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도 이제 다 지나간다. 오늘 오전에 빨래를 개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주말에 기대하는 것도 바뀌었구나.'

 

예전에 뭘 기대했는지는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일요일엔 교회를 다녀오면 시간이 거의 다 가버렸기 때문에 주말이란 토요일 하루였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마저도 행사나 약속이 없는 토요일은 흔치 않았다. 오후에 일정이 있다면 일어나서 간단히 아침을 먹고 빨래나 청소 등의 집안일을 한 뒤 나갔다 오면 하루가 끝난다. 오전에 일정이 있다면 주 중과 다름없이 서둘러 집을 나서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주말이란 비록 출근은 하지 않지만 내가 보내고 싶은 모양으로의 시간이 아닌 그냥 그렇게 무엇인가로 채워지는 시간이었다.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 생각해보지도 못한 것 같다. 기껏 해봤자 이번에 개봉한 무슨 영화 보고 싶다 정도. 하지만 그렇게 살아온 지가 벌써 십수 년이기 때문에 딱히 그게 이상하다고 느끼진 않았었다. 

 

하지만 여행을 다녀온 뒤로는 그게 조금 달라졌다. 1년 동안 한국을 떠나 여행을 하는 동안에 그전엔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아니 당연한지 당연하지 않은지 한 번쯤 생각해 볼 대상으로 여기지도 않았던 많은 생활 습관들이 전부 초기화되었다. 시간, 공간, 관계 등 모든 것이 갑자기 다른 세계로 옮겨갔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다시 돌아와서 마주하게 되는 한국 사회, 내가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이 사회의 많은 것들, 그리고 그 속에서 당연하게 살아온 나의 모습을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새롭게 발견하게 된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주말이다.

 

여행하는 동안 그 어떤 일정도 채워져 있지 않았던 백지 같은 하루하루가 주 5일 출근해야 하는 날로 바뀌었다. 그러다 보니 일주일 중 온전히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단 이틀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지, 그리고 얼마나 짧은 시간인지 절감했다.

 

참 애석한 일이지만 나는 빠르게 주 5일 노동자의 일상에 익숙해지고 있다. 성실한 노동자이자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월~금 9시~6시는 내가 아닌 일에 나의 시간을, 아니 나의 자아를 내어준다. 그 시간 동안에는 일과 상관없는 영역에서의 나의 생각, 나의 욕망, 나의 취미, 나의 몽상, 나의 딴지, 나의 기쁨과 슬픔은 잠시 지워진다. 게다가 지워진 나라는 것이 6시가 지났다고 하고 바로 다시 살아 돌아오는 것이던가. 한 시간의 퇴근길 동안에도, 남편과 마주 앉아 밥을 먹는 시간까지도 잘 돌아오지 않는다.

 

매일 하루 일과가 끝난 뒤 좋아하는 책을 읽을 시간, 한 줄 일기를 남길 시간이 도무지 없는 것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1시간 단위로 국영수사과의 경계를 넘나드는 고등학교의 시간표처럼 빠르게 모드를 전환하여 저녁 시간을 쓰는 것은 내게는 버거운 일이다. 매일 핸드폰 어플로 하는 스페인어 공부와 내일의 삭신을 책임져 줄 스트레칭 정도만 겨우 하고 있다.

 

풍과 함께 우리 최소한 일요일만큼은 아무 일정도 만들지 말자고 다짐하고 있다. 현대인이라면 이게 참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일정이 없는데도 일요일에 만나자고 하는 사람을 거절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그런 일은 없었지만 혹시 누군가 일요일에 만나자고 한다면 무슨 말로 거절하는 게 좋을까 가끔 생각해보곤 한다.

 

다행히도 오늘은 우리 둘 다 아무 일정을 만들지 않는데 성공한 날이었다. (이러다 영영 이게 너무 쉬운 일이 되어버리는 건 아니겠지.. 그건 그것 나름대로 좀 비참한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어제는 왠지 잠이 오지 않아 새벽까지 둘이 얘기를 했고 오늘은 한국에 돌아온 뒤로 가장 늦은 시간에 일어났다. 일어나자마자 점심을 해먹고 거실에 널려 있던 빨래를 걷어 개다가 저 생각이 든 것이다.

 

자느라 없어져 버린 오전 시간까지 아까워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제 남은 시간 동안 무얼 할 수 있을지 헤아려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었다. 동네 카페에 가서 맛있는 커피를 마셔야지. 블로그도 써야지. 책도 읽어야지. 작은방에 달고 싶은 커튼도 알아봐야지. 지난 일주일 동안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사느라 내 머릿속에 등장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지극히 사적인 생각들을 꺼내봐야지. 이게 바로 주말이구나. 이게 바로 내가 주말에 기대하는 것이구나. 주말이란, 휴식이란, 안식이란 이런 것이구나.

 

그런 생각들을 하는 동안 내 몸에 느껴지는 감각이 여행을 할 때의 그것과 너무 비슷해서 놀랐다. 그리고 기뻤다.

 

앞으로 내 일상이 더 바빠진다면 이마저도 누리지 못할 수도 있다. 지금 같아서는 주 5일 출근에, 주 1~2회 정도 저녁 일정에, 토요일 하루 일정 정도가 내가 허용할 수 있는 최대 바쁨이다. 이 이상 내 시간을 무언가에 내주기는 싫다. '나는 나구나. 내가 여기 있구나.'라는 생각을 되살릴 최소한의 휴식 시간을 사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일 내년에 대학원을 가게 된다면, 1~2년 사이에 육아를 하게 된다면, 일주일에 딱 하루 온전히 내 휴식 시간을 갖는 것은 불가능해질지도 모르겠다. 그럼 어떡하지?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보자.

 

 

 

2019. 10. 21. 22:21. RSS feed. came from other blogs. Leave a Respo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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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다운친구들 종단연구 중간보고회에서 발제한 내용이다.

A4용지 7페이지가 넘는 대본을 썼는데 읽어보니 30분이 넘을 것 같아 중간중간 이야기를 빼면서 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꽤 만족스러운 발표였다. 발표한 모습을 동영상으로 촬영해서 보면 객관적으로 잘한 것과 못한 것이 더 잘 보일 것 같아서 일부러 부탁까지 드려서 촬영을 했다. 동영상을 다시 봤는데.. 음.. 객관적으로 보기란 참 어렵다 ㅎㅎ 말하면서 왜 저렇게 손을 많이 쓰고 시선 처리가 불안한가 싶은 생각이 제일 많이 들었다. 원고를 써서 말하니 쓸데없는 이야기는 하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할 때 표현이나 단어 등을 정확히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토론 시간에 참가자들이 쪽지에 질문을 적어서 냈는데, 전체 주제에 관계없이 여행비가 얼마 들었는지 물어보는 질문이 있어서 다들 웃었다. 그리고 나는 대답해드렸다.. ㅎㅎ

 

그리고 이런 질문도 있었다. 수련회에 다녀오면 얼마 간은 그 수련회에서 받은 은혜 때문에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이고 이제부터 달라진 삶을 살 것 같은 그런 마음이 들곤 하는데, 혹시 내 상태도 그런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솔직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 돌아온 지 50일 밖에 안됐기 때문에. 하지만 지금 현재 내가 느낄 수 있는 나의 변화에 한해서 말씀드린 것이다. 과연 이게 수련회 효과인지 아닌지 알고 싶으시면 6개월 뒤에 다시 만나서 얘기하자고 했다. 

 

그런데 사실 그 질문이 일주일이 지난 지금도 종종 생각나고 그 비유에 기대어 내 상태에 대해 스스로 점검해보곤 한다. 이것은 수련회 효과인가, 혹은 영구적 거듭남인가. 수련회 효과라면 얼마나 오랫동안 유효한 효과일까. 수련회 효과를 영구적 거듭남으로 바꾸기 위해 내가 노력할 수 있는 부분은 없을까.

 

 

 

 

 


 

 

 

꽃친쌤도 해봤습니다, 1년의 쉼과 여행

꽃다운친구들 길잡이교사 이예지

 

1. 자기소개

      a. 꽃친의 탄생부터 3년 차까지

      b. 남의 기준에 맞춰 살지 않으려 나름 노력하지만 어쩔 수 없는 범생이

      c. 여행 결심 당시 신혼 2년 차

 

 

2. 쉼을 결심한 이유

      a. 남편과의 시간

      b. 쉼/꽃친을 더 이해

      c. 개인적인 변화가 필요

 

 

3. 그런데 왜 여행인가?

      a. 나에게 쉼의 의미

           i. 익숙한 사회로부터의 분리가 전제되어야 함

           ii. 생산/관계/역할의 의무로부터 잠시 떠남

           iii. 새로운 자극을 겪는 시간

 

 

4. 여행 중 생긴 예상치 못한 과정들

      a. 남편과의 갈등

           i. 나의 쉼 : 늘 하던 것이 아닌 다른 새롭고 재미있는 것을 경험 à 경험, 체험

           ii. 남편의 쉼 : 특별한 것을 하지 않고 시공간을 비워 냈을 때 생겨나는 마음을 경험 à 관찰, 성찰

      b. 내 내면의 갈등

           i. 여행도 “잘하고 싶은 욕심”

                1. 남들이 다 하니까 나도 안 할 수 없지 VS 남들이 다 하는 흔한 건 하기 싫음

                2. 여전히 타인의 인정이 많이 필요한 내 모습을 발견 : 덴마크 포스팅에 달린 댓글

                3. “알찬 시간” 대한 집착 VS 넉넉한 쉼

      c. 파타고니아 로드 트립

           i. 시작

                1. 친구에 대한 경쟁심

                2. 환상적인 이미지에 유혹됨

                3. 독특한 경험을 자랑하고 싶은 욕심

           ii. 현실 : 강행군, 반복되는 일과, 동행자와의 갈등

           iii. 변화

                1. 내가 애초에 기대한 것을 계속 생각하는 대신 현재 눈앞에 일어나는 일을 발견, 누림

                2.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가 점점 흐릿해짐

      d. 예지보부상

           i. 해보고 싶었던 마음이 위기라는 기회를 만나서 도전하게 됨

           ii. 1차 : 예상치 못했던 좋은 반응

           iii. 2차

                1.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

                2. 1차 때보다 반응이 적음

                3. 그러나 사람들의 반응이 아니라 나의 성장에 주목

 

 

5. 내가 겪은 변화

      a. 다른 사람들의 소식에 초연해짐

      b. 좋은 일에 대해 진심으로 감탄/배우려는 자세

      c. 내 몫의 일에 더욱 집중

      d. 경쟁적으로 최고를 추구하는 일을 그만 둠 → 용기, 의연함, 어우러짐

 

 

6. 내가 겪고 이해하게 된 쉼

      a. 인생 중 계속되는 변화의 경험

           i. 자신이 운용해가는 변화의 경험 VS 사회가 강제하는 방식을 자신에게 짜 맞추는 방식의 경험

           ii. 사회로부터 벗어나 보는 시간

      b. 쉼 안에서도 길을 잃는다.

           i. 모드 전환에 걸리는 시간 : 내 안에 내재하는 사회

           ii. 시행착오 : 경험, 실패, 성찰, 재도전

                1. 겪지 않고 처음부터 일직선으로 갈 수 없음

                2.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음

      c. 돌아오면 말짱 도루묵?

           i. 영원히 떠나 있을 수는 없다

           ii. 이전에 비해 좀 더 자기의 길에 집중할 수 있는 힘

           iii. 언제든 필요하면 다시 떠날 수 있다는 용기

                1. 신호를 알아차리기

                2. 변화에 대한 기대

 

2019. 10. 21. 22:20. RSS feed. came from other blogs. Leave a Respo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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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저녁 보고회 발표에서 너무 잘난 척을 많이 한 탓인지.. 화요일부터는 내내 맥을 못 추고 있다.

 

일에 있어서도 좀 멍하고, 하루 종일 해내는 일의 양도 적다. 살짝 길을 잃은 느낌이다.

 

어제는 남편과 같이 거의 10시쯤부터 자기 시작했다. 덕분에 아침에 충분히 잔 느낌으로 일어나긴 했는데 1시간 출근길을 거치고 사무실에 도착하니 벌써 진이 빠졌다. 아침에 급히 먹은 샌드위치가 살짝 체한 것 같기도 하고..

 

결국 점심 먹고 나서는 몸도 머리도 너무 무거워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잠시 책상에 머리를 대고 누워 쪽잠을 잤다. 잠시 후 나는 아예 쿠션까지 베고 제대로 숙면을 취했다. 거의 한 시간. 말해두지만 나는 늘 자발적으로 매우 열심히 일하는 편이다!! 오늘은 정말 힘든 날이었다.

 

오랜만에 꽃친 2기 예담이를 만나기로 했다. 예담이가 4:30쯤 도착했다. 아침까지만 해도 예담이한테 뭐 좋은 얘기를 해줘야 할 것 같아서 고민이 됐는데 3시쯤부터는 예담이가 빨리 오기만을 기다렸다. 나가서 얘기라도 하고 그러면 상태가 나아질 것 같아서. 역시나 예담이를 만나서 이런저런 사는 얘기도 듣고 나름 선생질도 하니 몸도 마음도 기운이 좀 났다. 내가 그 몸과 마음 상태로 할 수 있는 일 중에 가장 생산적인 일이었을 거다.

 

바늘 틈같이 좁은 실용음악 입시를 통과하느라 많이 지쳐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 외로 덤덤하고 씩씩해서 다행이었다. 하지만 내가 모르는 시간에 많이 외롭고 불안하겠지. 꿈을 좇되 꿈에 짓눌리지 말자고 얘기했다.

 

코노에 가서 예담이 노래를 듣는데 노래가 많이 늘었다. 그런데 노래가 늘었다는 게 예대 입시에, 혹은 뮤지션으로 살아가는데 중요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 감정도 찐하게 전달됐다.

 

근데 그보다도 나는 그냥 예담이가 노래하는 모습이 너무 예뻤다. 내 눈엔 이르케 이쁘고 기특한데.. 교수님들 앞에 가면 냉정하게 평가받겠지? 이런 게 고슴도치 엄마의 마음인가 보다.

 

예담이도 알게 모르게 또 한 뼘 자랐다. 이제 몇 개월 뒤면 ‘아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나이가 되겠지. 스무 살이 된다니 책임져야 할 것이 많아질 것 같아 좀 걱정도 된단다. 뭘 얼마나 책임지려구~ 하면서 웃었지만 나도 저 나이 때 정말 사소한 일에도 큰 책임감을 실감했던 기억이 난다. 남이 보기엔 작은 일이어도 자기가 직접 한다는 게 중요한 거겠지.

 

예담이 동생이 올해 16, 내년에 17이다. 딱 꽃친 나이. 예담이는 꽃친 했을 때 너무 좋았고 다시 돌아간대도 또 하고 싶단다. 우리에겐 최고의 칭찬이다. 그땐 우리가 더 서툴고 해준 것도 부족했던 것 같은데. 그래서 동생에게도 권하고 있지만 동생은 공부 압박이 심해서 안 할 것 같다고 한다. 그런 친구에게 더 필요한데... ㅋ 하지만 쉼이 필요하다는 자각이 없이 오는 친구들은 꼭 와서 고생을 너무 많이 한다. 그래서 억지로 설득할 생각은 전혀 없다. 예담이에게 칭찬 들은 걸로 만족해야지. 

 

서윤이가 생일이라고 돈을 보냈단다. 참 재밌는 친구다. 정작 만나자고 하면 바쁘다고 코빼기도 안 뵈는데. 예담이는 어머니가 아프신 서윤이에게 마음이 쓰인다고 했다. 나는 그런 말이 참 놀랍다. 그 나이 때는 물론 지금도 나는 잘 쓰지 않는 말인데.. 어릴 때부터 남에게 마음이 쓰이는 경험을 하는 아이들은 어떤 사람인 걸까. 본받고 싶은 마음이다.

 

 

 

2019. 10. 21. 22:11. RSS feed. came from other blogs. Leave a Respo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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