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 28

  1. 2017.10.17 알차도다 대체휴가 20171016
  2. 2017.10.15 매일 뭐라도 읽고 뭐라도 쓰기 20171015
  3. 2017.10.14 내가 진짜로 궁금한 것은 무엇일까?
  4. 2017.02.28 활동과 의미
  5. 2017.02.24 처참했던 첫번째 노래시간
  6. 2017.01.17 두 집 살림
  7. 2016.12.11 대표기도에서는 하지 못하는 말들
  8. 2016.12.06 남편의 미래는 남편의 것

지난 토요일 근무를 대체하여 오늘 휴가를 냈다. 


늦잠을 자고 일어나 집에 있는 것으로 대충 아점을 먹고 둘이서 각각 청소와 빨래를 하고 30분 쪽잠까지 자고 외출을 했다. 남편은 오후에 약속이 하나 있고 그 동안 나는 근처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먼저 교보 문고에 들러 남미 여행책을 무려 한 시간의 시간을 들여 골랐다. 이거 다 읽고 나서 사고 싶은 미국 로드트립책도 하나 찜해뒀다. 


세계여행을 준비하면서 평소에는 전혀 읽지 않는 여행 에세이 몇 권을 읽었는데, 개인적으로 "빼빼가족 버스 몰고 세계여행"이 최고인 것 같다. 일단 이 가족은 여행 자체의 페이소스가 담백하면서도 진하다. 사골 국물 같다. 5가족이 여행을 하고 아빠가 주로 글을 쓰셨는데 글 솜씨도 정말 좋으시다. 책을 읽다가 혼자서 물개 박수를 칠만큼 마음이 잘 통한다는 느낌이 들고 언젠가 만나게 된다면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근처 스타벅스에 가서 남미여행책을 읽기 시작했다. 현재 짜여진 일정표 대로라면 우리는 남미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하지만 남미에 대해 아는 것은 정말 없다. 열심히 읽고 준비해야지.


저녁은 엄마가 주신 용돈으로 소고기를 먹으러 갔다. 가성비 좋다는 식당으로 골라서 갔는데도 불구하고 2인분 가격이 후덜덜하다. 본전 뽑으려고 소고기 한점 한점의 풍미를 최대한으로 느껴본다. 맛있다 맛있다 감탄사도 많이 외쳐본다. 하.. 그래도 이 돈 주고 다시 먹으러 올 것 같지는 않다. 이 정도 금액의 돈으로 내가 가장 큰 행복을 느끼는 소비는 무엇일까? 


대흥에서 저녁을 먹으니 공덕에 사는 용진이네 집에 놀러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하철 한 정거장이니 걸어가야겠다고 생각하고 남편을 이끌고 길을 나섰으나.. 가는 길에 지쳐버렸다. 대흥역에서 공덕까지 걸어가기로 한 계획은 잘못되었다. 아니, 애초에 그닥 가깝지도 않은데 들러야겠다고 생각한 게 잘못이었던 듯.. 그래도 용진&수지네 집에 둘이서 놀러갈 수 있어서 좋았다. 용진이가 친정엄마처럼 이것저것 먹을 것 싸줘서 더 좋았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니 11시가 넘은 시간. 


휴가를 알차게 보냈도다. 푹 쉬고 싶은 마음, 뭔가 재밌는 걸 하고 싶은 마음. 혼자 있고 싶은 마음,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늘 다투는 게 휴일의 일상이다. 이 정도면 적절한 콤비네이션으로 섞어서 나답게 보낸 하루인 것 같다. 종일 내 보조를 맞추어준 남편이 있어서 감사함. 


오늘의 독서는 남미여행책으로 갈음함.




2017. 10. 17. 23:18. RSS feed. came from other blogs. Leave a Response.
Posted in 쓰기 시간. Top

앞으로 매일매일 뭐라도 읽고 뭐라도 써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주변 사람들 중에 페이스북에 다양한 글을 참 열심히도 올리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좋은 글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시덥지 않다라고 생각하는 게 솔직한 마음이다. 그런데 막상 필요할 때 글을 쓰려고 보면 그 시덥지 않은 종류의 글조차 제대로 쓰지 못하는 내 모습은 상당히 충격적이다. 좋은 생각을 한다고 글이 써지는게 아니다. 글은 써야 써진다. 


손아래 시누이의 남편이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 육아일기를 쓴다. 나는 그 육아일기의 애독자인데 매일 비슷한 내용인데도 재밌다. 나는 친척이어서 재밌나 생각했는데 남편 친구도 애독자라고 한다. 심지어 그는 싱글인데도. 재미도 재미지만 매일 쓴다는 것이 정말 경외롭다. 첫 아이가 태어난 막전막후부터 지금 거의 1000일이 다 되어가는데 하루도 빼놓지 않고 쓴다. 


딱히 먹고 살 기술이 있는 것이 아니라 기획력으로 삶을 꾸려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바, 우리의 거대 프로젝트인 세계여행도 뭔가 좀 더 기획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대략 가는 곳마다 청소년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간지가 나고, 속되게 말하면 팔릴 것 같은 콘텐츠랄까. 나보다 다소 고상한 혹은 덜 기획적인 남편에게도 물어봤다. '뭔가, 그런 컨셉이 좀 있어야 하지 않겠어? 여보는 뭘로 할래?' 했더니, 잠시 생각하다가 이렇게 대답한다. '매일 뭐라도 쓰는게 좋지 않을까.' 헉 충격적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소박해서 충격. 하지만 결코 해내기 쉽지 않은 일이어서 또 충격.


그래서 이런 결론에 이르렀다. 

매일 뭐라도 읽고 뭐라도 쓰자. 


덧. 대학생 때 전공 교수님 중에 한 분이 이런 말을 하셨다. 자신은 아무리 바빠도 매일 뭐라도 한 페이지는 읽으려고 한다고. 그 말이 나에게는 참 인상적이었다. 뭐라도 한페이지 읽는 일은 언뜻 우스워보이는 일이지만 그것을 매일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편으로는 나도 실천해볼만한 일이기도 하다. 꽤 유명한 교수가 하루에 한 페이지 읽으려고 노력하는 것을 저렇게 진지하게 말하는 걸 보면 그 하루들이 차곡차곡 쌓이면 꽤나 의미있는 일이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뭐라도 읽자'는 그래서 추가되었다. 


- 오늘 읽은 것 : 멀고도 가까운, 레베카솔닛, p47~61

2017. 10. 15. 23:43. RSS feed. came from other blogs. Leave a Response.
Posted in 쓰기 시간. Top

길을 잃었다. 지도 위 나의 좌표를 모르며, 바라보는 방향을 모른다. 

답을 찾을 수 없다. 답을 찾을 수 없다는 말은 다른 말로 정확한 질문을 찾지 못했다는 뜻이다. 

어디로 가야 하는가? 왜 가야 하는가?


꽃친 아이들 코칭 시간에 여는 질문으로 '내가 나에게 궁금한 것은?'이 있었다. 잠시 고민하다가 '나는 지금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라고 적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무엇을 배워야 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답은 내 안에 있을 것 같기 때문에 나에게 그것이 궁금하다.'라고 설명했다. 

지금 내 옆에 배울 수 있는 것들이 넘쳐난다. 배울 수 있는 시간적 여유도 있다. 그러나 가고자 하는 방향이 없는 한, 가야 하는 이유가 없는 한, 많은 기회는 오히려 혼란을 줄 뿐이다. 조바심이 나게 할 뿐이다. 


어디로 가려 하는가? 

왜 가려 하는가? 


어떻게 갈 수 있는가?

2017. 10. 14. 00:18. RSS feed. came from other blogs. Leave a Response.
Posted in 생각. Top

청소년들과 하는 어떤 활동이 그대로 어떤 의미가 되기는 참 어려운 것 같다. 물론 어른이 하는 일도 그렇긴 하지만, 최소한 어른은 의미를 가지고자 스스로 노력하기 때문에 기획하는 자와 반반씩 노력한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청소년들과의 활동은 기획자의 노력이 80이상을 차지하는 것 같다. 20퍼센트 이상의 노력을 기울여 의미를 획득하고자 하는 아이들은 별로 없다. 어쩌면 그게 솔직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여튼. 그런데 꽃친은 이 활동이 이 아이에게 의미가 되었는지 되지 못하였는지가 여실히 드러나는 구조이다. 그리고 그 활동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왜? 의미를 찾으려고 학교를 나왔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들도 좀 더 주체적으로 의미발견에 발 벗고 나설 필요가 있지만, 일차적으로는 지도하는 사람들의 역할이 너무나 중요하다. 의미 있을 만한 콘텐츠와 연결해주고, 아이들이 스스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장치들을 마련하고, 때로는 겪었지만 해석하지 못했던 의미들을 말로 해석해주기도 하고. 그게 참 어려운 일이다. 배워본 적도 없고 이 역량을 개발하기 위해 투자해본 적도 없으니 어려운 게 당연하다.
또 다시 모르는 것을 아는 단계에 들어왔다. 내가 알아가는 시간이 걸리는 것은 괜찮지만, 그 시간 동안 나와 함께 하는 아이들이 나의 부족함 때문에 손해를 보지는 않을지 그게 걱정이다.


2017. 2. 28. 00:46. RSS feed. came from other blogs. Leave a Response.
Posted in 꽃친과 나. Top

오늘은 꽃친에서 처음으로 함께 노래 부르기를 시도한 날이다. 제목은 또 내 맘대로 "내가 좋아하는 노래". 


덴마크 에프터스콜레에서는 함께 노래 부르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의식 중에 하나라고 한다. 머리로는 금방 이해가 되지만 어떤 노래를 어떤 식으로 부르는지는 감이 잘 오지 않았다. 덴마크 폴케 호이스콜레에 6개월간 다니고 온 지인을 통해 접한 정보에 의하면 그들이 부르는 노래는 Communal Song이라고 해서 모두가 공통으로 사용하는 노래집이 있다. 어플로 다운받을 수도 있어서 시도해보니 멜로디나 가사가 거의 찬송가와 비슷하다. 물론 멜로디가 심플하고 아름답고 내용도 좋은 것이겠지만, 어렸을 때부터 이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 꽃치너들을 데리고 이런걸 부르는 건 대략난감이다. 그리고 또 그들의 문화를 접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통로는 여러 에프터스콜레(주로 예술중심학교)에서 학생들이 노래 공연하는 혹은 연습하는 모습을 찍어서 유투브에 올려둔 것이었다. 그 중에서 정말 노래도 좋고, 아이들 분위기도 좋아서 내가 반해버린 영상이 하나 있었다. 그 노래가 어떤 노랜지 알고 싶어서 여러모로 알아보았지만 아직까지는 알아내지 못했다.. ㅠ ㅠ 알 수 있으면 꼭 한국말로 번안해서 불러보고 싶은데!! 


아무튼, 이런 사연과 소망을 가지고 함께 노래 부르기에 대한 로망을 키워왔었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와~ 그거 좋겠다~'하고 머리 속으로 생각하거나 '와~ 진짜 멋지다~'라고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보고 말하는 건 쉬운 일이다. 그런데 내가 그것을 만들어내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게 어려운 일인줄 모르고 그냥 샤워하면서 노래하는 것 마냥 '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던 것이 오늘의 폭망을 불러온 것이렸다. 


어떤 노래를 함께 부를 것인가는 예전부터 틈틈이 생각해왔다. 아주 뚜렷한 기준을 세울 수는 없지만, 대략 내가 좋아하는 노래들로 채울 셈이었다. 그런데 '왜 이 노래냐'라고 물으면 할 말이 없을 것 같았다. 우리에게 덴마크 같은 공통의 노래집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방향을 조금 바꾸기로 했다. 아이들이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친구들에게 소개하고 함께 불러보는 것으로. 그리고 첫 시간은 내가 시범을 보이는 것으로. 이렇게 하면 내 부담도 줄고 아이들이 조금 더 신나게 참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게 또 말이 쉽지, 청소년들 입장에서는 이 기획의 하나부터 열까지가 질색팔색할 일이라는 걸 나는 왜 진작에 알지 못했던가. (알았으면 아예 엄두를 안 냈을지도 모른다. 몰랐던 게 차라리 다행.) 나름대로 동기부여-분위기조성-흥미유도-실행-피드백 이라는 흐름을 짜보기도 했으나, 내 마음 한 구석에서는 절대 내가 의도한대로 그렇게 아름답게 진행되지 않으리란 생각이 나를 두렵게 했다. 노래를 고르면서, 프린트를 하면서, 흐름을 기획하면서, 오늘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내내 두려웠다. 다음 주로 미룰까 생각하기도 했으나, 이미 지난 시간에 아이들에게 공지를 해두었고 같이 노래를 부르기를 할거라는 말에 심히 당황하는 아이들 앞에서 애써 태연한 척 했었기에, 그리고 아이들도 당황하긴 했어도 나름대로 이 시간을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부족함과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감행하기로 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오전에 장애인복지시설에서 처음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심신이 지쳐 돌아온 아이들... 아무리 재밌는 걸 하자고 해도 다 귀찮아할 분위기다. 그래도 난 용자니까 어서 준비한 걸 하자.

음악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하려고, 나아가 노래 부르는 것을 다들 좋아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고자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 그리고 각자의 노래방 18번 곡을 이야기하도록 했다. 분위기? 안 살았다.

흐으.. 이 분위기에서 준비해온 노래 가사 종이를 나눠주는 것은 정말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눈을 딱 감고 시행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다. 내 안 좋은 버릇 중에 하나가 대중들의 분위기가 좋지 않으면 준비해온 걸 자꾸 바꾼다는 것이다. 융통성이 있어서 좋을 때도 있지만, 애초에 기획한 것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는 단점이 생긴다. 그래서 이번엔 계획한대로 무조건 다 하기로 했다. 


가사를 눈으로 읽어보게 했다. 혹시 마음에 드는 가사가 있으면 말해보라고 했다. 두 명이 대답해줬다. 착한 아이들. 

그리고는 노래를 틀어줬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이기에 더 조마조마. 안 좋아하면 어떡하지? 촌스럽다고 디스하면 어떡하지? 

한 번을 다 듣고 나서 다짜고짜 불러보자고 했다. 나는 수백번 들어본 노래니까 쉽다고 느껴졌지만 아이들은 처음 들은 노래인데!! 절대 따라할 수 있을리가 없다. 


"어려워서 못 따라부른 사람? (2명) 쑥쓰러워서 못 부른 사람? (1명) 노래가 싫어서 못 부른 사람? (....) 귀찮아서 못 부른 사람? (...)"

"그래, 아무튼 이 이유 중에 하나겠지."


어디서 이런 용기가 났는지, 한 구절씩 따라불러보라고 했다. 반주도 없이 내가 라이브로 불러주면서 말이다. 하하하... 

2~3명 정도가 따라한다. 이 쯤 되서 1절만 해보는 것으로 목표를 수정했다. 그리고 다시 노래를 틀어놓고 따라부르기. 그래도 아까보단 좀 낫다! 핸드폰엔 구간 반복 기능 따윈 없어서 손으로 조심스레 재생위치를 옮겨가면서 겨우 1절을 2번 정도 불러봤다. 하아.. 여기까지 하기로 하자. 나 정말 무모하고 뻔뻔했던 것 같다. 덕분에 그래도 1절이라도 불러봤다. 이제 피드백의 시간.


얘들아 해보니까 어떤 것 같아?라고 물었다. 과연 반응을 해줄까? 무반응이 최악인데.. 


한 친구가 "그런데 왜 이걸 하는거에요?"라고 물어봐줬다. 와, 진짜 고마운 질문이었다. 대답이 충분히 설득력 있지 못할까봐 또 두렵기도 했지만 그래도 내 생각을 이야기해줄 수 있었다. 동의하든 안하든. 그리고 아까 정신이 없어서 보여주지 못했던 덴마크 에프터스콜레 친구들의 합창 영상도 보여줬다. 나처럼 삘 받는 친구가 또 있기를 바라며.


그리고 좀처럼 모임에서 얘기를 하지 않는 친구 한 명이 또 의견을 주었다. 악기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코드가 있으면 자기가 기타를 칠 줄 안다고 자원하기까지 했다! 그래 맞다. 이 아이들 음악 좋아하는 아이들이다. 나는 헛발을 디뎠지만 아이들이 좀 더 좋은 길을 제안한다. 또 한 친구가 이야기한다. 한 번 듣고 따라부르는 건 어려우니 미리 들어보고 오면 좋겠다고. 우와, 예습의 의지까지 보여준다. 너무 고맙다. 


정리하자면, 1. 미리 들어보고 온다. 2. 악보를 구해서 악기 반주에 맞춰 부른다. 이 내용을 적용해서 다음 주에 다시 한 번 해보기로 했다. 또 어색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말해준 개선점을 반영해보기로 한 것이니 의미가 있다. 


모임을 정리하고 아이들을 보내고 나니, 긴장이 풀리고 피로감이 몰려왔다. 그리고 무력감, 패배감도 몰려왔다. 지금은 좀 긍정적인 해석이 가능하지만, 아까는 정말 그 어색했던 분위기 자체의 중압감이 너무 컸다. 나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는데 여기까지가 나의 한계인 것 같아서 화가 났다. 멀리서부터 힘들게 모인 아이들의 시간과 노력을 헛되게 한 것 같아서 미안했다. 안 좋은 생각은 점점 더 깊어져서 나는 이 일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우울했다. 비참했다. 생각을 정리해야했다. 


남편을 만나 저녁을 먹으며 이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눈물이 났다. 이번주에 너무 바빴고, 지금 이렇게 멘탈어택을 받으면서도 처리해야될 일들의 압박을 받고 있다보니 괜히 서러웠다. 

감정이 격해져서 말도 안되는 자기 비하의 말들을 쏟아냈다. 한참을 그러고나니 감정이 조금 해소가 되고, 상황이 그나마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위에도 썼듯이 그래도 그 상황에서 아이들이 노력해준 것, 개선점을 말해준 것들이 생각나서 그 이야기를 남편한테 해주었다. 

남편은 교회 청소년 아이들과 4년째 함께 노래부르기를 하고 있는데 이제야 아이들이 개미소리만큼 따라한다고 했다. 그 전에도 남편이 그 얘기를 했던 것 같은데 내가 이 상황이 되고나서야 그 동안 그가 얼마나 어색하고 힘들었을지 이해가 됐다. 그리고 그게 원래 그렇게 어려운 일이구나라고 생각하니 좀 위로가 되었다. 


꽃친 쌤들 채팅창에도 내 상황을 알렸다. 함께 노래부르기 시간이 잘 진행되지 않았고 그래서 지금 마음이 힘들다고. 음악치료사이기도 한 신실쌤이 함께 노래부르기는 난다긴다 하는 음악치료사들에게도 최고난이도 수업이라고 한다. 그 얘기를 들으니 또 한번 위로가 되었다. 이어서 병구쌤이 본인이 교도소 수감생들과 싱어롱 한시간을 악몽으로 경험한 폭망선배라고 고백했다. 빵 터졌다. 폭망 간증이 이렇게 따뜻함을 주다니. 화룡점정으로 수진쌤은 말 안 통하는 몽골아이들 백명 앞에서 폭망하신 경험이 있단다. 근데 그 중에서 제일 어려운 건 청소년들 앞인 것 같다고 또 나를 한 번 더 위로해주신다. 


참, 이런 게 왜 위로가 될까? 첫번째, 나만 유독 못나서 못하는 게 아니구나. 다른 사람들한테도 어려운 일이구나. 두 번째, 지금 이렇게 힘든 내 마음을 저 사람들도 경험해봐서 알겠구나. 세 번째, 그런데 지나가면 웃을 수 있는 일이구나. 

이런 작용이 마음 속에서 일어났던 거 아닐까. 


난 오늘 왜 괴로웠을까. 늘 멋지고 싶은데 실패한 모습이 스스로 보기에도 후져서 괴로운 거였다. 그런데 사실 처음부터 다 잘하는 사람이 어딨겠나. 하는 것마다 처음부터 다 잘하면 좀 사기캐 같다. 사실 내가 진짜 멋지다고 생각되는건, 자꾸 실패하는데 끊임없이 새로운 무기를 장착하고 덤벼들어서 결국은 해내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을 봤을 때 뒷통수 한 대 딱! 맞은 기분이 들더라. 곁에서 보고 있는 나에게도 에너지를 불어넣더라. 


그런데 그 실패의 시간을 어떻게 견디면서 계속 도전할까? 방향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이 필요하다. 이 확신이 없으면 재도전은 불가능하다. 또 한가지 재도전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동료'다. 비록 실패했을지언정 그 노력에 대해 박수를 아끼지 않는 동료들. 나 혼자만의 확신으로 가는 길은 책임도 혼자 져야 하기에 두렵기도 하고 리스크도 크다. 하지만 '동료'와 함께 내린 확신이라면 약간의 방향 선회 정도는 즐거이 할 수 있다. 


나에게는 확신이 있다. 동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패는 쓰지만, 한 번의 실패가 곧바로 포기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 같다. 가다듬고 다시 한 번 간다. 두 번, 세 번 계속 간다. 그러다보면 언젠가 내가 생각지도 못한 멋진 지점에 와 있을 것만 같은 기대감이 든다. 





2017. 2. 24. 22:23. RSS feed. came from other blogs. Leave a Response.
Posted in 꽃친과 나. Top

두 집 살림을 시작했다. 

아니 사실 예전부터 집은 마련해 놓았는데 본격적으로 두 집으로 살아보려고 한다. 

미디엄이라는 글쓰기 플랫폼과 티스토리 두 군데에 글을 쓰려고 한다. 티스토리는 누가 봐도 상관은 없지만 굳이 보여줄만한 글들은 아닌 것들, 혹은 굳이 잘 쓰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글들을 쓰고, 미디엄에는 개중에 그래도 좀 공유하면 좋을만한 생각들을 조금은 더 신경써서 적어보려고 한다. 쓰고 나서 읽어보고 문장을 다듬어 보기도 하고. 


현실은.. 이거나 저거나, 어느거 하나에라도 꾸준히 쓰면 다행. 


읽고 쓰고 읽고 쓰고, 좀 손에 익었으면 좋겠는데. 출산과 육아라는 한계시점이 성큼성큼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저항할까, 수용할까. 

2017. 1. 17. 01:06. RSS feed. came from other blogs. Leave a Response.
Posted in 생각. Top

하나님, 오늘 제가 잠시 후에 있을 예배에서 대표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기도문을 쓰려고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오늘 아침에 남편과 싸운 생각만 머리 속에 가득합니다. 이런 화나는 마음을 가지고 온갖 경건한 말들로 기도문을 쓰는 건 거의 불가능입니다. 그렇다고 대표기도 자리에서 남편과 싸우고 속상한 제 마음을 이야기할 수도 없습니다. 기도 겸 자기반성을 여기에다 풀어놓고나면 기도문을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시간을 쪼개서 하나님께 제 시시콜콜한 마음을 털어놓습니다. 


오늘 아침에 교회에 가는 지하철 안에서 남편과 싸웠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다가 갑자기 왜 싸우게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누가 먼저 불편한 감정을 느꼈고, 누가 먼저 말 실수를 했으며, 누가 누구의 말을 잘못 오해하고 있는지도 정확히 생각이 나질 않습니다. 

제 생각엔 제가 말실수를 한 것 같고, 남편이 먼저 화를 낸 것 같습니다. (그래봤자 살짝 정색하는 정도입니다만, 저는 '화'로 정의합니다.) 이럴 때 남편은 곧장 진상규명을 하고 싶어합니다. 

"자 예지야, 생각해봐. 너가 이러이러한 말을 했잖아. 그 말이 이런 상황에서는 나한테 어떻게 들리겠어? 저러저러하게 들리는거야. 너가 나에 대해 가지고 있는 불만의 '논거'로 들리는거지."

'논거'라는 단어까지 써가면서 조목조목 이야기를 하는데,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인정하고 싶지가 않습니다. 나도 나름대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지금 이렇게 흥분한 상태로 얘기하면 그놈의 '논거' 된통 당하기만 할 것 같아서 차라리 입을 다뭅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공격을 시전합니다. 얼마 전 꽃친 혜진이를 상담하는데 분명 저에게 불만이 있는것 같은데 아무 말 하지 않는 혜진이 앞에서 답답했던 마음이 생각나고, 지금 꼭 제가 혜진이가 된 것 같은 생각이 들면서 혜진이 마음도 이해가 됩니다.


사실 이건 오늘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어제, 혹은 그 전부터 있었던 일이나 느꼈던 감정들 때문에 일어난 현재완료형 사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제 친구네 집 집들이를 다녀왔는데, 그 집 남편이 요리를 했습니다. 아, 요리를 한 남편이 제 친구입니다. 원래 옛날부터 요리하는걸 좋아했어요. 결혼한 다른 친구 커플도 왔는데 그 집도 남편이 요리를 합니다. 요즘은 역시 남자가 요리하는게 대세인가 보라며 남편들이 부엌에서 뭘 하는지 자기들은 아무 것도 모른다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우리집 남편은 요리기능은 없는데..'라고 말해놓고는 혹시 그렇게 말한 친구들이 무안할까봐, 그리고 스스로 위로도 할겸 '대신 화장실 청소 기능과 빨래 기능이 있지'라고 말했어요. 어제 맛있는 요리를 대접한 제 친구는 요리는 잘 하는데 빨래 기능이 없어서 본인 스웨터를 아기 옷처럼 쪼그라들게 만들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그래, 모든 가정의 모습은 다르다, 우리집은 심지어 남편이 집안일을 조금 더 많이 한다라는 생각으로 애써 마음을 달랬지만 친구가 해 준 요리가 넘나 맛있어버려서... 제가 집에 가야해서 나오는 순간까지 그 친구는 양파를 열심히 볶으며 듣도보도 못한(분명히 맛있을..) 요리를 시작하는 모습을 보여준 바람에.. 12시가 거의 다 된 시간에 집에 들어온 아내를 꾸벅꾸벅 졸다가 맞이한 우리집 남편에게 "A가 요리를 했는데 참 맛있었어. B네 집도 맨날 남편이 요리한대."라는 말을 여러번 한 모양입니다. (아니, 정확히 기억납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그런데 오늘 지하철에서 그 얘기를 왜 또 하게 되었죠? 이건 생각이 잘 안납니다. 여튼 남편은 어제 들은 그 이야기 때문에 마음이 좋지 않았겠죠. 눈치 없는 제가 별 생각없이 몇 마디 더 얹었다가 분위기.. 안 좋아져 버렸습니다. 


남편이든 아내든 서로를 다른 가정의 남편과 아내에 비교해서 말하는 것은 정말 최악입니다. 잘 알고 있는건데, 그래서 어제 같은 일이 있더라도 '아, 음식 참 맛있다'라고 생각하는데서 그쳐야지 '아, 부럽다. 나도 남편이 이런 요리 해줬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는 것은 부당하고(!!!) 더군다나 그걸 남편에게 이야기 한다는 것은.. 참 배려심 없는 아내죠. 네, 저도 압니다. 그런데 내가 배려한답시고 내 마음을 너무 숨길 필요는 없지 않을까? A처럼 맨날 요리를 해달라는 요구를 하는 것도 아니고 '가끔 나도 남편이 해주는 요리를 먹고 싶다~'라는 정도의 메세지인데 애교로 받아들여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자기 중심적인 생각을 하게됩니다. 이 심술쟁이 마음이 늘 이겨 버립니다. 그러고는 항상 남편을 속상하게 만들고, 그러면 나는 남편을 속상하게 만든 나를 자책하면서 정작 제대로 된 사과는 하지 않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남편의 마음을 세심하게 살피고 배려하는 킹왕짱 아내들이 많이 있는데 나는 왜 이모냥인가 싶어서 자존감도 낮아집니다. 내 자존감에 대해 생각하느라 또 정작 남편 마음은 뒷전입니다. 이게 저라는 사람의 현재까지의 한계겠죠. 


하나님, 저는 그래도 제법 괜찮은 사람으로 자라왔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한참 멀었나봅니다. 아니, 어쩌면 아직도 인격이 바닥수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독하게 자기 중심적입니다. 아마 이제는 낳아준 엄마보다도 남편이 이런 제 모습을 더 잘 알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꼬집어서 확인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그럴때마다 눈감아주고 그렇지 않다고 말해주고 적절한 말로 저를 북돋워주는 남편에게 늘 고마워해야 하는데, 내 모습은 바꿀 생각을 안하고 남편의 작은 실수에는 늘 불만이 가득합니다. 내가 잘못한건 알겠는데 그래서 뭐 어쩌라고, 니가 나한테 어쩔건데~ 식의 마음가짐은 증오하는 김기춘이나 마찬가지의 마음가짐인데, 제가 남편한테 참 갑질도 이런 갑질이 없네요. 

이런 모습이 저절로 좋은 아내의 모습으로 바뀌진 않겠죠? 어디서부터 어떻게 마음을 먹고 어떻게 연습을 해야할지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세상의 이런저런 가르침들에는 왠만해선 콧방귀도 안 뀌는 저이니 '자기계발서'등을 읽는다고 도움이 되진 않겠지요. 그래도 제가 살면서 하나님 말씀은 잘 들은 편인 것 같아서 이번에도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고 싶습니다. 저 그래도 이렇게 마음 먹은 정도만 해도 잘한거죠? 이제부터 부부의 관계를 통해 인간의 신비로운 성숙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코칭을 받아 하나하나 잘 해나갈 수 있겠죠? 




2016. 12. 11. 13:02. RSS feed. came from other blogs. Leave a Response.
Posted in 생각. Top

내 남편은 목사다. 남편과 나는 결혼 전부터 같은 교회를 다녔기 때문에 결혼을 하고나니 교인들은 장난 반 진심 반으로 까마득히 어린 나를 사모님이라고 부르고 싶어했다. 그래서 결혼한 다음날 교회를 갔을 때 앞에 나와 소감을 이야기해 달라셔서, 남편이 먼저 감사하다는 인사를 길게 했으니 나는 간단히 하고, 한 가지 부탁을 했다. 나는 남편을 통해 우리 교회 교인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으로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니 사모님 보다는 예지 자매, 예지 집사로 불러 주셨으면 좋겠다고. 잘한 일도 아니고 못한 일도 아니고 그냥 내가 원하는 바였고, 우리 교회 교인들과의 관계에서 그 정도는 이해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바여서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렇게 나는 남편의 직업으로 인해 내 인생이 정의되길 원하지 않았다. 

그리고 결혼 전, 친정 엄마는 남편의 직업이 목사이기 때문에 내 인생이 자유롭지 못할까봐 많이 걱정하셨다. 하지만 나는 남편이 답 안나오는 교회에서 답 안나오는 목회를 할 타입의 인간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걱정하시는 엄마 앞에서 늘 당당했다. 우리는 자유롭게, 재미있게, 새롭게 살거라고. 


어느 덧 결혼한지 3개월이 지나고 신혼기도 안정에 들어섰다. 어색하고 쑥쓰럽고 집에서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신경 쓰이던 시기를 조금 지나고 나니 이런저런 것을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머리속에 생겼다. '철들면 늙는다'를 신조로 삼아 어디서나 철없음을 무기로 삼는 나이지만, 여전히 함께 만들어나가고 싶은 꿈 같은 일들 중에 이제는 우리가 가진 시간과 자원으로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은 할 수 없는지도 가늠하고 결정을 해야한다. 때마침 요 근래 '남편은 진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냐'고 묻는 이들이 몇몇 있었다. 재밌는 것은 내 진로보다 남편 진로를 더 궁금해 한다는 것. 나야 뭐 워낙 똑부러지게 잘 할거라고 믿으셔서 그런거라고 믿고 싶긴 한데, 사실 직업이 뭐냐고 물어보면 한 30분은 설명해야 하는 나에 비해, '목사'라는 직업을 가진 남편은 '어~ 내가 목사들은 좀 알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많아서 그런 것 같다. 


문제는 그런 질문을 들은 내 마음 속에 '그러게, 내 남편은 앞으로 뭘 어떻게 할 생각인건가'라는 의문이 남는다는 것이다. 분명 연애할 때도 묻고, 결혼하고 나서도 묻고 그 때마다 자세히 설명도 듣고 동의도 되고 열심히 잘 살아봐야겠다는 다짐까지 했던 것 같은데, 뒤돌아서면 또 아리송하다. 내 해석력과 상상력의 문제인걸까, 남편의 설명력의 문제인걸까. 아리송한 기분에 사로잡혀 있다보면 '내가 비젼도 없고, 미래에 대한 준비도 없는 남자랑 결혼한거 아닌가'라는 불안함이 문득 스쳐 지나가기도 한다. 그러나 이내 '참내, 나 진짜 이상한 여자다. 그러는 나는 뭐 뚜렷한 비젼 있고 미래에 대한 준비 되있나.' 싶은 생각이 떠올라 참 다행이긴 하다. 


남편이 정치범으로 감옥에 갇혀 있어도 몇 년씩 수발을 들며 그의 신념을 지지해줬다는 아무개씨의 부인 같은 그릇은 못 되어서, 아마 앞으로도 종종 저 남자의 미래를 의심하며 책 읽는 척 하고 소파에 앉아있다가 남편이 들어간 화장실 문을 지긋이 노려보게 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모두가 다 그럴듯한 자리 하나씩 차지해보기 위해 불행속으로 성실히 뛰어들어가는 이 시대에서 그 대열에 끼지 않기로 결심한 우리 둘의 삶의 자리는 기본적으로 불안한 것이 맞지 않겠는가. 남들이 보기에는 한참 모자라 보이지만 우리 나름대로는 신념이 있고, 희미한 빛줄기 같은 희망이 있고, 아름답고 새로운 자리를 만들어보겠다는 의지가 있고 그것을 알아봐주는 사람을 만났기에 결혼한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 길에서 우리 둘이 함께 오래 즐겁게 걸어가려면 상대방의 꿈을, 미래를 내 뜻대로 해보려는 생각은 확실히 버려야겠다. 결혼해서 제일 처음으로 배운 점이 배우자의 밤잠 자는 패턴이 내가 보기에 잘못되어 보인다고 해서 고쳐주려고 노력해봤자 기분만 상하게 한다는 것, 나와 결혼하기 전 이미 그 정도는 혼자 조절할 수 있는 인간이 되었다는 것처럼 말이다. 


남편의 미래는 남편의 것이다. 그것이 내가 기대한 방향으로 나가지 않을지라도, 혹은 실패할 지라도 말이다. 

대신 제일 먼저, 그리고 제일 끝까지 이야기를 들어주는 역할은 나의 것으로 삼겠다. 

2016. 12. 6. 00:48. RSS feed. came from other blogs. Leave a Response.
Posted in 생각.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