 되살릴 최소한의 휴식 시간을 사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일 내년에 대학원을 가게 된다면, 1~2년 사이에 육아를 하게 된다면, 일주일에 딱 하루 온전히 내 휴식 시간을 갖는 것은 불가능해질지도 모르겠다. 그럼 어떡하지?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보자.

 

 

 

2019. 10. 21. 22:21. RSS feed. came from other blogs. Leave a Respo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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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다운친구들 종단연구 중간보고회에서 발제한 내용이다.

A4용지 7페이지가 넘는 대본을 썼는데 읽어보니 30분이 넘을 것 같아 중간중간 이야기를 빼면서 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꽤 만족스러운 발표였다. 발표한 모습을 동영상으로 촬영해서 보면 객관적으로 잘한 것과 못한 것이 더 잘 보일 것 같아서 일부러 부탁까지 드려서 촬영을 했다. 동영상을 다시 봤는데.. 음.. 객관적으로 보기란 참 어렵다 ㅎㅎ 말하면서 왜 저렇게 손을 많이 쓰고 시선 처리가 불안한가 싶은 생각이 제일 많이 들었다. 원고를 써서 말하니 쓸데없는 이야기는 하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할 때 표현이나 단어 등을 정확히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토론 시간에 참가자들이 쪽지에 질문을 적어서 냈는데, 전체 주제에 관계없이 여행비가 얼마 들었는지 물어보는 질문이 있어서 다들 웃었다. 그리고 나는 대답해드렸다.. ㅎㅎ

 

그리고 이런 질문도 있었다. 수련회에 다녀오면 얼마 간은 그 수련회에서 받은 은혜 때문에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이고 이제부터 달라진 삶을 살 것 같은 그런 마음이 들곤 하는데, 혹시 내 상태도 그런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솔직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 돌아온 지 50일 밖에 안됐기 때문에. 하지만 지금 현재 내가 느낄 수 있는 나의 변화에 한해서 말씀드린 것이다. 과연 이게 수련회 효과인지 아닌지 알고 싶으시면 6개월 뒤에 다시 만나서 얘기하자고 했다. 

 

그런데 사실 그 질문이 일주일이 지난 지금도 종종 생각나고 그 비유에 기대어 내 상태에 대해 스스로 점검해보곤 한다. 이것은 수련회 효과인가, 혹은 영구적 거듭남인가. 수련회 효과라면 얼마나 오랫동안 유효한 효과일까. 수련회 효과를 영구적 거듭남으로 바꾸기 위해 내가 노력할 수 있는 부분은 없을까.

 

 

 

 

 


 

 

 

꽃친쌤도 해봤습니다, 1년의 쉼과 여행

꽃다운친구들 길잡이교사 이예지

 

1. 자기소개

      a. 꽃친의 탄생부터 3년 차까지

      b. 남의 기준에 맞춰 살지 않으려 나름 노력하지만 어쩔 수 없는 범생이

      c. 여행 결심 당시 신혼 2년 차

 

 

2. 쉼을 결심한 이유

      a. 남편과의 시간

      b. 쉼/꽃친을 더 이해

      c. 개인적인 변화가 필요

 

 

3. 그런데 왜 여행인가?

      a. 나에게 쉼의 의미

           i. 익숙한 사회로부터의 분리가 전제되어야 함

           ii. 생산/관계/역할의 의무로부터 잠시 떠남

           iii. 새로운 자극을 겪는 시간

 

 

4. 여행 중 생긴 예상치 못한 과정들

      a. 남편과의 갈등

           i. 나의 쉼 : 늘 하던 것이 아닌 다른 새롭고 재미있는 것을 경험 à 경험, 체험

           ii. 남편의 쉼 : 특별한 것을 하지 않고 시공간을 비워 냈을 때 생겨나는 마음을 경험 à 관찰, 성찰

      b. 내 내면의 갈등

           i. 여행도 “잘하고 싶은 욕심”

                1. 남들이 다 하니까 나도 안 할 수 없지 VS 남들이 다 하는 흔한 건 하기 싫음

                2. 여전히 타인의 인정이 많이 필요한 내 모습을 발견 : 덴마크 포스팅에 달린 댓글

                3. “알찬 시간” 대한 집착 VS 넉넉한 쉼

      c. 파타고니아 로드 트립

           i. 시작

                1. 친구에 대한 경쟁심

                2. 환상적인 이미지에 유혹됨

                3. 독특한 경험을 자랑하고 싶은 욕심

           ii. 현실 : 강행군, 반복되는 일과, 동행자와의 갈등

           iii. 변화

                1. 내가 애초에 기대한 것을 계속 생각하는 대신 현재 눈앞에 일어나는 일을 발견, 누림

                2.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가 점점 흐릿해짐

      d. 예지보부상

           i. 해보고 싶었던 마음이 위기라는 기회를 만나서 도전하게 됨

           ii. 1차 : 예상치 못했던 좋은 반응

           iii. 2차

                1.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

                2. 1차 때보다 반응이 적음

                3. 그러나 사람들의 반응이 아니라 나의 성장에 주목

 

 

5. 내가 겪은 변화

      a. 다른 사람들의 소식에 초연해짐

      b. 좋은 일에 대해 진심으로 감탄/배우려는 자세

      c. 내 몫의 일에 더욱 집중

      d. 경쟁적으로 최고를 추구하는 일을 그만 둠 → 용기, 의연함, 어우러짐

 

 

6. 내가 겪고 이해하게 된 쉼

      a. 인생 중 계속되는 변화의 경험

           i. 자신이 운용해가는 변화의 경험 VS 사회가 강제하는 방식을 자신에게 짜 맞추는 방식의 경험

           ii. 사회로부터 벗어나 보는 시간

      b. 쉼 안에서도 길을 잃는다.

           i. 모드 전환에 걸리는 시간 : 내 안에 내재하는 사회

           ii. 시행착오 : 경험, 실패, 성찰, 재도전

                1. 겪지 않고 처음부터 일직선으로 갈 수 없음

                2.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음

      c. 돌아오면 말짱 도루묵?

           i. 영원히 떠나 있을 수는 없다

           ii. 이전에 비해 좀 더 자기의 길에 집중할 수 있는 힘

           iii. 언제든 필요하면 다시 떠날 수 있다는 용기

                1. 신호를 알아차리기

                2. 변화에 대한 기대

 

2019. 10. 21. 22:20. RSS feed. came from other blogs. Leave a Respo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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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저녁 보고회 발표에서 너무 잘난 척을 많이 한 탓인지.. 화요일부터는 내내 맥을 못 추고 있다.

 

일에 있어서도 좀 멍하고, 하루 종일 해내는 일의 양도 적다. 살짝 길을 잃은 느낌이다.

 

어제는 남편과 같이 거의 10시쯤부터 자기 시작했다. 덕분에 아침에 충분히 잔 느낌으로 일어나긴 했는데 1시간 출근길을 거치고 사무실에 도착하니 벌써 진이 빠졌다. 아침에 급히 먹은 샌드위치가 살짝 체한 것 같기도 하고..

 

결국 점심 먹고 나서는 몸도 머리도 너무 무거워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잠시 책상에 머리를 대고 누워 쪽잠을 잤다. 잠시 후 나는 아예 쿠션까지 베고 제대로 숙면을 취했다. 거의 한 시간. 말해두지만 나는 늘 자발적으로 매우 열심히 일하는 편이다!! 오늘은 정말 힘든 날이었다.

 

오랜만에 꽃친 2기 예담이를 만나기로 했다. 예담이가 4:30쯤 도착했다. 아침까지만 해도 예담이한테 뭐 좋은 얘기를 해줘야 할 것 같아서 고민이 됐는데 3시쯤부터는 예담이가 빨리 오기만을 기다렸다. 나가서 얘기라도 하고 그러면 상태가 나아질 것 같아서. 역시나 예담이를 만나서 이런저런 사는 얘기도 듣고 나름 선생질도 하니 몸도 마음도 기운이 좀 났다. 내가 그 몸과 마음 상태로 할 수 있는 일 중에 가장 생산적인 일이었을 거다.

 

바늘 틈같이 좁은 실용음악 입시를 통과하느라 많이 지쳐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 외로 덤덤하고 씩씩해서 다행이었다. 하지만 내가 모르는 시간에 많이 외롭고 불안하겠지. 꿈을 좇되 꿈에 짓눌리지 말자고 얘기했다.

 

코노에 가서 예담이 노래를 듣는데 노래가 많이 늘었다. 그런데 노래가 늘었다는 게 예대 입시에, 혹은 뮤지션으로 살아가는데 중요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 감정도 찐하게 전달됐다.

 

근데 그보다도 나는 그냥 예담이가 노래하는 모습이 너무 예뻤다. 내 눈엔 이르케 이쁘고 기특한데.. 교수님들 앞에 가면 냉정하게 평가받겠지? 이런 게 고슴도치 엄마의 마음인가 보다.

 

예담이도 알게 모르게 또 한 뼘 자랐다. 이제 몇 개월 뒤면 ‘아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나이가 되겠지. 스무 살이 된다니 책임져야 할 것이 많아질 것 같아 좀 걱정도 된단다. 뭘 얼마나 책임지려구~ 하면서 웃었지만 나도 저 나이 때 정말 사소한 일에도 큰 책임감을 실감했던 기억이 난다. 남이 보기엔 작은 일이어도 자기가 직접 한다는 게 중요한 거겠지.

 

예담이 동생이 올해 16, 내년에 17이다. 딱 꽃친 나이. 예담이는 꽃친 했을 때 너무 좋았고 다시 돌아간대도 또 하고 싶단다. 우리에겐 최고의 칭찬이다. 그땐 우리가 더 서툴고 해준 것도 부족했던 것 같은데. 그래서 동생에게도 권하고 있지만 동생은 공부 압박이 심해서 안 할 것 같다고 한다. 그런 친구에게 더 필요한데... ㅋ 하지만 쉼이 필요하다는 자각이 없이 오는 친구들은 꼭 와서 고생을 너무 많이 한다. 그래서 억지로 설득할 생각은 전혀 없다. 예담이에게 칭찬 들은 걸로 만족해야지. 

 

서윤이가 생일이라고 돈을 보냈단다. 참 재밌는 친구다. 정작 만나자고 하면 바쁘다고 코빼기도 안 뵈는데. 예담이는 어머니가 아프신 서윤이에게 마음이 쓰인다고 했다. 나는 그런 말이 참 놀랍다. 그 나이 때는 물론 지금도 나는 잘 쓰지 않는 말인데.. 어릴 때부터 남에게 마음이 쓰이는 경험을 하는 아이들은 어떤 사람인 걸까. 본받고 싶은 마음이다.

 

 

 

2019. 10. 21. 22:11. RSS feed. came from other blogs. Leave a Respo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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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꽃다운친구들 종단연구 2차 중간 연구보고회가 있는 날이었다.

 

여행에서 돌아오기 직전에 발표자로 섭외를 받았다. 연구팀에서 연구에 대한 내용을 발표하기 전 첫 순서로 나의 안식년과 여행에 대해 발표를 해달라는 부탁이었다. 처음에는 여행과 덴마크 에프터스콜레에 대한 이야기를 15분 안에 해달라고 해서 매우 당황했다. 어떻게 그걸 15분 안에 할 수 있지? 게다가 나는 말이 많은 스타일이어서 15분짜리 발표를 준비하면 꼭 20분이 되고야 만다. 즉 15분을 하기 위해서는 10분 치 얘기밖에 준비할 수가 없다는 건데.. 아무튼 연구팀과, 꽃친팀 내부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보고회이고 남의 일이 아니니까 말이 섭외지 그냥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긴 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여행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발언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 은근히 기쁘기도 했다. 세계여행을 다녀온 뒤에 여행 이야기를 하는 자리를 스스로 일부러 만드는 사람들도 있긴 하다. 만일 내가 그런 걸 한다면 어떨까 생각해봤다.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나는 여행하는 것은 좋아하지만 여행 책을 읽거나 여행 얘기를 듣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여행 얘기를 하는 것이 누군가에게 재밌거나 의미 있는 일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동시에 무언가 이야기하고 싶은 욕망도 분명 있었다. 그냥 어디가 멋있었다, 재밌었다는 것보다 조금은 더 쓸모가 있는. 그런 의미에서 보고회에서의 발표는 내 여행의 경험 중에서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자리일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여행에서 돌아와서 업무에 복귀하기 전부터 짬짬이 이 발표에 대해서 준비하기 시작했다. 여행에서의 원경험이 1년 치가 쌓여 있는 상황에서 가치 있는 이야기를 고르는, 아니 이야기 안에 숨겨져 있는 가치를 찾아내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마인드맵에 생각나는 대로 적어두었다. 우선 이렇게 적어놓고 나면 어떻게 연결해야 할지 그림이 그려질 것 같았다. 하지만 업무에 복귀하고 나서는 다른 급한 일들로 바빴다. 발표 준비는 그렇게 시작만 해둔 상태로 어느새 2주 정도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내 스케줄 다이어리에는 매주 "발표 아웃라인 잡기"가 적혀있었다. 다른 일들에 치여 매번 다음 주로 미뤄온 것이다.

 

그동안 내내 주말에도 붙잡고 있었고, 팀원들이 뭘 부탁해도 발표 준비를 해야 해서 그 업무는 못하겠다고 거절을 하기까지 했다. 지난주 개천절까지 연구팀에게 자료집에 들어갈 발표 자료를 보내드리기로 했고 발표할 내용을 글로 써서 보내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부담이 과중했는지 개천절 날은 결국 체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미룰 수가 없는 일이기에 아픈 몸을 이끌고 겨우 글을 완성했다. 그리고 보내기 전에 남편에게 먼저 보여주고 피드백을 부탁했다.

 

그런데 남편이 글을 읽은 뒤로 계획이 크게 바뀌게 되었다. 처음에는 내 글에서 쉼이 필요하다고 느낀 지점과 여행을 하기로 한 결정 사이에 연결고리가 부족한 것 같으니 그 부분을 보충하는 게 좋겠다는 피드백을 주었다. 하지만 둘이서 점차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내 글에 얼마나 뼈대가 허술했는지가 드러나게 되었다.

 

"예지 네가 이런 이유에서 쉼이 필요했다고 생각하고 여행을 시작하게 됐다면 듣는 사람들은 그 이유가 충족되었는지 궁금하지 않겠어? 그리고 실제로 여행하면서 너는 처음엔 이런 모습이었는데, 이런 이런 계기들을 통해서 조금씩 변화하게 되었다고 나는 기억하는데..."

 

남편에게 이런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면 나는 도대체 어제 보고회에서 어떤 발표를 하게 됐을지. 생각해보니 아찔하다. 그 피드백을 받은 것이 이미 마감날 밤이었다. 얘기를 주고받는 내내,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뒤집으면 오늘 안에 글을 마감하지 못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 이야기가 점점 핵심으로 다가가고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이야기를 멈출 수 없었다. 결국 자료집에는 발표 개요만 싣는 것으로 결정하고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정리를 해서 보내드렸다.

 

이렇게 막판이 되어서야 아웃라인이 갖춰지게 되어 다급한 면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꽤 만족스러웠고, 현재로서는 이게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편으로는 왜 이걸 더 빨리 잡지 못했을까, 남편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나 혼자 할 수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남편과의 대화로부터 추출된 이 발표를 과연 내 발표라고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하지만 연구팀으로부터 보고회 자료집을 받아서 꽃친 청소년 연구 결과를 받아보고 나서 나는 이런 생각을 조금 접게 되었다. 누군가 자기가 한 경험에 대해서 스스로 의미를 추출해 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자서전보다 평전이 읽을 만한 게 아닐까. 내게는 남편이 연구자였던 셈이다.

 

그 아웃라인을 바탕으로 주말에 피피티를 만들고 발표 당일인 어제 낮에 종일 발표문을 작성해서 무사히 발표를 마쳤다. 막판까지 다소 급하게 마무리하게 된 발표였지만 발표 개요, 피피티, 발표문까지 3종 세트로 준비해서 한 발표는 이게 처음이었다. 대학생 때부터 수많은 발표를 했었지만 제대로 된 발표는 이제야 처음 해 본 느낌이었다. 카메라를 가져가서 녹화도 부탁했다. 동영상을 보면서 어떤 부분이 제일 중요하게 들리는지, 어떤 부분은 덜어내도 되는 부분인지 체크도 해보려고 한다. 내가 이렇게까지 공을 들이는 이유는 뭘까?

 

어디선가 비슷한 주제로 또 발표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은근한 기대가 있음을 부정하지 않겠다. 내 경험, 내 이야기가 너무 훌륭하고 막 더 알리고 싶고 자랑하고 싶어서라기보다는, 나도 내 경험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어떤 이야깃거리가 있는지 스스로도 궁금하고 최대한 많이 파내 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 계기로 내가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들과 주고받을 수 있는 장이 열리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해 준비한 덕분에 기대하지 못했던 발제비도 받았고(!!), 어제 발표를 야근 인정받아 오늘 오전에 이렇게 카페 휴식도 취할 수 있게 되어서 너무너무 좋다 ㅋㅋ

 

 

 

2019. 10. 21. 22:08. RSS feed. came from other blogs. Leave a Respo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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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홍콩에 저지르고 있는 일에 관심이 많이 간다. 물론 엄연히 중국 땅이었지만 영국 식민지가 되는 동안 중국과 많이 달라져 버린 홍콩. 지금의 상황까지 오지 않았으려면 애초에 영국이 식민 지배를 하지 않았거나, 반환하는 과정에서 조금 더 홍콩과 홍콩의 사람들에 대한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어버렸다.

 

여행을 하는 동안 중국인들을 조금 만났었다. 중국인들은 대부분 패키지여행을 하기 때문에 중국인 여행객들을 많이 보기는 했지만 깊이 사귄 것은 아니었다. 돌이켜보니 내가 여행을 하는 동안 중국에 대해 뭘 더 알게 되었는지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쉐삥을 만나서 함께 여행하고 사귀긴 했지만, 그녀는 베이징에 사는 의사로서, 엘리트 중국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깊은 대화를 나눠보지 못한 게 아쉽다.

 

싱가포리안인 송하고는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었지. 송은 아마도 중국계 싱가포르인 같은데 중국에 대해 매우 긍정적이었고 싱가포르 다음으로 중국을 좋아하고 자랑스러워하는 게 틀림없었다. 중국인들이 중국의 엄청난 국가주의에 대해 반감이 없고 오히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느낌은 아마 송으로부터 받은 것 같다. 싱가포르도 경제적으로는 매우 선진국이지만 정치적으로는 거의 독재에 가까운 국가 주도적 나라인데 50대 후반의 나이인 송은 이에 대해 나라가 하는 일에 너무 반대해서는 발전을 할 수가 없다며 젊은 세대들을 비판했다.

 

어딜 가나 떼로 몰려다니는 중국인들, 그리고 여행 현지의 문화를 존중하기보다는 자신들의 문화를 그냥 가지고 와서 오히려 현지인들이 받아들이도록 하고 있다는 느낌이 중국인들의 중국에 대한 자신감, 그리고 폐쇄적 국가주의를 엿보게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베를린에서 본 다큐멘터리 "American Factory"도 매우 큰 영향을 주었다. 미국에서 만든 다큐멘터리이기 때문에 미국의 시선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폐업한 미국의 공장을 사들여 재가동시키고 그로 인해 지역 경제를 다시 부흥시킬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가져왔던 중국 회사. 그러나 그들은 자본뿐만이 아니라 중국인 노동자들, 관리자들, 그리고 중국의 노동 문화까지 미국에 가져왔다. 그리고 그것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큰 갈등을 일으켰다. 근로 시간 준수, 노동 환경 안전, 민주적 의사교환 등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중국의 노동 문화. 미국인들은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재밌는 것은 중국인들에게는 이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고 이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미국인들이 이상해 보였던 것이다.

 

중국에서 회사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온 중국인 직원들은 중국에 있을 때 이 회사의 일자리 덕분에 먹고 살 수 있었다. 이 회사가 성장하고 발전하여 자신에게 일자리를 주고 급여를 주기 때문에 살 곳을 마련할 수 있었고, 결혼할 수 있었고, 자식을 기를 수 있었다. 그러니 회사가 계속 성장하도록 자신을 희생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 말고 중요한 것은 없었다.

 

중국인들이, 중국이 너무나 궁금했다. 왜냐, 중국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되었고 게다가 우리나라의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을 아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어서 중국의 홍콩 길들이기에 대해서도 조금씩 알게 되었다. 중국이 홍콩에 대해 범죄인인도 법을 통과시키려 하는데 이에 반대하는 홍콩 사람들인 시위가 국제 사회의 주목을 받게 되면서 이 상황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6월 경 절정에 달했던 이 시위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는 소식과 홍콩 사람들이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롤 모델로 생각한다는 점에서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10월이 된 지금까지도 이 사건은 해결되기는커녕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한 사태로 번져가고 있다. 홍콩 시민들의 요구는 받아들여지고 있지 않고 홍콩 정부, 그리고 그 배후의 중국 정부는 대화를 통한 갈등의 해결이 아닌 무력 진압으로 대응하고 있다. 페친 중에 한 분을 통해 시시각각 홍콩의 상황을 엿보고 있는데 늘 피투성이가 된 시민들의 사진이 올라온다. 매 시위마다 부상자, 아니 사상자들의 소식이 끊이지 않는다. 심지어 며칠 전에는 외신 기자가 홍콩 경찰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북한처럼 통제 사회도 아닌 곳에서 이런 잔인한 폭력이 대놓고 자행될 수 있다는 게 신기할 지경이다.

 

더욱 무력감을 느끼는 것은 이런 비인도적인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중국 정부에 대해서 그 누구도, 그 어떤 방법으로도 압력을 행사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다른 약소국들의 비민주적인 국가 권력에 대해서는 원색적인 비난을 서슴지 않는 서방 국가들이 중국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못 한다. 얼마 전 홍콩을 지지하는 발언을 SNS에 올린 미국 NBA 휴스턴 로키츠 팀의 감독으로 인해 NBA가 중국의 거센 보이콧을 당했다. 스폰서 철회, 불매 운동, 중계 취소 등. 중국이 거대한 소비력을 가지고 타국가들을 협박하기 때문에 중국의 비민주적, 비인권적 행태를 비판할 수 있는 국가, 기업이 없는 것이다. NBA가 해당 감독뿐만 아니라 협회까지 나서서 중국에 사과한 것을 두고 미국 정계에서 거세게 비판하고 있다고 한다. 어떻게 진행이 될지 궁금하다. 

 

한편, 중국이 소비력을 무기로 타국을 압박할 수 있다는 것은 중국 국민들이 중국 정부의 입장에 전적으로 찬성한다는 뜻이다. 홍콩에 대한 중국 정부의 대응을 비판하는 타국의 기업, 타국 정부에 대해 중국 국민들이 한 목소리로 분노하지 않고서는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없다. 중국인들은 민주주의와 자유의 가치를 왜 모르는 것일까?

 

이런 의문이 천안문 사태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게 됐다. 어제 천안문 사태에 대한 유튜브 한 편을 시청했다. 공산당 독재 치하에서 업악당하던 중국 국민들이 대학생과 지식인을 중심으로 민주주의를 요구했던 사건. 그러나 이 사건은 중국군의 무력 진압으로 인해 끔찍한 학살만을 남기고 실패했다. 그 뒤로 중국 정부는 천안문 사태에 대한 모든 자료를 삭제하고 인민들에 대한 국가주의 사상교육을 더 강화했다고 한다. 그래서 실제로 중국인들 중에는 천안문 사태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막대한 경제적 위협을 감수하고 중국의 인권탄압을 비난할 수 있는 나라가 없다. 기업도 없다. 무엇이 중국의 야망과 폭주를 막고 주변국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을까? 나는 중국 국민들의 각성 밖에는 없다고 생각한다. 너무 이상적인 생각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가장 현실적인 생각 아닌가? 하지만 중국 국민들이 천안문 사태의 실패를 극복하고 다시 민주화 운동을 일으키려면 정말 큰 계기가 필요할 것 같다. 현재와 같은 경제 발전의 분위기와 중화사상의 자신감 속에서는 자신들의 인권이 파괴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역사란 어떤 개인이나 집단의 끈질긴 노력에 의해서 변화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우연한 사건들에 의해 진행되는 것 같다. 큰 흐름을 바꾸기 어렵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과연 인류 역사는 진보하고 있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나는 그저 현재 내가 알고 있고 경험한 최대한의 윤리 의식과 양심에 의해 생각하고 행동하고 설득할 뿐이다. 그리고 다른 인간들에게도 그 양심이 존재할 것이고 각 사람의 양심과 양심에 근거해 위험을 무릅쓰는 실천하는 행동들이 또 다른 잠자고 있는 양심을 깨울 것이라고 믿을 뿐이다. 그것만이 이 세상에서 가장 믿을 만한 것이 아닐까.

 

2019. 10. 21. 22:04. RSS feed. came from other blogs. Leave a Respo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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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때 모이지 못했던 시친가댁 모임이 오늘 있었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사는 가족들이 다 같이 모이기 위해 선택된 장소는 막내 고모님이 사시는 서천. 당일치기 모임이기 때문에 새벽 6시에 집에서 출발했다.

 

나는 오늘 이동하는 동안 차에서 거의 내내 잠만 잤다. 책도 두 권이나 챙겨갔는데 10장도 못 읽은 것 같고 듀오링고도 조금 하긴 했지만 거의 대부분의 시간에 잤다. 피곤하기도 하고, 시부모님과의 대화를 조금 피하고 싶기도 하고. 평소엔 대화하는 걸 좋아하지만 요즘에는 곤란한 걸 물으실까 봐 좀 긴장이 되곤 한다. 우리 계획이라든지, 교회에 관련된 거라든지, 돈 문제라든지. 그래 봤자 염려하시는 것뿐이긴 하지만 염려를 드리고 있다는 걸 느끼는 게 좋지도 않고 혹시나 우리를 위해 과한 도움을 주실까 봐 걱정이 되기도 하고 그렇다.

 

날씨가 매우 더웠다. 먼 길 오가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점심 한 끼는 아주 든든하고 맛나게 먹어서 좋았다. 너무 도움도 안 드리고 밥만 얻어먹었나 싶긴 한데, 아직 나는 여기서는 아기이고 손님이니까 내가 뭘 더 할 것은 없겠다 싶었다. 남편이랑 가영이도 안 하는데 뭘. 대신 소윤이 시윤이를 데리고 나가서 놀고 왔다. 얘들이 없으면 얼마나 더 어색할 뻔했나.

 

그래도 사촌동생들 중에서 제일 친한 아이들은 하재, 샘이, 서영이다. 자주 봐야 정든다는 말이 정답이다.

 

낮엔 그렇게 덥더니만 밤엔 꽤나 쌀쌀했다. 목티에 트렌치코트까지 입었는데도 추웠다. 오늘이 보름이던가, 달이 아주 휘영청 밝았다.

 

오늘 길에 차 안에서 어머님의 사는 이야기, 힘드신 것 얘기를 하다가 결국 오늘도 살아온 인생이 얼마나 고달프셨는지 듣기도 하고 또 위로와 격려를 말을 해드리기도 했다. 듣다 보면 늘 똑같은 레퍼토리인데 어머님은 늘 저 얘기구나라는 생각이 아니라, 얼마나 저 이야기를 제대로 듣고 이해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저 이야기가 아직까지도 이렇게 제자리를 빙빙 돌며 허공에 소리를 뿌리고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이야기할 곳이 우리에게 밖에 없으시겠지. 지금 당장 바꿀 힘도, 바꾸고 싶은 마음도 없다는 말도 이해가 된다. 그렇게 30년이 넘게 살아오셨으니까. 하지만 천천히 조금씩 그 고통의 세월을 내려놓으실 수 있도록 도와드리고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지만, 격려와 기도로.

 

 

 

2019. 10. 21. 22:01. RSS feed. came from other blogs. Leave a Respo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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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개천절을 이용해서 집 구조를 바꿨다.

 

우리 집은 작은 방 하나에 거실이 있는 사실상 1인용 아파트인데 신혼이라고 들떠서 너무 큰 침대를 사는 바람에 작은 방에 침대를 넣으면 꽉 찬다. 재작년 여름, 방에서 자는 게 너무 답답해서 획기적으로 침대를 거실에 내놓았었다. 그 상태로 2년을 넘게 지냈다. 확실히 여름에는 방에서 자는 것보다 탁 트인 느낌이 있어서 좋다. 집에 아이가 있거나 손님이 자주 오는 것도 아니니까 침대가 거실에 있다고 해서 크게 불편할 것도 없었다.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 남편은 집에서 작업을 하는 일이 많아졌다. 하지만 집이 작업하기 좋은 환경이 아니다보니 자꾸 카페를 가게 되는데 매일 한 번, 많으면 두 번씩 카페에 가게 되니 지출이 커졌다. 그래서 홈오피스에 대한 생각이 커졌나 보다.

 

그리고 9월 말, 우리가 늘 한 번 가보고 싶었던 동해시의 "단순한 진심"에 다녀오고 나서 좋은 공간에 대한 열정이 커진 것도 있다. 넓거나 세련된 가구들로 꾸며진 것이 아니지만 정말 딱 알맞은 아늑함과 편리함을 주는 단순한 진심의 비밀이 공간지기인 현우 님의 고민과 여러 번에 걸친 공간 배치 시도 끝에 나온 것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

 

남편이 주목한 것은 두 가지였다. 침대를 다시 방에 넣고 거실을 넓게 쓰자. 그리고 가장 생산성을 높여줄 데스크는 앉았을 때 창 밖이 보이는 자리에 놓자. 우리 집은 베란다로 연결되는 샤시가 매우 좁다. 일반 문 넓이 2배 정도밖에 안된다. 게다가 베란다에는 이런저런 짐들이 있기 때문에 열지 않는 문은 거의 항상 커튼으로 가려둔다. 그러니 밖을 볼 수 있는 공간은 고작 문 하나 정도의 넓이 밖에 안 되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틈으로 밖을 바라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자리에 데스크를 두기로 했다. 

 

두 가지 조건을 놓고 여러 가지 배치를 생각해보고 시도해봤다. 일단 침대를 방으로 넣고 방에 있던 책장을 밖을 뺀 다음에 이리저리 배치를 바꿔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번에 생긴 가장 큰 변화 중에 하나는 이 집으로 이사 오고 나서 항상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소파의 자리를 바꾼 것이다. 아까 말한 밖을 내다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자리에 원래 소파가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 책상을 놓기 위해 소파는 상대적으로 구석진 반대편 벽 앞으로 옮겼다.

 

개천절 아침 3시간 동안 쉴 틈 없이 움직였다. 가장 재밌었던 부분은 소파나 책장 등을 이리저리 옮기면서 실제로 앉아보고 바라보고 하면서 느낌에 맞춰 배치를 바꿨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는 단순한 진심의 현우 님이 해봤다는 방법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인테리어만큼 직관이 중요한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배치를 바꾸고 나서 우리 둘 다 매우 흡족하다. 결과가 좋은 것도 있지만 그 결과를 둘이서 만들어 냈다는 것이 내내 뿌듯하다. 정말 작은 변화이고 시도이지만 해내었다는 성공의 느낌이 이렇게 좋은 것일 줄 몰랐다. 그 성공의 느낌이 괜한 자신감을 준다. 또 해보고 싶은 마음을 준다. 더 잘해보고 싶은 마음을 준다.

 

요즘 작은 성공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한다. 충분히 가능성이 많은 사람들인데 자신을 너무 작게 생각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너무 큰 꿈만을 바라보며 이룰 수 없어 괴로워하는 주변 사람을 보며 드는 생각이다. 작은 성공부터 만들어나가면 좋을 텐데, 어쩌면 그 작은 성공만으로도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도 있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든다.

 

4명을 뽑는데 1,000명이 몰린다는 실용음악과 보컬학과를 지망한 A. 이렇게 거의 가능성 없는 시도만을 반복하다 보면 지칠 수밖에 없다. 입시철을 지나고 있는 지금, 우선은 열심히 하라고 즐기면서 하라고 응원해주었다. 혹시나 이번 해에 학교에 붙지 않는다면 가수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네가 다른 방면에서 작고 다양한 성공 경험을 쌓아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2019. 10. 21. 21:58. RSS feed. came from other blogs. Leave a Respo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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