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 1

  1. 2019.10.21 중국과 홍콩

 

중국이 홍콩에 저지르고 있는 일에 관심이 많이 간다. 물론 엄연히 중국 땅이었지만 영국 식민지가 되는 동안 중국과 많이 달라져 버린 홍콩. 지금의 상황까지 오지 않았으려면 애초에 영국이 식민 지배를 하지 않았거나, 반환하는 과정에서 조금 더 홍콩과 홍콩의 사람들에 대한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어버렸다.

 

여행을 하는 동안 중국인들을 조금 만났었다. 중국인들은 대부분 패키지여행을 하기 때문에 중국인 여행객들을 많이 보기는 했지만 깊이 사귄 것은 아니었다. 돌이켜보니 내가 여행을 하는 동안 중국에 대해 뭘 더 알게 되었는지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쉐삥을 만나서 함께 여행하고 사귀긴 했지만, 그녀는 베이징에 사는 의사로서, 엘리트 중국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깊은 대화를 나눠보지 못한 게 아쉽다.

 

싱가포리안인 송하고는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었지. 송은 아마도 중국계 싱가포르인 같은데 중국에 대해 매우 긍정적이었고 싱가포르 다음으로 중국을 좋아하고 자랑스러워하는 게 틀림없었다. 중국인들이 중국의 엄청난 국가주의에 대해 반감이 없고 오히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느낌은 아마 송으로부터 받은 것 같다. 싱가포르도 경제적으로는 매우 선진국이지만 정치적으로는 거의 독재에 가까운 국가 주도적 나라인데 50대 후반의 나이인 송은 이에 대해 나라가 하는 일에 너무 반대해서는 발전을 할 수가 없다며 젊은 세대들을 비판했다.

 

어딜 가나 떼로 몰려다니는 중국인들, 그리고 여행 현지의 문화를 존중하기보다는 자신들의 문화를 그냥 가지고 와서 오히려 현지인들이 받아들이도록 하고 있다는 느낌이 중국인들의 중국에 대한 자신감, 그리고 폐쇄적 국가주의를 엿보게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베를린에서 본 다큐멘터리 "American Factory"도 매우 큰 영향을 주었다. 미국에서 만든 다큐멘터리이기 때문에 미국의 시선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폐업한 미국의 공장을 사들여 재가동시키고 그로 인해 지역 경제를 다시 부흥시킬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가져왔던 중국 회사. 그러나 그들은 자본뿐만이 아니라 중국인 노동자들, 관리자들, 그리고 중국의 노동 문화까지 미국에 가져왔다. 그리고 그것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큰 갈등을 일으켰다. 근로 시간 준수, 노동 환경 안전, 민주적 의사교환 등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중국의 노동 문화. 미국인들은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재밌는 것은 중국인들에게는 이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고 이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미국인들이 이상해 보였던 것이다.

 

중국에서 회사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온 중국인 직원들은 중국에 있을 때 이 회사의 일자리 덕분에 먹고 살 수 있었다. 이 회사가 성장하고 발전하여 자신에게 일자리를 주고 급여를 주기 때문에 살 곳을 마련할 수 있었고, 결혼할 수 있었고, 자식을 기를 수 있었다. 그러니 회사가 계속 성장하도록 자신을 희생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 말고 중요한 것은 없었다.

 

중국인들이, 중국이 너무나 궁금했다. 왜냐, 중국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되었고 게다가 우리나라의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을 아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어서 중국의 홍콩 길들이기에 대해서도 조금씩 알게 되었다. 중국이 홍콩에 대해 범죄인인도 법을 통과시키려 하는데 이에 반대하는 홍콩 사람들인 시위가 국제 사회의 주목을 받게 되면서 이 상황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6월 경 절정에 달했던 이 시위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는 소식과 홍콩 사람들이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롤 모델로 생각한다는 점에서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10월이 된 지금까지도 이 사건은 해결되기는커녕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한 사태로 번져가고 있다. 홍콩 시민들의 요구는 받아들여지고 있지 않고 홍콩 정부, 그리고 그 배후의 중국 정부는 대화를 통한 갈등의 해결이 아닌 무력 진압으로 대응하고 있다. 페친 중에 한 분을 통해 시시각각 홍콩의 상황을 엿보고 있는데 늘 피투성이가 된 시민들의 사진이 올라온다. 매 시위마다 부상자, 아니 사상자들의 소식이 끊이지 않는다. 심지어 며칠 전에는 외신 기자가 홍콩 경찰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북한처럼 통제 사회도 아닌 곳에서 이런 잔인한 폭력이 대놓고 자행될 수 있다는 게 신기할 지경이다.

 

더욱 무력감을 느끼는 것은 이런 비인도적인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중국 정부에 대해서 그 누구도, 그 어떤 방법으로도 압력을 행사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다른 약소국들의 비민주적인 국가 권력에 대해서는 원색적인 비난을 서슴지 않는 서방 국가들이 중국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못 한다. 얼마 전 홍콩을 지지하는 발언을 SNS에 올린 미국 NBA 휴스턴 로키츠 팀의 감독으로 인해 NBA가 중국의 거센 보이콧을 당했다. 스폰서 철회, 불매 운동, 중계 취소 등. 중국이 거대한 소비력을 가지고 타국가들을 협박하기 때문에 중국의 비민주적, 비인권적 행태를 비판할 수 있는 국가, 기업이 없는 것이다. NBA가 해당 감독뿐만 아니라 협회까지 나서서 중국에 사과한 것을 두고 미국 정계에서 거세게 비판하고 있다고 한다. 어떻게 진행이 될지 궁금하다. 

 

한편, 중국이 소비력을 무기로 타국을 압박할 수 있다는 것은 중국 국민들이 중국 정부의 입장에 전적으로 찬성한다는 뜻이다. 홍콩에 대한 중국 정부의 대응을 비판하는 타국의 기업, 타국 정부에 대해 중국 국민들이 한 목소리로 분노하지 않고서는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없다. 중국인들은 민주주의와 자유의 가치를 왜 모르는 것일까?

 

이런 의문이 천안문 사태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게 됐다. 어제 천안문 사태에 대한 유튜브 한 편을 시청했다. 공산당 독재 치하에서 업악당하던 중국 국민들이 대학생과 지식인을 중심으로 민주주의를 요구했던 사건. 그러나 이 사건은 중국군의 무력 진압으로 인해 끔찍한 학살만을 남기고 실패했다. 그 뒤로 중국 정부는 천안문 사태에 대한 모든 자료를 삭제하고 인민들에 대한 국가주의 사상교육을 더 강화했다고 한다. 그래서 실제로 중국인들 중에는 천안문 사태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막대한 경제적 위협을 감수하고 중국의 인권탄압을 비난할 수 있는 나라가 없다. 기업도 없다. 무엇이 중국의 야망과 폭주를 막고 주변국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을까? 나는 중국 국민들의 각성 밖에는 없다고 생각한다. 너무 이상적인 생각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가장 현실적인 생각 아닌가? 하지만 중국 국민들이 천안문 사태의 실패를 극복하고 다시 민주화 운동을 일으키려면 정말 큰 계기가 필요할 것 같다. 현재와 같은 경제 발전의 분위기와 중화사상의 자신감 속에서는 자신들의 인권이 파괴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역사란 어떤 개인이나 집단의 끈질긴 노력에 의해서 변화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우연한 사건들에 의해 진행되는 것 같다. 큰 흐름을 바꾸기 어렵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과연 인류 역사는 진보하고 있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나는 그저 현재 내가 알고 있고 경험한 최대한의 윤리 의식과 양심에 의해 생각하고 행동하고 설득할 뿐이다. 그리고 다른 인간들에게도 그 양심이 존재할 것이고 각 사람의 양심과 양심에 근거해 위험을 무릅쓰는 실천하는 행동들이 또 다른 잠자고 있는 양심을 깨울 것이라고 믿을 뿐이다. 그것만이 이 세상에서 가장 믿을 만한 것이 아닐까.

 

2019. 10. 21. 22:04. RSS feed. came from other blogs. Leave a Respo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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