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동안 고민해오던 대학원 진학에 대해 드디어 결론을 내렸다. 공부를 더 하고 싶은 생각은 있었지만 이거다 싶은 확신이 들지 않아서 할까 말까를 엄청 망설였었다. 기교연 연구원들과의 대화 이후 내가 정말 준비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세부 전공도, 교수님도 내가 하는 것처럼 검색 정도로 알아봐서는 안 되는 거였다. 그리고 얘기를 듣다 보니 국내 대학원이 매우 폐쇄적인 곳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원을 하기도 전에 미리 교수님을 만나서 인사를 드리는 게 좋고 그렇게 미리 컨택을 한 학생과 교수가 이야기가 잘 맞으면 그 학생을 유치하기 위해 교수가 애를 쓰기도 한다고 한다. 그게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이제 와서 내가 배우고 싶은 교수님들을 알아보고 컨택해보기에는 시간도 너무 촉박하고 혹시나 고압적이거나 권위적인 교수를 마주치게 되면 그냥 기분이 많이 우울할 것 같아 내키지 않았다. 결국 올해 대학원 진학은 안 하기로 했다. 

 

대신 방송통신대 교육학과에 편입을 준비해보려 한다. 학비도 싸고 업무와 병행 가능하고 혹시 이후에 교육학 대학원에 진학을 하고자 할 때 여러모로 가교 역할이 될 것 같다. 사실 나는 타 전공자이기 때문에 교육학에 대한 기초가 없으니까 학부과정만 이수해도 지금보다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또 '나름대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리서치로서의 의미도 있다. '나름대로' 기획 회의를 하는데 부딪힌 문제점 중의 하나는 우리가 방송대의 교육의 질을 잘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도 직접 경험해보기로 했다. '직접 해보기'가 우리 팀의 공식 기획 절차가 될 것 같은 예감.

 

브라이스 캐니언 여행 중에 병구쌤의 '나름대로' 구상을 전해 들었을 때만 해도 정말 너무 발칙한 상상이라서 머리가 어질하고 두려운 마음이 컸는데 언젠가부터 담담해지고 자연스레 받아들여졌다. 어제 간담회에 참석하셨던 꽃친 부모님들의 표정도 무척이나 담담해서 다른 참가자들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새삼스레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사회에 참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교육개혁을 외치는 사람들 중에서도 직접 궤도를 벗어나 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가지는 상상력의 차이가 크다. 하지만 그런다 한들 아파트의 이름 앞에 소중한 결혼 계획을 내려놓는 사람들과의 차이만큼이나 클까. 태극기, 성조기, 이스라엘기 골고루 섞어 배낭에 꽂고 광화문으로 나서는 신실한 장로님들과의 차이만큼이나 클까. ㅇㅇ한 것들은 죽여도 된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과의 차이만큼이나 클까.

 

세계여행 1년이면 대단한 현자는 아니어도 조금은 현명해질 줄 알았는데. 여전히 나는 나다. 꽃친 전후로 바뀐 게 없다는 세준이의 말이 진정 진리인가 보다. 뭔가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도 강박이고 그걸로 내 경험의 긍정적인 면을 증명해야 하는 것도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꽃친 연구에 참여하고 있는 꽃치너들도 어쩌면 자기 최면적 대답에 서서히 질식해 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도 된다. 누군가 계속되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해주면 통쾌하겠다.

 

젠장! 망할 놈의 변화 좀 그만 물어봐요. 하고 싶었으니까 한 것뿐이고 아무 나쁜 일도 안 생겼다는 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의 전부예요.

 

 

 

 

 

2019. 10. 30. 00:07. RSS feed. came from other blogs. Leave a Respo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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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한참 집중력이 떨어져 가던 오후 3시, 올 사람이 없는데 누가 사무실에 들어온다.

"아, 쌤~ 오늘 어쩐 일이세요"

화, 금에만 꽃친에 오시는 유식쌤이 갑자기 사무실에 오셨다.

"이따 근처에서 약속이 있는데 시간이 남아서요. 밖에 조용히 있다가 갈게요."

하지만 유식쌤의 등장으로 우리는 핑계 낌에 티타임을 가졌다. 마침 내가 점심때 사온 꽈배기 간식도 있었기에.

 

쌤들 넷이서 다 같이 아이들 없는 휴식 시간을 가진 건 오랜만인 것 같다. 하지만 오늘도 우리는 열렬히 아이들 얘기를 했다.

주로 지난 모임 후에 있었던 일대일 상담 이야기였다.

 

또미는 요즘 부모님과의 갈등이 한창이다. 서로 못할 말까지 내뱉어 가면서. 이제는 왜 싸우는지 알지도 못하고 서로 증오하는 감정만 더해져 가고 있다. 하지만 얘기를 가만히 들어보면 또미는 부모님 사랑이 너무 고픈 아이다. 여름에 잠시 삼촌댁에 가 있는 동안 떨어져 있던 부모님과의 사이가 가장 애틋했다며. 가끔 3박 4일 정도 같이 여행을 하면 예쁜 사진을 찍어 부모님에게 보낸다. 어느 한 쪽만 잘못해서 싸우는 일은 없겠지만 우리는 주로 아이들을 만나기 때문에 아이들 입장에서 생각하게 된다. 그냥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예쁜 아이들을 하나부터 열까지 못마땅하게만 생각하고 야단치시는 부모님들을 보면 참 안타깝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 싶기도 하고, 오히려 너무 가까이 있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지 못하는 걸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어떻게 보면 가족의 입장에서 제3자일 수밖에 없는 우리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신다는 것이다. 결국 이걸 해결하는 것은 그 가족의 몫이겠지만.

 

한수와 상담을 하는 날 수진쌤은 장난스레 난감함을 표하셨다. 한수는 좀처럼 솔직한 마음을 이야기하지 않는 친구이기 때문에 그렇다. 멀쩡한 척, 쿨한 척, 상관없는 척하면서 하나마나한 이야기들로 시간을 때운다. 그러니 이야기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힘이 빠질 수밖에. 너 이 녀석, 그렇게 대화를 회피하기만 하면 안 되는 거야!라고 따끔한 말을 해주고 싶기도 했지만 언젠가 이 아이가 우리를 더 믿게 되면 진짜 자기 속마음을 뭐라도 얘기하겠지라는 마음으로 그 신뢰 관계를 섣불리 망쳐버리기 싫어서 싫은 소리는 꾹꾹 참았다. 혹시 오냐오냐가 아니라 쓴소리해주는 게 우리 책무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만날 때마다 하면서 말이다. 그러던 한수가 지난 시간에는 슬쩍 자기 얘기를 하더란다. 사실 수진쌤은 한 15분쯤 이야기하시고 한수가 또 시답잖은 이야기를 하면 일찍 마무리하시려고 했단다. 그런데 잠시의 침묵 후에 사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는 얘기를 했다고 한다. 물론 중간중간 센척하는 건 여전했지만, 그 정도는 한수의 자존심일 테니 지켜줘야 한다. 아무튼 은근슬쩍 우리에게 SOS 신호를 보내온 한수가 고맙고 다행이었다. 그동안 잔소리를 꾹 참아온 우리 모두에게 큰 선물이었다. 

 

그렇게 1시간을 네 명의 길잡이 교사들이 모여서 9명의 아이들을 떠올리며 이런저런 마음을 나눴다. 이 정도 비율이 되니까 한 명 한 명의 사정을 들여다보고 마음을 헤아려보고 조금 더 사려 깊게 대하는 게 가능하다. 우리도 사람이니까, 그리고 벌써 애들이 16~17이면 어른들의 마음도 막 공격하고 그러니까, 때로는 속상하고 힘들고 피하고 싶은 이슈들이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판단이 서지 않을 때, 또 다른 성숙한 시선을 가지고 나를 도와줄 팀원이 있다는 것은 정말 든든한 일이다. 우리끼리는 우스갯소리로 애들 뒷담화 한다고 말하곤 하는데 이만큼 사랑을 쏟아붓는 시간이 없다.

 

진로수업 피드백 회의를 하러 오신 지연쌤이 이런 말을 하셨다. 매번 수업이 끝나면 전체 수업과 아이들 개별에 대한 일지를 작성해서 보내주셨다. 수업에 다 참관한 게 아니었던 우리로서는 매우 도움이 되는 자료였는데 그걸 쓰는 게 힘들진 않으셨는지 여쭤보았다.

"조금 시간이 들긴 했지만 저에게도 좋은 시간이었어요. 사실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관심을 가지고 개별적인 상태를 알아차릴 수 있었던 건 일지를 정리하면서였어요. 수업을 하는 중에는 그게 잘 보이지 않거든요."

나도 이 말에 참 공감이 되었다.

 

그래서 쌤들의 아이들 뒷담화 시간은 꼬옥 필요하다. 또미 이야기를 하면서 '이렇게 예쁜 아이를, 이렇게 그냥 있기만 해도 소중한 아이를'이라는 말을 열 번도 넘게 하시는 현아쌤을 보면서 저렇게 사랑스러울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모든 아이들이 아이 10명 당 쌤 4명 정도의 비율로 전적인 사랑과 관심을 받으며 딱 1년씩만 여유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아이들의 삶은 그 시절의 기억으로 얼마나 용기 있어 질까. 이 정도의 돌봄 규모를 어떻게 현실화할 수 있을까.

 

2019. 10. 30. 00:02. RSS feed. came from other blogs. Leave a Respo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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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0

 

남편을 먼저 보낸 신고식을 호되게 치르고 있다. 출국 며칠 전부터 같이 호흡을 맞추며 정신없이 지내다가 긴장이 풀려서 그런 건지, 내게도 다가오는 여행의 시작이 갑자기 실감 나서 그런 건지, 연애를 시작한 뒤 가장 오랜 기간 동안 떨어져 있게 돼서 그런 건지, 처음으로 혼자 해외로 나간 남편이 걱정돼서 그런 건지, 아무튼 아프다.

 

하지만 나에게는 출국 전 마쳐야 하는 몇 가지 중요한 일들이 남아 있다. 그중에 하나는 '꽃다운친구들' 가족들에게 나의 여행 소식, 그리고 그로 인한 긴 부재의 소식을 알리는 일이다. 

 

'꽃다운친구들'(줄여서 꽃친)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가기 전 1년 동안 자발적인 방학을 가지며 휴식, 놀이, 자기 탐구 등의 시간을 가지는 청소년과 그 가족들의 공동체이다. 꽃친은 학교나 학원이 아니라 비영리 운동의 모양새를 가지고 있고, 나는 3년 전 꽃친이 태동할 때 이 팀에 합류하여 지금까지 이 단체의 행정간사로, 아이들의 길잡이 쌤으로, 도대체 이런 짓이 필요한 일이긴 한 건지 고민하는 자발적 연구자로 함께 일하고 있다. 

 

꽃친쌤으로 산다는 것은 1년 동안 17세 내외의 외계인 같은 아이들 10여 명과 일주일에 두 번씩 하루 종일 함께 먹고 논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1년에 네다섯 번 정도 여행을 가면 먹고 놀고 헤어지지 않고 같은 집으로 들어가 쌩얼도 보고 잠꼬대도 듣는다. 특히나 이 시간 동안 무언가 성취하는데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각 아이들의 마음과 생각에 집중하며 관계를 쌓다 보니 그냥 학생과 쌤의 관계 이상의 것이 우리에게 사이에 생겨난다. 

 

2016년에 시작된 1기, 작년의 2기를 거쳐 올 해에도 3기 친구 10명과 신나는 1년의 방학을 시작했다. 그런데 함께 시작한 마라톤을 끝까지 함께 완주하지 못하고 중간에 내가 여행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게 하려고 애초에 시작하기 전인 3월에 떠나려고도 생각했었다. 지금 와서는 반년이라도 3기 친구들을 만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언제, 어떻게 작별을 이야기해야 하는지 여간 고민이 되는 게 아니었다. 미리 말해서 마음의 준비를 하게 해야 하나? 너무 일찍 말하면 아이들이 나와의 관계에 신뢰를 잃은 채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지는 않으려나? 함께 일하는 선생님들과 의논한 끝에 결국 상반기 활동을 마무리하는 발표회 날에 이야기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날이 바로 오늘이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어제 오후부터 시작된 체기가 여전히 몸에 남아 있었다. 카톡을 보니 어제 밤늦게까지 꽃친 쌤들이 수고해주신 흔적이 남아있다. 얼른 뒷 마무리를 내가 하고 집을 나섰다. 먼 길이지만 최대한 좋은 컨디션을 만들기 위해 택시를 타기로 한다. 나의 쉼을 끊임없이 방해하는 택시 아저씨의 무례함에 무응답으로 대응했는데도 내릴 때쯤엔 헛구역질이 났다. 행사를 준비하는데 계속 헛구역질이 나서 결국 극단의 조치를 취했다. 브라를 벗었다. 여행 다닐 때는 노브라로 다닌 적이 가끔 있었지만 한국에서는 그런 적이 없는데, 이걸 풀지 않으면 계속 구역질이 나고 결국 몸을 가누지 못할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도 아니고 아이들과 그 부모님들이 나를 이상한 쌤이라고 생각하면 어쩌지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이게 살아있는 페미니즘 교육이지 싶었다. 거울 앞에 서서 한참을 티가 나나 안 나나 관찰하다가 남자들은 늘 티셔츠 겉으로 티 나게 다니는데 무슨 상관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아파 죽겠는데 속옷 하나 벗는 게 뭐 대수인가 싶었다.

 

다행히도 점점 몸이 좋아져 끝날 때쯤 되니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고, 행사도 큰 무리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마지막으로 온 가족들이 동그랗게 둘러앉아서 꽃친으로 보낸 반년의 시간의 의미를 이야기하는 써클타임 시간을 가졌다. 나의 여행 소식은 이 순서에 알리도록 되어 있었다. 내 컨디션과 씨름하며 행사 진행에만 신경 쓰느라 정작 뭐라고 이야기해야 할지 준비가 되지 않았었다. 고민 끝에 각자의 키워드를 적는 종이에 '나도 꽃친 하고 올게'라고 적었다. '학생의 본분은 공부지'라는 획일적인 고정관념, 그리고 그 안에 도사린 '뒤쳐지면 죽는다'라는 모두의 숨통을 조이는 협박 앞에서 '과연 그럴까?'를 외치며 보란 듯이 놀고 웃고 기다리고 손 잡는 그런 시간, 그런 사람들이 바로 꽃친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잘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이 나를 옥죄어 올 때, 진짜 나는 누구인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생산하는 인간이 아닌 존재하는 인간으로서 보내는 충분한 시간이란 어떤 것인가, 나와 이해관계가 전혀 없는 타인과 만나고 대화하고 우정을 나눈다는 것은 어떤 감각인가를 느끼고 싶어서 떠나는 나의 여행이야 말로 '꽃친'과 꼭 닮은꼴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숙제를 마쳤다. 모인 사람들 중에 미리 알고 있던 분은 거의 없었다. 다소 무책임하다고 느끼진 않을지 걱정했었는데 대부분 나의 취지를 잘 이해해주었고 기대 이상의 격려와 응원을 해주었다. 꽃친을 현재 진행형으로 경험하고 있는 이들이기에 나에게도 꽃친이 필요했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앞으로 어떤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것인지 어렵지 않게 이해한 것 같았다. 

 

남은 반년은 보지 못할 거라는 이야기를 전하니 은혜가 울었다. 꽃친에서 보낸 반년에 시간에 대한 자신의 키워드를 ‘소중함’이라고 적어낸 아이다. 은혜 어머니도 나에게 계속 배신이야를 외치셨다. 그게 싫지가 않다. 나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니까. 모전여전이다. 남자아이들은 헤헤거린다. 장난친다. 마지막으로 사진을 같이 찍자고 했는데 다들 너무 밝게 웃는 거 아니냐며 핀잔도 들었다. 뭐 사실 생각해보면 슬픈 일은 아니니까.

 

우리의 여행이 꽃친 아이들에게 아직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었기 때문에 남편은 출국하면서 출국 포스팅도 하지 못하고 나갔다. 아이들과 SNS 친구이기 때문이다. 이제 뭐든 올려도 된다고 얘기해줬다. 남편이 고생했다고 말해줬다. 글쎄, 고생했나? 생각보다 덤덤하게 지나간 것 같다. 지금 나는 아직 남편이 떠난 여파가 더 크다. 아이들과의 이별도 그 일이 다 벌어지고 난 후에야 여파가 밀려오겠지. 하지만 내년에 더 멋진 예지쌤이 되어 돌아오기로 했으니 그 약속을 힘으로 삼아 그리움을 잘 이겨내 봐야겠다. 

 

 

*꽃다운친구들 : http://www.kochin.kr

 

2019. 10. 21. 22:39. RSS feed. came from other blogs. Leave a Respo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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