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 시간 - 11

  1. 2019.10.21 주말의 의미 (1)
  2. 2019.10.21 푹 가라앉은 일주일
  3. 2019.10.21 서천에 다녀오다
  4. 2019.10.21 집 구조 바꾸기의 뜻밖의 수확
  5. 2018.01.16 코딩야학
  6. 2017.12.29 20171228
  7. 2017.10.24 '행복'을 의심하기 20171022_SUN
  8. 2017.10.24 안전과 도전 20171021
  9. 2017.10.17 화요일은 꽃친과 20171017
  10. 2017.10.17 알차도다 대체휴가 20171016

 

주말도 이제 다 지나간다. 오늘 오전에 빨래를 개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주말에 기대하는 것도 바뀌었구나.'

 

예전에 뭘 기대했는지는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일요일엔 교회를 다녀오면 시간이 거의 다 가버렸기 때문에 주말이란 토요일 하루였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마저도 행사나 약속이 없는 토요일은 흔치 않았다. 오후에 일정이 있다면 일어나서 간단히 아침을 먹고 빨래나 청소 등의 집안일을 한 뒤 나갔다 오면 하루가 끝난다. 오전에 일정이 있다면 주 중과 다름없이 서둘러 집을 나서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주말이란 비록 출근은 하지 않지만 내가 보내고 싶은 모양으로의 시간이 아닌 그냥 그렇게 무엇인가로 채워지는 시간이었다.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 생각해보지도 못한 것 같다. 기껏 해봤자 이번에 개봉한 무슨 영화 보고 싶다 정도. 하지만 그렇게 살아온 지가 벌써 십수 년이기 때문에 딱히 그게 이상하다고 느끼진 않았었다. 

 

하지만 여행을 다녀온 뒤로는 그게 조금 달라졌다. 1년 동안 한국을 떠나 여행을 하는 동안에 그전엔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아니 당연한지 당연하지 않은지 한 번쯤 생각해 볼 대상으로 여기지도 않았던 많은 생활 습관들이 전부 초기화되었다. 시간, 공간, 관계 등 모든 것이 갑자기 다른 세계로 옮겨갔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다시 돌아와서 마주하게 되는 한국 사회, 내가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이 사회의 많은 것들, 그리고 그 속에서 당연하게 살아온 나의 모습을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새롭게 발견하게 된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주말이다.

 

여행하는 동안 그 어떤 일정도 채워져 있지 않았던 백지 같은 하루하루가 주 5일 출근해야 하는 날로 바뀌었다. 그러다 보니 일주일 중 온전히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단 이틀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지, 그리고 얼마나 짧은 시간인지 절감했다.

 

참 애석한 일이지만 나는 빠르게 주 5일 노동자의 일상에 익숙해지고 있다. 성실한 노동자이자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월~금 9시~6시는 내가 아닌 일에 나의 시간을, 아니 나의 자아를 내어준다. 그 시간 동안에는 일과 상관없는 영역에서의 나의 생각, 나의 욕망, 나의 취미, 나의 몽상, 나의 딴지, 나의 기쁨과 슬픔은 잠시 지워진다. 게다가 지워진 나라는 것이 6시가 지났다고 하고 바로 다시 살아 돌아오는 것이던가. 한 시간의 퇴근길 동안에도, 남편과 마주 앉아 밥을 먹는 시간까지도 잘 돌아오지 않는다.

 

매일 하루 일과가 끝난 뒤 좋아하는 책을 읽을 시간, 한 줄 일기를 남길 시간이 도무지 없는 것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1시간 단위로 국영수사과의 경계를 넘나드는 고등학교의 시간표처럼 빠르게 모드를 전환하여 저녁 시간을 쓰는 것은 내게는 버거운 일이다. 매일 핸드폰 어플로 하는 스페인어 공부와 내일의 삭신을 책임져 줄 스트레칭 정도만 겨우 하고 있다.

 

풍과 함께 우리 최소한 일요일만큼은 아무 일정도 만들지 말자고 다짐하고 있다. 현대인이라면 이게 참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일정이 없는데도 일요일에 만나자고 하는 사람을 거절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그런 일은 없었지만 혹시 누군가 일요일에 만나자고 한다면 무슨 말로 거절하는 게 좋을까 가끔 생각해보곤 한다.

 

다행히도 오늘은 우리 둘 다 아무 일정을 만들지 않는데 성공한 날이었다. (이러다 영영 이게 너무 쉬운 일이 되어버리는 건 아니겠지.. 그건 그것 나름대로 좀 비참한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어제는 왠지 잠이 오지 않아 새벽까지 둘이 얘기를 했고 오늘은 한국에 돌아온 뒤로 가장 늦은 시간에 일어났다. 일어나자마자 점심을 해먹고 거실에 널려 있던 빨래를 걷어 개다가 저 생각이 든 것이다.

 

자느라 없어져 버린 오전 시간까지 아까워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제 남은 시간 동안 무얼 할 수 있을지 헤아려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었다. 동네 카페에 가서 맛있는 커피를 마셔야지. 블로그도 써야지. 책도 읽어야지. 작은방에 달고 싶은 커튼도 알아봐야지. 지난 일주일 동안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사느라 내 머릿속에 등장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지극히 사적인 생각들을 꺼내봐야지. 이게 바로 주말이구나. 이게 바로 내가 주말에 기대하는 것이구나. 주말이란, 휴식이란, 안식이란 이런 것이구나.

 

그런 생각들을 하는 동안 내 몸에 느껴지는 감각이 여행을 할 때의 그것과 너무 비슷해서 놀랐다. 그리고 기뻤다.

 

앞으로 내 일상이 더 바빠진다면 이마저도 누리지 못할 수도 있다. 지금 같아서는 주 5일 출근에, 주 1~2회 정도 저녁 일정에, 토요일 하루 일정 정도가 내가 허용할 수 있는 최대 바쁨이다. 이 이상 내 시간을 무언가에 내주기는 싫다. '나는 나구나. 내가 여기 있구나.'라는 생각을 되살릴 최소한의 휴식 시간을 사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일 내년에 대학원을 가게 된다면, 1~2년 사이에 육아를 하게 된다면, 일주일에 딱 하루 온전히 내 휴식 시간을 갖는 것은 불가능해질지도 모르겠다. 그럼 어떡하지?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보자.

 

 

 

2019. 10. 21. 22:21. RSS feed. Trackback 0 came from other blogs. Leave a Respo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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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익명

    비밀댓글입니다

    2020.02.09 15:55  ×  +

 

월요일 저녁 보고회 발표에서 너무 잘난 척을 많이 한 탓인지.. 화요일부터는 내내 맥을 못 추고 있다.

 

일에 있어서도 좀 멍하고, 하루 종일 해내는 일의 양도 적다. 살짝 길을 잃은 느낌이다.

 

어제는 남편과 같이 거의 10시쯤부터 자기 시작했다. 덕분에 아침에 충분히 잔 느낌으로 일어나긴 했는데 1시간 출근길을 거치고 사무실에 도착하니 벌써 진이 빠졌다. 아침에 급히 먹은 샌드위치가 살짝 체한 것 같기도 하고..

 

결국 점심 먹고 나서는 몸도 머리도 너무 무거워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잠시 책상에 머리를 대고 누워 쪽잠을 잤다. 잠시 후 나는 아예 쿠션까지 베고 제대로 숙면을 취했다. 거의 한 시간. 말해두지만 나는 늘 자발적으로 매우 열심히 일하는 편이다!! 오늘은 정말 힘든 날이었다.

 

오랜만에 꽃친 2기 예담이를 만나기로 했다. 예담이가 4:30쯤 도착했다. 아침까지만 해도 예담이한테 뭐 좋은 얘기를 해줘야 할 것 같아서 고민이 됐는데 3시쯤부터는 예담이가 빨리 오기만을 기다렸다. 나가서 얘기라도 하고 그러면 상태가 나아질 것 같아서. 역시나 예담이를 만나서 이런저런 사는 얘기도 듣고 나름 선생질도 하니 몸도 마음도 기운이 좀 났다. 내가 그 몸과 마음 상태로 할 수 있는 일 중에 가장 생산적인 일이었을 거다.

 

바늘 틈같이 좁은 실용음악 입시를 통과하느라 많이 지쳐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 외로 덤덤하고 씩씩해서 다행이었다. 하지만 내가 모르는 시간에 많이 외롭고 불안하겠지. 꿈을 좇되 꿈에 짓눌리지 말자고 얘기했다.

 

코노에 가서 예담이 노래를 듣는데 노래가 많이 늘었다. 그런데 노래가 늘었다는 게 예대 입시에, 혹은 뮤지션으로 살아가는데 중요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 감정도 찐하게 전달됐다.

 

근데 그보다도 나는 그냥 예담이가 노래하는 모습이 너무 예뻤다. 내 눈엔 이르케 이쁘고 기특한데.. 교수님들 앞에 가면 냉정하게 평가받겠지? 이런 게 고슴도치 엄마의 마음인가 보다.

 

예담이도 알게 모르게 또 한 뼘 자랐다. 이제 몇 개월 뒤면 ‘아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나이가 되겠지. 스무 살이 된다니 책임져야 할 것이 많아질 것 같아 좀 걱정도 된단다. 뭘 얼마나 책임지려구~ 하면서 웃었지만 나도 저 나이 때 정말 사소한 일에도 큰 책임감을 실감했던 기억이 난다. 남이 보기엔 작은 일이어도 자기가 직접 한다는 게 중요한 거겠지.

 

예담이 동생이 올해 16, 내년에 17이다. 딱 꽃친 나이. 예담이는 꽃친 했을 때 너무 좋았고 다시 돌아간대도 또 하고 싶단다. 우리에겐 최고의 칭찬이다. 그땐 우리가 더 서툴고 해준 것도 부족했던 것 같은데. 그래서 동생에게도 권하고 있지만 동생은 공부 압박이 심해서 안 할 것 같다고 한다. 그런 친구에게 더 필요한데... ㅋ 하지만 쉼이 필요하다는 자각이 없이 오는 친구들은 꼭 와서 고생을 너무 많이 한다. 그래서 억지로 설득할 생각은 전혀 없다. 예담이에게 칭찬 들은 걸로 만족해야지. 

 

서윤이가 생일이라고 돈을 보냈단다. 참 재밌는 친구다. 정작 만나자고 하면 바쁘다고 코빼기도 안 뵈는데. 예담이는 어머니가 아프신 서윤이에게 마음이 쓰인다고 했다. 나는 그런 말이 참 놀랍다. 그 나이 때는 물론 지금도 나는 잘 쓰지 않는 말인데.. 어릴 때부터 남에게 마음이 쓰이는 경험을 하는 아이들은 어떤 사람인 걸까. 본받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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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때 모이지 못했던 시친가댁 모임이 오늘 있었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사는 가족들이 다 같이 모이기 위해 선택된 장소는 막내 고모님이 사시는 서천. 당일치기 모임이기 때문에 새벽 6시에 집에서 출발했다.

 

나는 오늘 이동하는 동안 차에서 거의 내내 잠만 잤다. 책도 두 권이나 챙겨갔는데 10장도 못 읽은 것 같고 듀오링고도 조금 하긴 했지만 거의 대부분의 시간에 잤다. 피곤하기도 하고, 시부모님과의 대화를 조금 피하고 싶기도 하고. 평소엔 대화하는 걸 좋아하지만 요즘에는 곤란한 걸 물으실까 봐 좀 긴장이 되곤 한다. 우리 계획이라든지, 교회에 관련된 거라든지, 돈 문제라든지. 그래 봤자 염려하시는 것뿐이긴 하지만 염려를 드리고 있다는 걸 느끼는 게 좋지도 않고 혹시나 우리를 위해 과한 도움을 주실까 봐 걱정이 되기도 하고 그렇다.

 

날씨가 매우 더웠다. 먼 길 오가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점심 한 끼는 아주 든든하고 맛나게 먹어서 좋았다. 너무 도움도 안 드리고 밥만 얻어먹었나 싶긴 한데, 아직 나는 여기서는 아기이고 손님이니까 내가 뭘 더 할 것은 없겠다 싶었다. 남편이랑 가영이도 안 하는데 뭘. 대신 소윤이 시윤이를 데리고 나가서 놀고 왔다. 얘들이 없으면 얼마나 더 어색할 뻔했나.

 

그래도 사촌동생들 중에서 제일 친한 아이들은 하재, 샘이, 서영이다. 자주 봐야 정든다는 말이 정답이다.

 

낮엔 그렇게 덥더니만 밤엔 꽤나 쌀쌀했다. 목티에 트렌치코트까지 입었는데도 추웠다. 오늘이 보름이던가, 달이 아주 휘영청 밝았다.

 

오늘 길에 차 안에서 어머님의 사는 이야기, 힘드신 것 얘기를 하다가 결국 오늘도 살아온 인생이 얼마나 고달프셨는지 듣기도 하고 또 위로와 격려를 말을 해드리기도 했다. 듣다 보면 늘 똑같은 레퍼토리인데 어머님은 늘 저 얘기구나라는 생각이 아니라, 얼마나 저 이야기를 제대로 듣고 이해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저 이야기가 아직까지도 이렇게 제자리를 빙빙 돌며 허공에 소리를 뿌리고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이야기할 곳이 우리에게 밖에 없으시겠지. 지금 당장 바꿀 힘도, 바꾸고 싶은 마음도 없다는 말도 이해가 된다. 그렇게 30년이 넘게 살아오셨으니까. 하지만 천천히 조금씩 그 고통의 세월을 내려놓으실 수 있도록 도와드리고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지만, 격려와 기도로.

 

 

 

2019. 10. 21. 22:01. RSS feed. Trackback 0 came from other blogs. Leave a Respo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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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개천절을 이용해서 집 구조를 바꿨다.

 

우리 집은 작은 방 하나에 거실이 있는 사실상 1인용 아파트인데 신혼이라고 들떠서 너무 큰 침대를 사는 바람에 작은 방에 침대를 넣으면 꽉 찬다. 재작년 여름, 방에서 자는 게 너무 답답해서 획기적으로 침대를 거실에 내놓았었다. 그 상태로 2년을 넘게 지냈다. 확실히 여름에는 방에서 자는 것보다 탁 트인 느낌이 있어서 좋다. 집에 아이가 있거나 손님이 자주 오는 것도 아니니까 침대가 거실에 있다고 해서 크게 불편할 것도 없었다.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 남편은 집에서 작업을 하는 일이 많아졌다. 하지만 집이 작업하기 좋은 환경이 아니다보니 자꾸 카페를 가게 되는데 매일 한 번, 많으면 두 번씩 카페에 가게 되니 지출이 커졌다. 그래서 홈오피스에 대한 생각이 커졌나 보다.

 

그리고 9월 말, 우리가 늘 한 번 가보고 싶었던 동해시의 "단순한 진심"에 다녀오고 나서 좋은 공간에 대한 열정이 커진 것도 있다. 넓거나 세련된 가구들로 꾸며진 것이 아니지만 정말 딱 알맞은 아늑함과 편리함을 주는 단순한 진심의 비밀이 공간지기인 현우 님의 고민과 여러 번에 걸친 공간 배치 시도 끝에 나온 것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

 

남편이 주목한 것은 두 가지였다. 침대를 다시 방에 넣고 거실을 넓게 쓰자. 그리고 가장 생산성을 높여줄 데스크는 앉았을 때 창 밖이 보이는 자리에 놓자. 우리 집은 베란다로 연결되는 샤시가 매우 좁다. 일반 문 넓이 2배 정도밖에 안된다. 게다가 베란다에는 이런저런 짐들이 있기 때문에 열지 않는 문은 거의 항상 커튼으로 가려둔다. 그러니 밖을 볼 수 있는 공간은 고작 문 하나 정도의 넓이 밖에 안 되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틈으로 밖을 바라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자리에 데스크를 두기로 했다. 

 

두 가지 조건을 놓고 여러 가지 배치를 생각해보고 시도해봤다. 일단 침대를 방으로 넣고 방에 있던 책장을 밖을 뺀 다음에 이리저리 배치를 바꿔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번에 생긴 가장 큰 변화 중에 하나는 이 집으로 이사 오고 나서 항상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소파의 자리를 바꾼 것이다. 아까 말한 밖을 내다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자리에 원래 소파가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 책상을 놓기 위해 소파는 상대적으로 구석진 반대편 벽 앞으로 옮겼다.

 

개천절 아침 3시간 동안 쉴 틈 없이 움직였다. 가장 재밌었던 부분은 소파나 책장 등을 이리저리 옮기면서 실제로 앉아보고 바라보고 하면서 느낌에 맞춰 배치를 바꿨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는 단순한 진심의 현우 님이 해봤다는 방법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인테리어만큼 직관이 중요한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배치를 바꾸고 나서 우리 둘 다 매우 흡족하다. 결과가 좋은 것도 있지만 그 결과를 둘이서 만들어 냈다는 것이 내내 뿌듯하다. 정말 작은 변화이고 시도이지만 해내었다는 성공의 느낌이 이렇게 좋은 것일 줄 몰랐다. 그 성공의 느낌이 괜한 자신감을 준다. 또 해보고 싶은 마음을 준다. 더 잘해보고 싶은 마음을 준다.

 

요즘 작은 성공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한다. 충분히 가능성이 많은 사람들인데 자신을 너무 작게 생각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너무 큰 꿈만을 바라보며 이룰 수 없어 괴로워하는 주변 사람을 보며 드는 생각이다. 작은 성공부터 만들어나가면 좋을 텐데, 어쩌면 그 작은 성공만으로도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도 있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든다.

 

4명을 뽑는데 1,000명이 몰린다는 실용음악과 보컬학과를 지망한 A. 이렇게 거의 가능성 없는 시도만을 반복하다 보면 지칠 수밖에 없다. 입시철을 지나고 있는 지금, 우선은 열심히 하라고 즐기면서 하라고 응원해주었다. 혹시나 이번 해에 학교에 붙지 않는다면 가수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네가 다른 방면에서 작고 다양한 성공 경험을 쌓아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2019. 10. 21. 21:58. RSS feed. Trackback 0 came from other blogs. Leave a Respo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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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딩야학 3기가 진행된다는 소식을 듣고 엉겁결에 올라탔다. 이제 생각해보니 1년차 사회학도인 남동생이 복수전공으로 컴퓨터 공학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매우 흥미롭게 들었던 까닭인 것 같다. 

나름대로 초딩 때부터 펫게임이라는 서비스를 통해 html을 독학하고(배경 음악 깔고 꽃비 내리는 자바스크립트 쓰고 그랬더랬다.) 나모웹에디터로 내 홈페이지도 만들어서 운영해보고 대학생 때는 공대생들의 기피과목중 하나였던 공학전자계산(줄여서 공전계)를 A+ 받았던 나름 코딩 우수생이었다. 

펫게임도 문을 닫고, 건축과 커리큘럼에는 더이상 컴퓨터 과목이 없었다. 홈페이지는 나도 모르는 새에 언젠가 없어졌겠지? 

아무튼 예전부터 관심을 갖고 있었던 생활코딩에 참여한다는 것에 들떠서 뭘 배우는 코스인지도 모르고 무작정 신청한 뒤 정신을 차려보니 html 강의였다. 신청만 해두고 또 빈둥거리다가 종강 이틀 전에 벼락치기로 몰아서 듣기 신공을 발휘하는 중이다. 그렇다, 아직 몇 강의 남았다. 그래도 오랜만에 뭔가를 공부한다는 기분이 참 좋다. 남편도 내가 뭔가 집중해서 공부하는 모습은 처음 봤다며, 멋있다고 하네. 나 원래 멋있거든? 

사실 이번 코스에서 배운 내용은 아주 쉬운 내용들이라서 html에 대한 책이 있다면 첫 1/10 정도의 분량이 아닐까 싶다. 분량으로 치자면 그 정도이지만 이고잉님이 '공부'의 본질에 대해서 아주 깊게 고민하고 만든 콘텐츠이기 때문에 쉽지만 가장 중요한, 더군다나 응용으로 가기 위한 중요함이 아니라 그 자체의 중요함을 품고 있는 내용들이어서 단 몇 시간 강의를 들었을 뿐인데 웹을 지배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뿜뿜한다. 

그러면서 또 요망한 아이디어 하나가 생각이 났는데 말이다. 방랑벽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어디서든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돈을 벌 수 있는 프리랜서 일을 갈망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가장 쉽게 생각하는 것이 글 쓰는 일일 것이다. 요즘 글 못 쓰는 사람은 없으니까 왠지 나도 글을 써서 돈을 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지.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보면 글은 누구나 쓸 수 있기 때문에 엥간히 잘 쓰지 않고서는 돈을 벌 수 없다. 그래서인지 나는 글 써서 돈 번다는 것은 나와 정말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런데 html을 아주 코딱지만큼 배우면서 말이지.. 왠지 내가 뭔가 유비쿼터스 좝을 갖는다면 그것은 글쓰기보다는 웹사이트 만들기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를 차릴 정도는 아니라도 그냥 소일거리 삼아서 용돈은 벌 수 있지 않을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가 웹프로그래밍을 얼마나 잘 하느냐가 아니다. 글쓰기보다 웹프로그래밍이 쉽다는 생각을 왜 하지 못했을까라는 것이다. 혁명적인 생각의 전환!

아이디어라는 것은 항상 맨 처음 생각했을 때가 가장 빛나는 법이다. 내가 늘 경험하는 일이기 때문에 잘 안다. 이 아이디어도 얼마 지나지 않아 금새 빛이 바래겠지. 하지만 또 하나의 진리는 아이디어가 빛이 바랠 때쯤 사소한 실천 하나를 하면 다시 심폐소생이 된다는 것이다. 디테일 하나를 갖추면 그 아이디어는 한 발을 더 내딛고 '뭔가'가 된다. 

이제야 태그 10개 정도를 배운 내가 웹프로그래밍으로 돈을 번다는 것이 아주 허무맹랑한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한 번 내뱉어본다. 옛다 툭. 

여행을 하는 동안 열악한 환경의 단체, 기업들 홈페이지 개보수 해주면서 하루 저녁 맛난 거 먹을 수 있는 돈 정도 벌 수 있음 좋겠다. 아님 예쁜 공예품을 하나 더 살 수 있어도 좋겠고! 

2018. 1. 16. 23:09. RSS feed. Trackback 0 came from other blogs. Leave a Respo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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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힘을 쭈욱 빼야 하는 날이었는데, 힘이 줘야 하는 일들이 있었다. 오전을 쉬고 나갔는데도 이상하게 힘이 들더라. 5시 경에는 의자에 앉아 꿈뻑꿈뻑 졸기까지 했다. 결국 잠시 엎드렸다가.

일의 별 진척도 없이 시간만 흘려보냈다. 남편을 기다리며 전화 너머로 짜증을 낼락말락하는 경계선에서 아슬아슬하게 버텼다. 

우울했다. 우울하고 싶었다. 영영 이별은 아니지만 약속된 시간은 끝난거니까. 생각에 잠길 시간이 필요했다라는 느낌이 그제야 밀려왔다. 

'좋게 나쁘게 좋게'라는 제목이 비스듬히 적힌, 친구가 낸 시집을 남편이 들고왔다. 책에 눈길을 준 지가 언제였나 싶다. 글이 참 좋았다. 나는 글을 많이 읽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시는 쉬운 편이 낫다. '이렇게 좋은 시도 신문춘예에 등단이 안되다니' 생각했다. 

김소연 시인이 추천의 글을 쓰셨다. 빨리 추천사를 읽고 싶어서 서둘러 몇 작품을 읽다가 결국 절반도 못 읽고 추천사로 건너뛰었다. 따스하고 힘이 있었다. 사실 김소연 시인과는 한 마디도 나눠본 적이 없지만 어째 친근하고 의지가 된다. 읽다가 눈물이 왈칵 날 뻔 했다. 그녀의 삶은 잘 알지 못하지만 그녀의 글은 안다라고 적은 대목이었던가. 글 때문인지,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생각나는 아이들 모습, 목소리 때문인지 사실 잘 모르겠다. 

내일은, 모레는, 힘을 좀 더 빼야지. 올 한 해 잘 마무리 하려면. 

2017. 12. 29. 01:40. RSS feed. Trackback 0 came from other blogs. Leave a Respo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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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사이좋게 교회 가는 길. 하지만 희한하게도 이 길이 종종 논쟁의 길, 싸움의 길이 되기도 한다. 오늘은 그보다 조금 강도가 약한 건설적 토론의 길이었다. 주제는 도대체 행복이라는 게 뭐냐. 어쩌다 시작된 토론인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남편의 주장은 '행복'이라는 것은 근대에 '공리주의'를 주장하면서 만들어진 개념이며 사실 매우 정체가 모호하고 누구도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쫓아가는데 급급한 개념이라고 했다. 주변을 보면 정말 그런 것 같다. 인생의 목표는 행복이라고 하며 다들 행복을 추구하는 삶을 좋은 삶으로 분류하는데 정작 행복에 대한 정의는 제각각이며 매우 주관적이다. 결국 행복에 대해 이야기 하기 위해서는 '당신에게 행복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져서 대답을 다 모아 대충 이런 느낌이다라고 말하는 수 밖에 없다. 

행복은 초콜렛을 먹는 거에요.

행복은 엄마가 아빠 셔츠의 냄새를 맡는 거에요.

뭐 이런 식으로.

행복스트레스라는 것도 있다. 행복하기 위해 노력하는데 도무지 행복해지지 않아서 힘들다는 것이다. 나는 불행한데 주변 사람들은 행복한 것 같아서 더 불행하다. 행복보다는 보다 정확한 상태를 나타내는 말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기쁨, 즐거움, 편안함 이런식으로 말이다. 

나도 어느 정도 동의한다. 그런데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 


작년이었나,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행복한 나라 부탄으로의 여행" 뭐 이런 포스팅을 본 적이 있었다. 작기도 하고 가난하기도 하고 아직 왕이 존재하는 전근대적 나라인데 이 나라 사람들이 그렇게 행복하다고 한다. 작고 가난해도 경쟁이 치열하지 않고 비교적 평등하고 자연을 맘껏 누릴 수 있어서 행복한가보다 싶었다. 이 곳에 가면 행복의 비밀을 알 수 있을까하는 궁금증이 생겼지만 자유여행이 불가능하고 공식가이드 비용이 1일 200불이라길래 여행은 살포시 미뤄두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한동안 소식이 뜸하던 한 지인(이름도 한지인이야...)이 갑자기 무슨 행사에 오라고 연락을 했다. 본인이 소식 없던 동안 사실 영국의 슈마허칼리지와 부탄의 GNH(Gross National Happiness)센터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Good Livelihood 라는 코스에서 공부를 했다고 한다. 그러고보니 한동안 이 분 인스타에 계속 부탄 사진이 올라와서 여행가셨나 했더니 공부하러 가신 거였다. 거기서 뭐 배웠냐고 하니 '잘 사는 법' 배웠다고 한다. 오, 그런걸 가르쳐주는 곳이 있나. 그런 방법 가르쳐주는 것은 별로 믿지 않는 편이지만 이번 행사의 주제인 행복인덱스에 관해서는 관심이 갔다. 

그 행사에 가서 부탄의 국왕이 나라의 발전 정도를 경제량(GDP)으로만 측정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GNH라는 개념을 생각해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면 어떤 기업이 환경을 파괴하는 생산활동을 한다고 하자. 이 기업이 하는 일은 나쁜 일이지만 GDP로만 보자는 +라는 것이다. 그리고 주부가 집에서 열심히 가정을 돌보는 일은 분명 삶을 이롭게 하는 일인데 GDP에는 전혀 잡히지 않는다. 선출된 대통령이 책임감으로 일하는 것보다 왕위를 물려받은 왕이 백성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큰가보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혹시 이반 일리치라도 공부하신 건 아닌지.. 

GNH를 증진시키기 위해 전세계 석학들을 초청하여 행복을 측정하는 지표들을 개발했다고 한다. 4개의 기둥과 9개의 영역이 있는데 여기에는 신뢰할만한 정치, 생활수준, 커뮤니티, 시간활용 등등이 포함된다. 모든 정책을 만들 때 이 기준에 따라서 평가하게 되며 몇 년 마다 전 국민 상대로 이 지표를 기준으로 한 설문조사를 실시해서 행복의 정도를 측정한다. 사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라기 보다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나라에서 행복도를 관리하는 나라라고 해야 맞겠다. 아무래도 신경써서 관리한다면 증진될 가능성이 크겠지. 

이 행사에 다녀오고 나서 이 방법이 꽤 유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와 관련해서 지인님과 꽃친 아이들과 뭔가를 꿍짝꿍짝 꾸며볼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오늘 아침 남편과 한 대화와 행복인덱스가 내 마음 속에 사이좋게 공존하지를 못하는 것이다. 

사실 이런 얘기를 남편에게 처음 듣는 것은 아니다. 행복을 추구하는 삶을 의심하게 하는 계기는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내 입장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다. 당장 급한 일은 아니었으니까 천천히 생각해보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최근에 들어서는 내가 분명한 입장을 가져야 하는 상황이 자꾸 생기는 것 같다. 

자기는 행복한 삶을 추구한다고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B. 하지만 그 아이가 현재 보여주는 모습 뭔가 답답하다. 어떤 이질적인 것이 존재하는 게 분명하다. 그런데 그게 뭐라고 딱 꼬집어서 말해줄 수가 없다. B뿐만 아니라 이 시대 청소년들에게 행복은 큰 화두이다. 행복한 삶을 살으라고 교육하는데 왜 아이들 사이에 혐오가, 폭력이, 조급함과 두려움이 늘어날까. 

이것을 설명해낼 수 있는 말이 나에게는 필요하다. 

2017. 10. 24. 23:46. RSS feed. Trackback 0 came from other blogs. Leave a Respo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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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짧은 시간이었지만 남편과 좋은 대화를 나눴다. 어젯밤 1박2일의 일정을 마치고 녹초가 되어 돌아온 남편은 내 이야기를 들어줄 여유가 없었지만 푹 자고 일어난 오늘 아침엔 어젯밤에 들어주지 못한 미안함까지 더해서 더 열심히 들어주었다. 

오늘 아침의 대화는 B에 관한 것이었다. 요즘 내 머리 속에서 가장 골칫덩어리인 꽃치너는 B이다. 친구들에게 관심 없고, 특별히 갈등이 없는 지금도 친구들의 호의와 배려를 무시하며 여전히 분위기를 싸하게 만든다. C가 특별히 B를 위해 소금을 친 계란후라이를 해줬을 때도 눈도 마주치지 않고 짧은 땡큐 한마디만을 남긴 것이 나는 너무 뇌리에 박혔다. 도대체 왜 그렇게 친구들이 싫은걸까. 

B에게 나머지 꽃치너들은 참 우스운 존재들일 것이다. 학교에서 보면 거의 찐따 수준? 감히 자기와 놀지 못하거나 친절을 베풀어도 자기가 조금 베풀어주면 고마워해야할 존재들? 그런데 꽃친에 와서 함께 어울리라고 하니 그 상황이 얼마나 싫겠는가. B에게 있어서 친구들에게 매겨진 계급은(본인은 절대로 부정하겠지만) 공고한 성이다. 3등급 아이들이 1등급인 자기에게 아무리 잘해주더라도 그것은 당연한 일이지 자신도 똑같이 친절을 베풀어야 하는 상황은 아니다. 그런데 심지어 갈등도 심하게 겪었다. 

새로운 눈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 사람도 사물도 경험도. 자기가 알고 있는 딱 그만큼의 틀 안에서 그 밖에 다른 것들에 절대 가치를 부여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아이도 참 강적이다. 청소년들은 경험의 폭이 좁다보니 그런 폐쇄적인 성향을 띄는 것이 아주 희귀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보통은 그 경험을 벗어나는, 자신이 알고 있는 세계의 논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겪으면 경계가 깨진다. 충격을 받기도 하고 열병을 앓기도 하지만 그 틀을 깨고 한 꺼풀 밖의 세계로 나오면서 조금씩 성장한다. 내가 생각한 게 다가 아니었구나. 내가 몰랐던 것이 있구나.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것. 혹은 내가 익숙한 이 경험의 경계 바깥으로 나가고 싶지 않은 것은 어쩌면 누구에게나 당연한 일이다. 나도 아직 그렇고, 더 나이가 든 사람들도 그것이 그리 달가운 일은 아니다. 인간관계, 나만의 생존방식 등을 겨우 조금 쌓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닐 수도 있다니.. 다시 새로 배워야 하다니.. 그 과정에서 비웃음을 당할수도, 비난을 받을수도,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다시 안전한 침대속으로 들어가고만 싶을 것이다. 그게 본능일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저 밖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싶다는 본능도 무의식 중에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조금 두렵긴 하지만 밖에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알고 겪어내야 더 강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그 두 마음 중에 어느 마음이 더 크냐에 따라서 때로는 도전적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방어적이 되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항상 방어적이기만 한 B는 두려움이 너무나 큰 것이겠지? 어떻게 그 밖으로 나올 수 있게 해줄 수 있을까?

안전과 도전의 공존. 

도전하기 위해서는 안전이 꼭 필요하다. 아이들이 도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안전이 없기 때문이다. 누가 안전을 빼앗아 갔을까? 

2017. 10. 24. 01:06. RSS feed. Trackback 0 came from other blogs. Leave a Respo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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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금요일은 전날부터 긴장된다. 


아침에 길을 나서는데 머리가 멍했다. 핸드폰을 두고 나가서 2~3분 거리를 다시 되돌아왔다. 다시 나가면서 오늘 모임이 삼각지인가 광흥창인가 멍하니 생각했다. '아, 광흥창이구나. 그러면 연신내에서 갈아타야 되네.'라고 분명 생각했건만. 어쩐지 3호선을 타고 충무로까지 가버렸다. 사실 그마저도 책을 읽다가 동대입구까지 가버려서 '아이고 충무로에서 갈아타야 되는데 한 정거장 돌아가야겠구나.' 생각하다보니 광흥창에 가야 할 내가 지금 여기서 뭐하는거지 싶었다. 이상해.


아이들이 글쓰기 수업을 듣는 동안 밖에서 두수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꽃친과 동행하신지 한달도 되지 않으셨는데 아이들 개별 코칭을 맡아주기로 하시면서 혹시 내가 귀띔해 드려야 할 사항이 없을까 해서 이야기를 시작한건데, 오히려 두수쌤의 인사이트를 경청하는 시간이 되어버렸다. 사실 꽃친과의 인연은 나보다 짧으시지만 교육에 대한 관심, 경험은 나보다 한 수 위이시기 때문에 두수쌤의 눈으로 본 꽃친은 어떤지, 어떤 필요가 있을지 듣는 것은 귀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머리로는 이해하는데 사실 마음으로는 뭐랄까 자존심이 상한다고 해야 하나, 그런 마음이 들었다. 이러이러하게 하면 더 좋지 않겠냐는 제안은 마치 잘못을 지적하는 것 같고. 이 마음이 극단으로 나쁘게 치닫는다면 '네가 뭘 그렇게 잘 알아? 나도 그런 생각 이미 다 해봤거든?' 이렇게 발전될 수 있는 류의 마음. 하지만 정말 도움이 되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리고 나는 내 자존심을 세우기보다는 꽃친을 더 만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잊을까봐 적어두자면, 꽃친은 파업이고 꽃친 프로그램은 파업프로그램이며 이미 1년을 쉬기로 결단한 것 자체가 큰 용기를 낸 것이기 때문에 꽃친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변화의 4~50%는 시작하면서 달성한 것과 마찬가지다라는데 서로 공감대를 이루었다. 두수쌤은 꽃친에 기본 베이스로 '자아발견, 정서를 다루는 수업,' (또 뭐였지.. 벌써 까먹었다 다음에 다시 여쭤봐야지.)이 진행되면 좋을 것 같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 과정들은 상주하는 선생님(즉, 나)이 다루는 게 좋을 거라고 하셨다. 나도 동의한다. 하지만 내가 뭔가 수업을 한다는 게 잘 엄두가 안나서 대부분은 기획된 수업으로 풀어가려고 하기 보다는 대화로 풀어가려고 했는데 앞으로는 수업으로 구성해둬야 할 것 같다. 


나는 뭐든지 수업이라는 형식이 아닌 관계와 대화, 경험으로 접근하는 경향성이 크고 두수쌤은 뭐든지 수업으로 접근하려는 경향성이 크다. 두 가지 경향이 잘 융합되면 좋겠다. 아예 이 과정 기획을 컨설팅으로 부탁드리는 건 어떨까 싶기도 하다. 이건 꽃친 운영진에 정식 건의해봐야겠다. 


'정서를 다루는 수업'이 마음에 많이 남는다. 어썸스쿨에서도 이런 수업을 한다는데 혹시 매뉴얼을 공유해줄 수는 없을지 문의해봐야겠다. 


어제 하루는 푹 잘 쉬었다면 오늘은 또 여러가지 자극을 받은 날이네. 


- 오늘의 독서 : 멀고도 가까운, 리베카 솔닛. p65~86 (얼음)

2017. 10. 17. 23:38. RSS feed. Trackback 0 came from other blogs. Leave a Respo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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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근무를 대체하여 오늘 휴가를 냈다. 


늦잠을 자고 일어나 집에 있는 것으로 대충 아점을 먹고 둘이서 각각 청소와 빨래를 하고 30분 쪽잠까지 자고 외출을 했다. 남편은 오후에 약속이 하나 있고 그 동안 나는 근처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먼저 교보 문고에 들러 남미 여행책을 무려 한 시간의 시간을 들여 골랐다. 이거 다 읽고 나서 사고 싶은 미국 로드트립책도 하나 찜해뒀다. 


세계여행을 준비하면서 평소에는 전혀 읽지 않는 여행 에세이 몇 권을 읽었는데, 개인적으로 "빼빼가족 버스 몰고 세계여행"이 최고인 것 같다. 일단 이 가족은 여행 자체의 페이소스가 담백하면서도 진하다. 사골 국물 같다. 5가족이 여행을 하고 아빠가 주로 글을 쓰셨는데 글 솜씨도 정말 좋으시다. 책을 읽다가 혼자서 물개 박수를 칠만큼 마음이 잘 통한다는 느낌이 들고 언젠가 만나게 된다면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근처 스타벅스에 가서 남미여행책을 읽기 시작했다. 현재 짜여진 일정표 대로라면 우리는 남미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하지만 남미에 대해 아는 것은 정말 없다. 열심히 읽고 준비해야지.


저녁은 엄마가 주신 용돈으로 소고기를 먹으러 갔다. 가성비 좋다는 식당으로 골라서 갔는데도 불구하고 2인분 가격이 후덜덜하다. 본전 뽑으려고 소고기 한점 한점의 풍미를 최대한으로 느껴본다. 맛있다 맛있다 감탄사도 많이 외쳐본다. 하.. 그래도 이 돈 주고 다시 먹으러 올 것 같지는 않다. 이 정도 금액의 돈으로 내가 가장 큰 행복을 느끼는 소비는 무엇일까? 


대흥에서 저녁을 먹으니 공덕에 사는 용진이네 집에 놀러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하철 한 정거장이니 걸어가야겠다고 생각하고 남편을 이끌고 길을 나섰으나.. 가는 길에 지쳐버렸다. 대흥역에서 공덕까지 걸어가기로 한 계획은 잘못되었다. 아니, 애초에 그닥 가깝지도 않은데 들러야겠다고 생각한 게 잘못이었던 듯.. 그래도 용진&수지네 집에 둘이서 놀러갈 수 있어서 좋았다. 용진이가 친정엄마처럼 이것저것 먹을 것 싸줘서 더 좋았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니 11시가 넘은 시간. 


휴가를 알차게 보냈도다. 푹 쉬고 싶은 마음, 뭔가 재밌는 걸 하고 싶은 마음. 혼자 있고 싶은 마음,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늘 다투는 게 휴일의 일상이다. 이 정도면 적절한 콤비네이션으로 섞어서 나답게 보낸 하루인 것 같다. 종일 내 보조를 맞추어준 남편이 있어서 감사함. 


오늘의 독서는 남미여행책으로 갈음함.




2017. 10. 17. 23:18. RSS feed. Trackback 0 came from other blogs. Leave a Respo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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