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 2

  1. 2019.10.21 저도 '꽃친'하고 오겠습니다.
  2. 2019.10.21 주말의 의미 1

D-30

 

남편을 먼저 보낸 신고식을 호되게 치르고 있다. 출국 며칠 전부터 같이 호흡을 맞추며 정신없이 지내다가 긴장이 풀려서 그런 건지, 내게도 다가오는 여행의 시작이 갑자기 실감 나서 그런 건지, 연애를 시작한 뒤 가장 오랜 기간 동안 떨어져 있게 돼서 그런 건지, 처음으로 혼자 해외로 나간 남편이 걱정돼서 그런 건지, 아무튼 아프다.

 

하지만 나에게는 출국 전 마쳐야 하는 몇 가지 중요한 일들이 남아 있다. 그중에 하나는 '꽃다운친구들' 가족들에게 나의 여행 소식, 그리고 그로 인한 긴 부재의 소식을 알리는 일이다. 

 

'꽃다운친구들'(줄여서 꽃친)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가기 전 1년 동안 자발적인 방학을 가지며 휴식, 놀이, 자기 탐구 등의 시간을 가지는 청소년과 그 가족들의 공동체이다. 꽃친은 학교나 학원이 아니라 비영리 운동의 모양새를 가지고 있고, 나는 3년 전 꽃친이 태동할 때 이 팀에 합류하여 지금까지 이 단체의 행정간사로, 아이들의 길잡이 쌤으로, 도대체 이런 짓이 필요한 일이긴 한 건지 고민하는 자발적 연구자로 함께 일하고 있다. 

 

꽃친쌤으로 산다는 것은 1년 동안 17세 내외의 외계인 같은 아이들 10여 명과 일주일에 두 번씩 하루 종일 함께 먹고 논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1년에 네다섯 번 정도 여행을 가면 먹고 놀고 헤어지지 않고 같은 집으로 들어가 쌩얼도 보고 잠꼬대도 듣는다. 특히나 이 시간 동안 무언가 성취하는데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각 아이들의 마음과 생각에 집중하며 관계를 쌓다 보니 그냥 학생과 쌤의 관계 이상의 것이 우리에게 사이에 생겨난다. 

 

2016년에 시작된 1기, 작년의 2기를 거쳐 올 해에도 3기 친구 10명과 신나는 1년의 방학을 시작했다. 그런데 함께 시작한 마라톤을 끝까지 함께 완주하지 못하고 중간에 내가 여행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게 하려고 애초에 시작하기 전인 3월에 떠나려고도 생각했었다. 지금 와서는 반년이라도 3기 친구들을 만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언제, 어떻게 작별을 이야기해야 하는지 여간 고민이 되는 게 아니었다. 미리 말해서 마음의 준비를 하게 해야 하나? 너무 일찍 말하면 아이들이 나와의 관계에 신뢰를 잃은 채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지는 않으려나? 함께 일하는 선생님들과 의논한 끝에 결국 상반기 활동을 마무리하는 발표회 날에 이야기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날이 바로 오늘이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어제 오후부터 시작된 체기가 여전히 몸에 남아 있었다. 카톡을 보니 어제 밤늦게까지 꽃친 쌤들이 수고해주신 흔적이 남아있다. 얼른 뒷 마무리를 내가 하고 집을 나섰다. 먼 길이지만 최대한 좋은 컨디션을 만들기 위해 택시를 타기로 한다. 나의 쉼을 끊임없이 방해하는 택시 아저씨의 무례함에 무응답으로 대응했는데도 내릴 때쯤엔 헛구역질이 났다. 행사를 준비하는데 계속 헛구역질이 나서 결국 극단의 조치를 취했다. 브라를 벗었다. 여행 다닐 때는 노브라로 다닌 적이 가끔 있었지만 한국에서는 그런 적이 없는데, 이걸 풀지 않으면 계속 구역질이 나고 결국 몸을 가누지 못할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도 아니고 아이들과 그 부모님들이 나를 이상한 쌤이라고 생각하면 어쩌지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이게 살아있는 페미니즘 교육이지 싶었다. 거울 앞에 서서 한참을 티가 나나 안 나나 관찰하다가 남자들은 늘 티셔츠 겉으로 티 나게 다니는데 무슨 상관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아파 죽겠는데 속옷 하나 벗는 게 뭐 대수인가 싶었다.

 

다행히도 점점 몸이 좋아져 끝날 때쯤 되니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고, 행사도 큰 무리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마지막으로 온 가족들이 동그랗게 둘러앉아서 꽃친으로 보낸 반년의 시간의 의미를 이야기하는 써클타임 시간을 가졌다. 나의 여행 소식은 이 순서에 알리도록 되어 있었다. 내 컨디션과 씨름하며 행사 진행에만 신경 쓰느라 정작 뭐라고 이야기해야 할지 준비가 되지 않았었다. 고민 끝에 각자의 키워드를 적는 종이에 '나도 꽃친 하고 올게'라고 적었다. '학생의 본분은 공부지'라는 획일적인 고정관념, 그리고 그 안에 도사린 '뒤쳐지면 죽는다'라는 모두의 숨통을 조이는 협박 앞에서 '과연 그럴까?'를 외치며 보란 듯이 놀고 웃고 기다리고 손 잡는 그런 시간, 그런 사람들이 바로 꽃친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잘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이 나를 옥죄어 올 때, 진짜 나는 누구인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생산하는 인간이 아닌 존재하는 인간으로서 보내는 충분한 시간이란 어떤 것인가, 나와 이해관계가 전혀 없는 타인과 만나고 대화하고 우정을 나눈다는 것은 어떤 감각인가를 느끼고 싶어서 떠나는 나의 여행이야 말로 '꽃친'과 꼭 닮은꼴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숙제를 마쳤다. 모인 사람들 중에 미리 알고 있던 분은 거의 없었다. 다소 무책임하다고 느끼진 않을지 걱정했었는데 대부분 나의 취지를 잘 이해해주었고 기대 이상의 격려와 응원을 해주었다. 꽃친을 현재 진행형으로 경험하고 있는 이들이기에 나에게도 꽃친이 필요했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앞으로 어떤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것인지 어렵지 않게 이해한 것 같았다. 

 

남은 반년은 보지 못할 거라는 이야기를 전하니 은혜가 울었다. 꽃친에서 보낸 반년에 시간에 대한 자신의 키워드를 ‘소중함’이라고 적어낸 아이다. 은혜 어머니도 나에게 계속 배신이야를 외치셨다. 그게 싫지가 않다. 나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니까. 모전여전이다. 남자아이들은 헤헤거린다. 장난친다. 마지막으로 사진을 같이 찍자고 했는데 다들 너무 밝게 웃는 거 아니냐며 핀잔도 들었다. 뭐 사실 생각해보면 슬픈 일은 아니니까.

 

우리의 여행이 꽃친 아이들에게 아직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었기 때문에 남편은 출국하면서 출국 포스팅도 하지 못하고 나갔다. 아이들과 SNS 친구이기 때문이다. 이제 뭐든 올려도 된다고 얘기해줬다. 남편이 고생했다고 말해줬다. 글쎄, 고생했나? 생각보다 덤덤하게 지나간 것 같다. 지금 나는 아직 남편이 떠난 여파가 더 크다. 아이들과의 이별도 그 일이 다 벌어지고 난 후에야 여파가 밀려오겠지. 하지만 내년에 더 멋진 예지쌤이 되어 돌아오기로 했으니 그 약속을 힘으로 삼아 그리움을 잘 이겨내 봐야겠다. 

 

 

*꽃다운친구들 : http://www.kochin.kr

 

2019. 10. 21. 22:39. RSS feed. came from other blogs. Leave a Respo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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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도 이제 다 지나간다. 오늘 오전에 빨래를 개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주말에 기대하는 것도 바뀌었구나.'

 

예전에 뭘 기대했는지는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일요일엔 교회를 다녀오면 시간이 거의 다 가버렸기 때문에 주말이란 토요일 하루였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마저도 행사나 약속이 없는 토요일은 흔치 않았다. 오후에 일정이 있다면 일어나서 간단히 아침을 먹고 빨래나 청소 등의 집안일을 한 뒤 나갔다 오면 하루가 끝난다. 오전에 일정이 있다면 주 중과 다름없이 서둘러 집을 나서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주말이란 비록 출근은 하지 않지만 내가 보내고 싶은 모양으로의 시간이 아닌 그냥 그렇게 무엇인가로 채워지는 시간이었다.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 생각해보지도 못한 것 같다. 기껏 해봤자 이번에 개봉한 무슨 영화 보고 싶다 정도. 하지만 그렇게 살아온 지가 벌써 십수 년이기 때문에 딱히 그게 이상하다고 느끼진 않았었다. 

 

하지만 여행을 다녀온 뒤로는 그게 조금 달라졌다. 1년 동안 한국을 떠나 여행을 하는 동안에 그전엔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아니 당연한지 당연하지 않은지 한 번쯤 생각해 볼 대상으로 여기지도 않았던 많은 생활 습관들이 전부 초기화되었다. 시간, 공간, 관계 등 모든 것이 갑자기 다른 세계로 옮겨갔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다시 돌아와서 마주하게 되는 한국 사회, 내가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이 사회의 많은 것들, 그리고 그 속에서 당연하게 살아온 나의 모습을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새롭게 발견하게 된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주말이다.

 

여행하는 동안 그 어떤 일정도 채워져 있지 않았던 백지 같은 하루하루가 주 5일 출근해야 하는 날로 바뀌었다. 그러다 보니 일주일 중 온전히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단 이틀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지, 그리고 얼마나 짧은 시간인지 절감했다.

 

참 애석한 일이지만 나는 빠르게 주 5일 노동자의 일상에 익숙해지고 있다. 성실한 노동자이자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월~금 9시~6시는 내가 아닌 일에 나의 시간을, 아니 나의 자아를 내어준다. 그 시간 동안에는 일과 상관없는 영역에서의 나의 생각, 나의 욕망, 나의 취미, 나의 몽상, 나의 딴지, 나의 기쁨과 슬픔은 잠시 지워진다. 게다가 지워진 나라는 것이 6시가 지났다고 하고 바로 다시 살아 돌아오는 것이던가. 한 시간의 퇴근길 동안에도, 남편과 마주 앉아 밥을 먹는 시간까지도 잘 돌아오지 않는다.

 

매일 하루 일과가 끝난 뒤 좋아하는 책을 읽을 시간, 한 줄 일기를 남길 시간이 도무지 없는 것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1시간 단위로 국영수사과의 경계를 넘나드는 고등학교의 시간표처럼 빠르게 모드를 전환하여 저녁 시간을 쓰는 것은 내게는 버거운 일이다. 매일 핸드폰 어플로 하는 스페인어 공부와 내일의 삭신을 책임져 줄 스트레칭 정도만 겨우 하고 있다.

 

풍과 함께 우리 최소한 일요일만큼은 아무 일정도 만들지 말자고 다짐하고 있다. 현대인이라면 이게 참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일정이 없는데도 일요일에 만나자고 하는 사람을 거절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그런 일은 없었지만 혹시 누군가 일요일에 만나자고 한다면 무슨 말로 거절하는 게 좋을까 가끔 생각해보곤 한다.

 

다행히도 오늘은 우리 둘 다 아무 일정을 만들지 않는데 성공한 날이었다. (이러다 영영 이게 너무 쉬운 일이 되어버리는 건 아니겠지.. 그건 그것 나름대로 좀 비참한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어제는 왠지 잠이 오지 않아 새벽까지 둘이 얘기를 했고 오늘은 한국에 돌아온 뒤로 가장 늦은 시간에 일어났다. 일어나자마자 점심을 해먹고 거실에 널려 있던 빨래를 걷어 개다가 저 생각이 든 것이다.

 

자느라 없어져 버린 오전 시간까지 아까워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제 남은 시간 동안 무얼 할 수 있을지 헤아려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었다. 동네 카페에 가서 맛있는 커피를 마셔야지. 블로그도 써야지. 책도 읽어야지. 작은방에 달고 싶은 커튼도 알아봐야지. 지난 일주일 동안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사느라 내 머릿속에 등장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지극히 사적인 생각들을 꺼내봐야지. 이게 바로 주말이구나. 이게 바로 내가 주말에 기대하는 것이구나. 주말이란, 휴식이란, 안식이란 이런 것이구나.

 

그런 생각들을 하는 동안 내 몸에 느껴지는 감각이 여행을 할 때의 그것과 너무 비슷해서 놀랐다. 그리고 기뻤다.

 

앞으로 내 일상이 더 바빠진다면 이마저도 누리지 못할 수도 있다. 지금 같아서는 주 5일 출근에, 주 1~2회 정도 저녁 일정에, 토요일 하루 일정 정도가 내가 허용할 수 있는 최대 바쁨이다. 이 이상 내 시간을 무언가에 내주기는 싫다. '나는 나구나. 내가 여기 있구나.'라는 생각을 되살릴 최소한의 휴식 시간을 사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일 내년에 대학원을 가게 된다면, 1~2년 사이에 육아를 하게 된다면, 일주일에 딱 하루 온전히 내 휴식 시간을 갖는 것은 불가능해질지도 모르겠다. 그럼 어떡하지?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보자.

 

 

 

2019. 10. 21. 22:21. RSS feed. came from other blogs. Leave a Respo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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