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꽃다운친구들 종단연구 2차 중간 연구보고회가 있는 날이었다.

 

여행에서 돌아오기 직전에 발표자로 섭외를 받았다. 연구팀에서 연구에 대한 내용을 발표하기 전 첫 순서로 나의 안식년과 여행에 대해 발표를 해달라는 부탁이었다. 처음에는 여행과 덴마크 에프터스콜레에 대한 이야기를 15분 안에 해달라고 해서 매우 당황했다. 어떻게 그걸 15분 안에 할 수 있지? 게다가 나는 말이 많은 스타일이어서 15분짜리 발표를 준비하면 꼭 20분이 되고야 만다. 즉 15분을 하기 위해서는 10분 치 얘기밖에 준비할 수가 없다는 건데.. 아무튼 연구팀과, 꽃친팀 내부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보고회이고 남의 일이 아니니까 말이 섭외지 그냥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긴 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여행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발언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 은근히 기쁘기도 했다. 세계여행을 다녀온 뒤에 여행 이야기를 하는 자리를 스스로 일부러 만드는 사람들도 있긴 하다. 만일 내가 그런 걸 한다면 어떨까 생각해봤다.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나는 여행하는 것은 좋아하지만 여행 책을 읽거나 여행 얘기를 듣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여행 얘기를 하는 것이 누군가에게 재밌거나 의미 있는 일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동시에 무언가 이야기하고 싶은 욕망도 분명 있었다. 그냥 어디가 멋있었다, 재밌었다는 것보다 조금은 더 쓸모가 있는. 그런 의미에서 보고회에서의 발표는 내 여행의 경험 중에서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자리일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여행에서 돌아와서 업무에 복귀하기 전부터 짬짬이 이 발표에 대해서 준비하기 시작했다. 여행에서의 원경험이 1년 치가 쌓여 있는 상황에서 가치 있는 이야기를 고르는, 아니 이야기 안에 숨겨져 있는 가치를 찾아내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마인드맵에 생각나는 대로 적어두었다. 우선 이렇게 적어놓고 나면 어떻게 연결해야 할지 그림이 그려질 것 같았다. 하지만 업무에 복귀하고 나서는 다른 급한 일들로 바빴다. 발표 준비는 그렇게 시작만 해둔 상태로 어느새 2주 정도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내 스케줄 다이어리에는 매주 "발표 아웃라인 잡기"가 적혀있었다. 다른 일들에 치여 매번 다음 주로 미뤄온 것이다.

 

그동안 내내 주말에도 붙잡고 있었고, 팀원들이 뭘 부탁해도 발표 준비를 해야 해서 그 업무는 못하겠다고 거절을 하기까지 했다. 지난주 개천절까지 연구팀에게 자료집에 들어갈 발표 자료를 보내드리기로 했고 발표할 내용을 글로 써서 보내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부담이 과중했는지 개천절 날은 결국 체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미룰 수가 없는 일이기에 아픈 몸을 이끌고 겨우 글을 완성했다. 그리고 보내기 전에 남편에게 먼저 보여주고 피드백을 부탁했다.

 

그런데 남편이 글을 읽은 뒤로 계획이 크게 바뀌게 되었다. 처음에는 내 글에서 쉼이 필요하다고 느낀 지점과 여행을 하기로 한 결정 사이에 연결고리가 부족한 것 같으니 그 부분을 보충하는 게 좋겠다는 피드백을 주었다. 하지만 둘이서 점차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내 글에 얼마나 뼈대가 허술했는지가 드러나게 되었다.

 

"예지 네가 이런 이유에서 쉼이 필요했다고 생각하고 여행을 시작하게 됐다면 듣는 사람들은 그 이유가 충족되었는지 궁금하지 않겠어? 그리고 실제로 여행하면서 너는 처음엔 이런 모습이었는데, 이런 이런 계기들을 통해서 조금씩 변화하게 되었다고 나는 기억하는데..."

 

남편에게 이런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면 나는 도대체 어제 보고회에서 어떤 발표를 하게 됐을지. 생각해보니 아찔하다. 그 피드백을 받은 것이 이미 마감날 밤이었다. 얘기를 주고받는 내내,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뒤집으면 오늘 안에 글을 마감하지 못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 이야기가 점점 핵심으로 다가가고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이야기를 멈출 수 없었다. 결국 자료집에는 발표 개요만 싣는 것으로 결정하고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정리를 해서 보내드렸다.

 

이렇게 막판이 되어서야 아웃라인이 갖춰지게 되어 다급한 면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꽤 만족스러웠고, 현재로서는 이게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편으로는 왜 이걸 더 빨리 잡지 못했을까, 남편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나 혼자 할 수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남편과의 대화로부터 추출된 이 발표를 과연 내 발표라고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하지만 연구팀으로부터 보고회 자료집을 받아서 꽃친 청소년 연구 결과를 받아보고 나서 나는 이런 생각을 조금 접게 되었다. 누군가 자기가 한 경험에 대해서 스스로 의미를 추출해 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자서전보다 평전이 읽을 만한 게 아닐까. 내게는 남편이 연구자였던 셈이다.

 

그 아웃라인을 바탕으로 주말에 피피티를 만들고 발표 당일인 어제 낮에 종일 발표문을 작성해서 무사히 발표를 마쳤다. 막판까지 다소 급하게 마무리하게 된 발표였지만 발표 개요, 피피티, 발표문까지 3종 세트로 준비해서 한 발표는 이게 처음이었다. 대학생 때부터 수많은 발표를 했었지만 제대로 된 발표는 이제야 처음 해 본 느낌이었다. 카메라를 가져가서 녹화도 부탁했다. 동영상을 보면서 어떤 부분이 제일 중요하게 들리는지, 어떤 부분은 덜어내도 되는 부분인지 체크도 해보려고 한다. 내가 이렇게까지 공을 들이는 이유는 뭘까?

 

어디선가 비슷한 주제로 또 발표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은근한 기대가 있음을 부정하지 않겠다. 내 경험, 내 이야기가 너무 훌륭하고 막 더 알리고 싶고 자랑하고 싶어서라기보다는, 나도 내 경험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어떤 이야깃거리가 있는지 스스로도 궁금하고 최대한 많이 파내 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 계기로 내가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들과 주고받을 수 있는 장이 열리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해 준비한 덕분에 기대하지 못했던 발제비도 받았고(!!), 어제 발표를 야근 인정받아 오늘 오전에 이렇게 카페 휴식도 취할 수 있게 되어서 너무너무 좋다 ㅋㅋ

 

 

 

2019. 10. 21. 22:08. RSS feed. came from other blogs. Leave a Response.
Posted in 배움. Top

 

중국이 홍콩에 저지르고 있는 일에 관심이 많이 간다. 물론 엄연히 중국 땅이었지만 영국 식민지가 되는 동안 중국과 많이 달라져 버린 홍콩. 지금의 상황까지 오지 않았으려면 애초에 영국이 식민 지배를 하지 않았거나, 반환하는 과정에서 조금 더 홍콩과 홍콩의 사람들에 대한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어버렸다.

 

여행을 하는 동안 중국인들을 조금 만났었다. 중국인들은 대부분 패키지여행을 하기 때문에 중국인 여행객들을 많이 보기는 했지만 깊이 사귄 것은 아니었다. 돌이켜보니 내가 여행을 하는 동안 중국에 대해 뭘 더 알게 되었는지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쉐삥을 만나서 함께 여행하고 사귀긴 했지만, 그녀는 베이징에 사는 의사로서, 엘리트 중국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깊은 대화를 나눠보지 못한 게 아쉽다.

 

싱가포리안인 송하고는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었지. 송은 아마도 중국계 싱가포르인 같은데 중국에 대해 매우 긍정적이었고 싱가포르 다음으로 중국을 좋아하고 자랑스러워하는 게 틀림없었다. 중국인들이 중국의 엄청난 국가주의에 대해 반감이 없고 오히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느낌은 아마 송으로부터 받은 것 같다. 싱가포르도 경제적으로는 매우 선진국이지만 정치적으로는 거의 독재에 가까운 국가 주도적 나라인데 50대 후반의 나이인 송은 이에 대해 나라가 하는 일에 너무 반대해서는 발전을 할 수가 없다며 젊은 세대들을 비판했다.

 

어딜 가나 떼로 몰려다니는 중국인들, 그리고 여행 현지의 문화를 존중하기보다는 자신들의 문화를 그냥 가지고 와서 오히려 현지인들이 받아들이도록 하고 있다는 느낌이 중국인들의 중국에 대한 자신감, 그리고 폐쇄적 국가주의를 엿보게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베를린에서 본 다큐멘터리 "American Factory"도 매우 큰 영향을 주었다. 미국에서 만든 다큐멘터리이기 때문에 미국의 시선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폐업한 미국의 공장을 사들여 재가동시키고 그로 인해 지역 경제를 다시 부흥시킬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가져왔던 중국 회사. 그러나 그들은 자본뿐만이 아니라 중국인 노동자들, 관리자들, 그리고 중국의 노동 문화까지 미국에 가져왔다. 그리고 그것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큰 갈등을 일으켰다. 근로 시간 준수, 노동 환경 안전, 민주적 의사교환 등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중국의 노동 문화. 미국인들은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재밌는 것은 중국인들에게는 이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고 이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미국인들이 이상해 보였던 것이다.

 

중국에서 회사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온 중국인 직원들은 중국에 있을 때 이 회사의 일자리 덕분에 먹고 살 수 있었다. 이 회사가 성장하고 발전하여 자신에게 일자리를 주고 급여를 주기 때문에 살 곳을 마련할 수 있었고, 결혼할 수 있었고, 자식을 기를 수 있었다. 그러니 회사가 계속 성장하도록 자신을 희생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 말고 중요한 것은 없었다.

 

중국인들이, 중국이 너무나 궁금했다. 왜냐, 중국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되었고 게다가 우리나라의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을 아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어서 중국의 홍콩 길들이기에 대해서도 조금씩 알게 되었다. 중국이 홍콩에 대해 범죄인인도 법을 통과시키려 하는데 이에 반대하는 홍콩 사람들인 시위가 국제 사회의 주목을 받게 되면서 이 상황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6월 경 절정에 달했던 이 시위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는 소식과 홍콩 사람들이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롤 모델로 생각한다는 점에서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10월이 된 지금까지도 이 사건은 해결되기는커녕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한 사태로 번져가고 있다. 홍콩 시민들의 요구는 받아들여지고 있지 않고 홍콩 정부, 그리고 그 배후의 중국 정부는 대화를 통한 갈등의 해결이 아닌 무력 진압으로 대응하고 있다. 페친 중에 한 분을 통해 시시각각 홍콩의 상황을 엿보고 있는데 늘 피투성이가 된 시민들의 사진이 올라온다. 매 시위마다 부상자, 아니 사상자들의 소식이 끊이지 않는다. 심지어 며칠 전에는 외신 기자가 홍콩 경찰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북한처럼 통제 사회도 아닌 곳에서 이런 잔인한 폭력이 대놓고 자행될 수 있다는 게 신기할 지경이다.

 

더욱 무력감을 느끼는 것은 이런 비인도적인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중국 정부에 대해서 그 누구도, 그 어떤 방법으로도 압력을 행사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다른 약소국들의 비민주적인 국가 권력에 대해서는 원색적인 비난을 서슴지 않는 서방 국가들이 중국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못 한다. 얼마 전 홍콩을 지지하는 발언을 SNS에 올린 미국 NBA 휴스턴 로키츠 팀의 감독으로 인해 NBA가 중국의 거센 보이콧을 당했다. 스폰서 철회, 불매 운동, 중계 취소 등. 중국이 거대한 소비력을 가지고 타국가들을 협박하기 때문에 중국의 비민주적, 비인권적 행태를 비판할 수 있는 국가, 기업이 없는 것이다. NBA가 해당 감독뿐만 아니라 협회까지 나서서 중국에 사과한 것을 두고 미국 정계에서 거세게 비판하고 있다고 한다. 어떻게 진행이 될지 궁금하다. 

 

한편, 중국이 소비력을 무기로 타국을 압박할 수 있다는 것은 중국 국민들이 중국 정부의 입장에 전적으로 찬성한다는 뜻이다. 홍콩에 대한 중국 정부의 대응을 비판하는 타국의 기업, 타국 정부에 대해 중국 국민들이 한 목소리로 분노하지 않고서는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없다. 중국인들은 민주주의와 자유의 가치를 왜 모르는 것일까?

 

이런 의문이 천안문 사태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게 됐다. 어제 천안문 사태에 대한 유튜브 한 편을 시청했다. 공산당 독재 치하에서 업악당하던 중국 국민들이 대학생과 지식인을 중심으로 민주주의를 요구했던 사건. 그러나 이 사건은 중국군의 무력 진압으로 인해 끔찍한 학살만을 남기고 실패했다. 그 뒤로 중국 정부는 천안문 사태에 대한 모든 자료를 삭제하고 인민들에 대한 국가주의 사상교육을 더 강화했다고 한다. 그래서 실제로 중국인들 중에는 천안문 사태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막대한 경제적 위협을 감수하고 중국의 인권탄압을 비난할 수 있는 나라가 없다. 기업도 없다. 무엇이 중국의 야망과 폭주를 막고 주변국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을까? 나는 중국 국민들의 각성 밖에는 없다고 생각한다. 너무 이상적인 생각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가장 현실적인 생각 아닌가? 하지만 중국 국민들이 천안문 사태의 실패를 극복하고 다시 민주화 운동을 일으키려면 정말 큰 계기가 필요할 것 같다. 현재와 같은 경제 발전의 분위기와 중화사상의 자신감 속에서는 자신들의 인권이 파괴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역사란 어떤 개인이나 집단의 끈질긴 노력에 의해서 변화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우연한 사건들에 의해 진행되는 것 같다. 큰 흐름을 바꾸기 어렵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과연 인류 역사는 진보하고 있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나는 그저 현재 내가 알고 있고 경험한 최대한의 윤리 의식과 양심에 의해 생각하고 행동하고 설득할 뿐이다. 그리고 다른 인간들에게도 그 양심이 존재할 것이고 각 사람의 양심과 양심에 근거해 위험을 무릅쓰는 실천하는 행동들이 또 다른 잠자고 있는 양심을 깨울 것이라고 믿을 뿐이다. 그것만이 이 세상에서 가장 믿을 만한 것이 아닐까.

 

2019. 10. 21. 22:04. RSS feed. came from other blogs. Leave a Response.
Posted in 생각. Top

 

 

추석 때 모이지 못했던 시친가댁 모임이 오늘 있었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사는 가족들이 다 같이 모이기 위해 선택된 장소는 막내 고모님이 사시는 서천. 당일치기 모임이기 때문에 새벽 6시에 집에서 출발했다.

 

나는 오늘 이동하는 동안 차에서 거의 내내 잠만 잤다. 책도 두 권이나 챙겨갔는데 10장도 못 읽은 것 같고 듀오링고도 조금 하긴 했지만 거의 대부분의 시간에 잤다. 피곤하기도 하고, 시부모님과의 대화를 조금 피하고 싶기도 하고. 평소엔 대화하는 걸 좋아하지만 요즘에는 곤란한 걸 물으실까 봐 좀 긴장이 되곤 한다. 우리 계획이라든지, 교회에 관련된 거라든지, 돈 문제라든지. 그래 봤자 염려하시는 것뿐이긴 하지만 염려를 드리고 있다는 걸 느끼는 게 좋지도 않고 혹시나 우리를 위해 과한 도움을 주실까 봐 걱정이 되기도 하고 그렇다.

 

날씨가 매우 더웠다. 먼 길 오가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점심 한 끼는 아주 든든하고 맛나게 먹어서 좋았다. 너무 도움도 안 드리고 밥만 얻어먹었나 싶긴 한데, 아직 나는 여기서는 아기이고 손님이니까 내가 뭘 더 할 것은 없겠다 싶었다. 남편이랑 가영이도 안 하는데 뭘. 대신 소윤이 시윤이를 데리고 나가서 놀고 왔다. 얘들이 없으면 얼마나 더 어색할 뻔했나.

 

그래도 사촌동생들 중에서 제일 친한 아이들은 하재, 샘이, 서영이다. 자주 봐야 정든다는 말이 정답이다.

 

낮엔 그렇게 덥더니만 밤엔 꽤나 쌀쌀했다. 목티에 트렌치코트까지 입었는데도 추웠다. 오늘이 보름이던가, 달이 아주 휘영청 밝았다.

 

오늘 길에 차 안에서 어머님의 사는 이야기, 힘드신 것 얘기를 하다가 결국 오늘도 살아온 인생이 얼마나 고달프셨는지 듣기도 하고 또 위로와 격려를 말을 해드리기도 했다. 듣다 보면 늘 똑같은 레퍼토리인데 어머님은 늘 저 얘기구나라는 생각이 아니라, 얼마나 저 이야기를 제대로 듣고 이해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저 이야기가 아직까지도 이렇게 제자리를 빙빙 돌며 허공에 소리를 뿌리고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이야기할 곳이 우리에게 밖에 없으시겠지. 지금 당장 바꿀 힘도, 바꾸고 싶은 마음도 없다는 말도 이해가 된다. 그렇게 30년이 넘게 살아오셨으니까. 하지만 천천히 조금씩 그 고통의 세월을 내려놓으실 수 있도록 도와드리고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지만, 격려와 기도로.

 

 

 

2019. 10. 21. 22:01. RSS feed. came from other blogs. Leave a Response.
Posted in 쓰기 시간.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