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 - 4

  1. 2019.10.21 저도 '꽃친'하고 오겠습니다.
  2. 2019.10.21 주말의 의미 1
  3. 2019.10.21 꽃친쌤도 해봤습니다, 1년의 쉼과 여행
  4. 2019.10.21 연구보고회 꼽사리 발표

D-30

 

남편을 먼저 보낸 신고식을 호되게 치르고 있다. 출국 며칠 전부터 같이 호흡을 맞추며 정신없이 지내다가 긴장이 풀려서 그런 건지, 내게도 다가오는 여행의 시작이 갑자기 실감 나서 그런 건지, 연애를 시작한 뒤 가장 오랜 기간 동안 떨어져 있게 돼서 그런 건지, 처음으로 혼자 해외로 나간 남편이 걱정돼서 그런 건지, 아무튼 아프다.

 

하지만 나에게는 출국 전 마쳐야 하는 몇 가지 중요한 일들이 남아 있다. 그중에 하나는 '꽃다운친구들' 가족들에게 나의 여행 소식, 그리고 그로 인한 긴 부재의 소식을 알리는 일이다. 

 

'꽃다운친구들'(줄여서 꽃친)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가기 전 1년 동안 자발적인 방학을 가지며 휴식, 놀이, 자기 탐구 등의 시간을 가지는 청소년과 그 가족들의 공동체이다. 꽃친은 학교나 학원이 아니라 비영리 운동의 모양새를 가지고 있고, 나는 3년 전 꽃친이 태동할 때 이 팀에 합류하여 지금까지 이 단체의 행정간사로, 아이들의 길잡이 쌤으로, 도대체 이런 짓이 필요한 일이긴 한 건지 고민하는 자발적 연구자로 함께 일하고 있다. 

 

꽃친쌤으로 산다는 것은 1년 동안 17세 내외의 외계인 같은 아이들 10여 명과 일주일에 두 번씩 하루 종일 함께 먹고 논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1년에 네다섯 번 정도 여행을 가면 먹고 놀고 헤어지지 않고 같은 집으로 들어가 쌩얼도 보고 잠꼬대도 듣는다. 특히나 이 시간 동안 무언가 성취하는데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각 아이들의 마음과 생각에 집중하며 관계를 쌓다 보니 그냥 학생과 쌤의 관계 이상의 것이 우리에게 사이에 생겨난다. 

 

2016년에 시작된 1기, 작년의 2기를 거쳐 올 해에도 3기 친구 10명과 신나는 1년의 방학을 시작했다. 그런데 함께 시작한 마라톤을 끝까지 함께 완주하지 못하고 중간에 내가 여행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게 하려고 애초에 시작하기 전인 3월에 떠나려고도 생각했었다. 지금 와서는 반년이라도 3기 친구들을 만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언제, 어떻게 작별을 이야기해야 하는지 여간 고민이 되는 게 아니었다. 미리 말해서 마음의 준비를 하게 해야 하나? 너무 일찍 말하면 아이들이 나와의 관계에 신뢰를 잃은 채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지는 않으려나? 함께 일하는 선생님들과 의논한 끝에 결국 상반기 활동을 마무리하는 발표회 날에 이야기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날이 바로 오늘이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어제 오후부터 시작된 체기가 여전히 몸에 남아 있었다. 카톡을 보니 어제 밤늦게까지 꽃친 쌤들이 수고해주신 흔적이 남아있다. 얼른 뒷 마무리를 내가 하고 집을 나섰다. 먼 길이지만 최대한 좋은 컨디션을 만들기 위해 택시를 타기로 한다. 나의 쉼을 끊임없이 방해하는 택시 아저씨의 무례함에 무응답으로 대응했는데도 내릴 때쯤엔 헛구역질이 났다. 행사를 준비하는데 계속 헛구역질이 나서 결국 극단의 조치를 취했다. 브라를 벗었다. 여행 다닐 때는 노브라로 다닌 적이 가끔 있었지만 한국에서는 그런 적이 없는데, 이걸 풀지 않으면 계속 구역질이 나고 결국 몸을 가누지 못할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도 아니고 아이들과 그 부모님들이 나를 이상한 쌤이라고 생각하면 어쩌지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이게 살아있는 페미니즘 교육이지 싶었다. 거울 앞에 서서 한참을 티가 나나 안 나나 관찰하다가 남자들은 늘 티셔츠 겉으로 티 나게 다니는데 무슨 상관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아파 죽겠는데 속옷 하나 벗는 게 뭐 대수인가 싶었다.

 

다행히도 점점 몸이 좋아져 끝날 때쯤 되니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고, 행사도 큰 무리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마지막으로 온 가족들이 동그랗게 둘러앉아서 꽃친으로 보낸 반년의 시간의 의미를 이야기하는 써클타임 시간을 가졌다. 나의 여행 소식은 이 순서에 알리도록 되어 있었다. 내 컨디션과 씨름하며 행사 진행에만 신경 쓰느라 정작 뭐라고 이야기해야 할지 준비가 되지 않았었다. 고민 끝에 각자의 키워드를 적는 종이에 '나도 꽃친 하고 올게'라고 적었다. '학생의 본분은 공부지'라는 획일적인 고정관념, 그리고 그 안에 도사린 '뒤쳐지면 죽는다'라는 모두의 숨통을 조이는 협박 앞에서 '과연 그럴까?'를 외치며 보란 듯이 놀고 웃고 기다리고 손 잡는 그런 시간, 그런 사람들이 바로 꽃친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잘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이 나를 옥죄어 올 때, 진짜 나는 누구인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생산하는 인간이 아닌 존재하는 인간으로서 보내는 충분한 시간이란 어떤 것인가, 나와 이해관계가 전혀 없는 타인과 만나고 대화하고 우정을 나눈다는 것은 어떤 감각인가를 느끼고 싶어서 떠나는 나의 여행이야 말로 '꽃친'과 꼭 닮은꼴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숙제를 마쳤다. 모인 사람들 중에 미리 알고 있던 분은 거의 없었다. 다소 무책임하다고 느끼진 않을지 걱정했었는데 대부분 나의 취지를 잘 이해해주었고 기대 이상의 격려와 응원을 해주었다. 꽃친을 현재 진행형으로 경험하고 있는 이들이기에 나에게도 꽃친이 필요했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앞으로 어떤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것인지 어렵지 않게 이해한 것 같았다. 

 

남은 반년은 보지 못할 거라는 이야기를 전하니 은혜가 울었다. 꽃친에서 보낸 반년에 시간에 대한 자신의 키워드를 ‘소중함’이라고 적어낸 아이다. 은혜 어머니도 나에게 계속 배신이야를 외치셨다. 그게 싫지가 않다. 나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니까. 모전여전이다. 남자아이들은 헤헤거린다. 장난친다. 마지막으로 사진을 같이 찍자고 했는데 다들 너무 밝게 웃는 거 아니냐며 핀잔도 들었다. 뭐 사실 생각해보면 슬픈 일은 아니니까.

 

우리의 여행이 꽃친 아이들에게 아직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었기 때문에 남편은 출국하면서 출국 포스팅도 하지 못하고 나갔다. 아이들과 SNS 친구이기 때문이다. 이제 뭐든 올려도 된다고 얘기해줬다. 남편이 고생했다고 말해줬다. 글쎄, 고생했나? 생각보다 덤덤하게 지나간 것 같다. 지금 나는 아직 남편이 떠난 여파가 더 크다. 아이들과의 이별도 그 일이 다 벌어지고 난 후에야 여파가 밀려오겠지. 하지만 내년에 더 멋진 예지쌤이 되어 돌아오기로 했으니 그 약속을 힘으로 삼아 그리움을 잘 이겨내 봐야겠다. 

 

 

*꽃다운친구들 : http://www.kochin.kr

 

2019. 10. 21. 22:39. RSS feed. came from other blogs. Leave a Respo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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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도 이제 다 지나간다. 오늘 오전에 빨래를 개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주말에 기대하는 것도 바뀌었구나.'

 

예전에 뭘 기대했는지는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일요일엔 교회를 다녀오면 시간이 거의 다 가버렸기 때문에 주말이란 토요일 하루였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마저도 행사나 약속이 없는 토요일은 흔치 않았다. 오후에 일정이 있다면 일어나서 간단히 아침을 먹고 빨래나 청소 등의 집안일을 한 뒤 나갔다 오면 하루가 끝난다. 오전에 일정이 있다면 주 중과 다름없이 서둘러 집을 나서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주말이란 비록 출근은 하지 않지만 내가 보내고 싶은 모양으로의 시간이 아닌 그냥 그렇게 무엇인가로 채워지는 시간이었다.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 생각해보지도 못한 것 같다. 기껏 해봤자 이번에 개봉한 무슨 영화 보고 싶다 정도. 하지만 그렇게 살아온 지가 벌써 십수 년이기 때문에 딱히 그게 이상하다고 느끼진 않았었다. 

 

하지만 여행을 다녀온 뒤로는 그게 조금 달라졌다. 1년 동안 한국을 떠나 여행을 하는 동안에 그전엔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아니 당연한지 당연하지 않은지 한 번쯤 생각해 볼 대상으로 여기지도 않았던 많은 생활 습관들이 전부 초기화되었다. 시간, 공간, 관계 등 모든 것이 갑자기 다른 세계로 옮겨갔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다시 돌아와서 마주하게 되는 한국 사회, 내가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이 사회의 많은 것들, 그리고 그 속에서 당연하게 살아온 나의 모습을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새롭게 발견하게 된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주말이다.

 

여행하는 동안 그 어떤 일정도 채워져 있지 않았던 백지 같은 하루하루가 주 5일 출근해야 하는 날로 바뀌었다. 그러다 보니 일주일 중 온전히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단 이틀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지, 그리고 얼마나 짧은 시간인지 절감했다.

 

참 애석한 일이지만 나는 빠르게 주 5일 노동자의 일상에 익숙해지고 있다. 성실한 노동자이자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월~금 9시~6시는 내가 아닌 일에 나의 시간을, 아니 나의 자아를 내어준다. 그 시간 동안에는 일과 상관없는 영역에서의 나의 생각, 나의 욕망, 나의 취미, 나의 몽상, 나의 딴지, 나의 기쁨과 슬픔은 잠시 지워진다. 게다가 지워진 나라는 것이 6시가 지났다고 하고 바로 다시 살아 돌아오는 것이던가. 한 시간의 퇴근길 동안에도, 남편과 마주 앉아 밥을 먹는 시간까지도 잘 돌아오지 않는다.

 

매일 하루 일과가 끝난 뒤 좋아하는 책을 읽을 시간, 한 줄 일기를 남길 시간이 도무지 없는 것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1시간 단위로 국영수사과의 경계를 넘나드는 고등학교의 시간표처럼 빠르게 모드를 전환하여 저녁 시간을 쓰는 것은 내게는 버거운 일이다. 매일 핸드폰 어플로 하는 스페인어 공부와 내일의 삭신을 책임져 줄 스트레칭 정도만 겨우 하고 있다.

 

풍과 함께 우리 최소한 일요일만큼은 아무 일정도 만들지 말자고 다짐하고 있다. 현대인이라면 이게 참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일정이 없는데도 일요일에 만나자고 하는 사람을 거절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그런 일은 없었지만 혹시 누군가 일요일에 만나자고 한다면 무슨 말로 거절하는 게 좋을까 가끔 생각해보곤 한다.

 

다행히도 오늘은 우리 둘 다 아무 일정을 만들지 않는데 성공한 날이었다. (이러다 영영 이게 너무 쉬운 일이 되어버리는 건 아니겠지.. 그건 그것 나름대로 좀 비참한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어제는 왠지 잠이 오지 않아 새벽까지 둘이 얘기를 했고 오늘은 한국에 돌아온 뒤로 가장 늦은 시간에 일어났다. 일어나자마자 점심을 해먹고 거실에 널려 있던 빨래를 걷어 개다가 저 생각이 든 것이다.

 

자느라 없어져 버린 오전 시간까지 아까워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제 남은 시간 동안 무얼 할 수 있을지 헤아려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었다. 동네 카페에 가서 맛있는 커피를 마셔야지. 블로그도 써야지. 책도 읽어야지. 작은방에 달고 싶은 커튼도 알아봐야지. 지난 일주일 동안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사느라 내 머릿속에 등장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지극히 사적인 생각들을 꺼내봐야지. 이게 바로 주말이구나. 이게 바로 내가 주말에 기대하는 것이구나. 주말이란, 휴식이란, 안식이란 이런 것이구나.

 

그런 생각들을 하는 동안 내 몸에 느껴지는 감각이 여행을 할 때의 그것과 너무 비슷해서 놀랐다. 그리고 기뻤다.

 

앞으로 내 일상이 더 바빠진다면 이마저도 누리지 못할 수도 있다. 지금 같아서는 주 5일 출근에, 주 1~2회 정도 저녁 일정에, 토요일 하루 일정 정도가 내가 허용할 수 있는 최대 바쁨이다. 이 이상 내 시간을 무언가에 내주기는 싫다. '나는 나구나. 내가 여기 있구나.'라는 생각을 되살릴 최소한의 휴식 시간을 사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일 내년에 대학원을 가게 된다면, 1~2년 사이에 육아를 하게 된다면, 일주일에 딱 하루 온전히 내 휴식 시간을 갖는 것은 불가능해질지도 모르겠다. 그럼 어떡하지?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보자.

 

 

 

2019. 10. 21. 22:21. RSS feed. came from other blogs. Leave a Respo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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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다운친구들 종단연구 중간보고회에서 발제한 내용이다.

A4용지 7페이지가 넘는 대본을 썼는데 읽어보니 30분이 넘을 것 같아 중간중간 이야기를 빼면서 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꽤 만족스러운 발표였다. 발표한 모습을 동영상으로 촬영해서 보면 객관적으로 잘한 것과 못한 것이 더 잘 보일 것 같아서 일부러 부탁까지 드려서 촬영을 했다. 동영상을 다시 봤는데.. 음.. 객관적으로 보기란 참 어렵다 ㅎㅎ 말하면서 왜 저렇게 손을 많이 쓰고 시선 처리가 불안한가 싶은 생각이 제일 많이 들었다. 원고를 써서 말하니 쓸데없는 이야기는 하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할 때 표현이나 단어 등을 정확히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토론 시간에 참가자들이 쪽지에 질문을 적어서 냈는데, 전체 주제에 관계없이 여행비가 얼마 들었는지 물어보는 질문이 있어서 다들 웃었다. 그리고 나는 대답해드렸다.. ㅎㅎ

 

그리고 이런 질문도 있었다. 수련회에 다녀오면 얼마 간은 그 수련회에서 받은 은혜 때문에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이고 이제부터 달라진 삶을 살 것 같은 그런 마음이 들곤 하는데, 혹시 내 상태도 그런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솔직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 돌아온 지 50일 밖에 안됐기 때문에. 하지만 지금 현재 내가 느낄 수 있는 나의 변화에 한해서 말씀드린 것이다. 과연 이게 수련회 효과인지 아닌지 알고 싶으시면 6개월 뒤에 다시 만나서 얘기하자고 했다. 

 

그런데 사실 그 질문이 일주일이 지난 지금도 종종 생각나고 그 비유에 기대어 내 상태에 대해 스스로 점검해보곤 한다. 이것은 수련회 효과인가, 혹은 영구적 거듭남인가. 수련회 효과라면 얼마나 오랫동안 유효한 효과일까. 수련회 효과를 영구적 거듭남으로 바꾸기 위해 내가 노력할 수 있는 부분은 없을까.

 

 

 

 

 


 

 

 

꽃친쌤도 해봤습니다, 1년의 쉼과 여행

꽃다운친구들 길잡이교사 이예지

 

1. 자기소개

      a. 꽃친의 탄생부터 3년 차까지

      b. 남의 기준에 맞춰 살지 않으려 나름 노력하지만 어쩔 수 없는 범생이

      c. 여행 결심 당시 신혼 2년 차

 

 

2. 쉼을 결심한 이유

      a. 남편과의 시간

      b. 쉼/꽃친을 더 이해

      c. 개인적인 변화가 필요

 

 

3. 그런데 왜 여행인가?

      a. 나에게 쉼의 의미

           i. 익숙한 사회로부터의 분리가 전제되어야 함

           ii. 생산/관계/역할의 의무로부터 잠시 떠남

           iii. 새로운 자극을 겪는 시간

 

 

4. 여행 중 생긴 예상치 못한 과정들

      a. 남편과의 갈등

           i. 나의 쉼 : 늘 하던 것이 아닌 다른 새롭고 재미있는 것을 경험 à 경험, 체험

           ii. 남편의 쉼 : 특별한 것을 하지 않고 시공간을 비워 냈을 때 생겨나는 마음을 경험 à 관찰, 성찰

      b. 내 내면의 갈등

           i. 여행도 “잘하고 싶은 욕심”

                1. 남들이 다 하니까 나도 안 할 수 없지 VS 남들이 다 하는 흔한 건 하기 싫음

                2. 여전히 타인의 인정이 많이 필요한 내 모습을 발견 : 덴마크 포스팅에 달린 댓글

                3. “알찬 시간” 대한 집착 VS 넉넉한 쉼

      c. 파타고니아 로드 트립

           i. 시작

                1. 친구에 대한 경쟁심

                2. 환상적인 이미지에 유혹됨

                3. 독특한 경험을 자랑하고 싶은 욕심

           ii. 현실 : 강행군, 반복되는 일과, 동행자와의 갈등

           iii. 변화

                1. 내가 애초에 기대한 것을 계속 생각하는 대신 현재 눈앞에 일어나는 일을 발견, 누림

                2.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가 점점 흐릿해짐

      d. 예지보부상

           i. 해보고 싶었던 마음이 위기라는 기회를 만나서 도전하게 됨

           ii. 1차 : 예상치 못했던 좋은 반응

           iii. 2차

                1.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

                2. 1차 때보다 반응이 적음

                3. 그러나 사람들의 반응이 아니라 나의 성장에 주목

 

 

5. 내가 겪은 변화

      a. 다른 사람들의 소식에 초연해짐

      b. 좋은 일에 대해 진심으로 감탄/배우려는 자세

      c. 내 몫의 일에 더욱 집중

      d. 경쟁적으로 최고를 추구하는 일을 그만 둠 → 용기, 의연함, 어우러짐

 

 

6. 내가 겪고 이해하게 된 쉼

      a. 인생 중 계속되는 변화의 경험

           i. 자신이 운용해가는 변화의 경험 VS 사회가 강제하는 방식을 자신에게 짜 맞추는 방식의 경험

           ii. 사회로부터 벗어나 보는 시간

      b. 쉼 안에서도 길을 잃는다.

           i. 모드 전환에 걸리는 시간 : 내 안에 내재하는 사회

           ii. 시행착오 : 경험, 실패, 성찰, 재도전

                1. 겪지 않고 처음부터 일직선으로 갈 수 없음

                2.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음

      c. 돌아오면 말짱 도루묵?

           i. 영원히 떠나 있을 수는 없다

           ii. 이전에 비해 좀 더 자기의 길에 집중할 수 있는 힘

           iii. 언제든 필요하면 다시 떠날 수 있다는 용기

                1. 신호를 알아차리기

                2. 변화에 대한 기대

 

2019. 10. 21. 22:20. RSS feed. came from other blogs. Leave a Respo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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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꽃다운친구들 종단연구 2차 중간 연구보고회가 있는 날이었다.

 

여행에서 돌아오기 직전에 발표자로 섭외를 받았다. 연구팀에서 연구에 대한 내용을 발표하기 전 첫 순서로 나의 안식년과 여행에 대해 발표를 해달라는 부탁이었다. 처음에는 여행과 덴마크 에프터스콜레에 대한 이야기를 15분 안에 해달라고 해서 매우 당황했다. 어떻게 그걸 15분 안에 할 수 있지? 게다가 나는 말이 많은 스타일이어서 15분짜리 발표를 준비하면 꼭 20분이 되고야 만다. 즉 15분을 하기 위해서는 10분 치 얘기밖에 준비할 수가 없다는 건데.. 아무튼 연구팀과, 꽃친팀 내부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보고회이고 남의 일이 아니니까 말이 섭외지 그냥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긴 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여행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발언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 은근히 기쁘기도 했다. 세계여행을 다녀온 뒤에 여행 이야기를 하는 자리를 스스로 일부러 만드는 사람들도 있긴 하다. 만일 내가 그런 걸 한다면 어떨까 생각해봤다.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나는 여행하는 것은 좋아하지만 여행 책을 읽거나 여행 얘기를 듣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여행 얘기를 하는 것이 누군가에게 재밌거나 의미 있는 일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동시에 무언가 이야기하고 싶은 욕망도 분명 있었다. 그냥 어디가 멋있었다, 재밌었다는 것보다 조금은 더 쓸모가 있는. 그런 의미에서 보고회에서의 발표는 내 여행의 경험 중에서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자리일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여행에서 돌아와서 업무에 복귀하기 전부터 짬짬이 이 발표에 대해서 준비하기 시작했다. 여행에서의 원경험이 1년 치가 쌓여 있는 상황에서 가치 있는 이야기를 고르는, 아니 이야기 안에 숨겨져 있는 가치를 찾아내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마인드맵에 생각나는 대로 적어두었다. 우선 이렇게 적어놓고 나면 어떻게 연결해야 할지 그림이 그려질 것 같았다. 하지만 업무에 복귀하고 나서는 다른 급한 일들로 바빴다. 발표 준비는 그렇게 시작만 해둔 상태로 어느새 2주 정도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내 스케줄 다이어리에는 매주 "발표 아웃라인 잡기"가 적혀있었다. 다른 일들에 치여 매번 다음 주로 미뤄온 것이다.

 

그동안 내내 주말에도 붙잡고 있었고, 팀원들이 뭘 부탁해도 발표 준비를 해야 해서 그 업무는 못하겠다고 거절을 하기까지 했다. 지난주 개천절까지 연구팀에게 자료집에 들어갈 발표 자료를 보내드리기로 했고 발표할 내용을 글로 써서 보내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부담이 과중했는지 개천절 날은 결국 체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미룰 수가 없는 일이기에 아픈 몸을 이끌고 겨우 글을 완성했다. 그리고 보내기 전에 남편에게 먼저 보여주고 피드백을 부탁했다.

 

그런데 남편이 글을 읽은 뒤로 계획이 크게 바뀌게 되었다. 처음에는 내 글에서 쉼이 필요하다고 느낀 지점과 여행을 하기로 한 결정 사이에 연결고리가 부족한 것 같으니 그 부분을 보충하는 게 좋겠다는 피드백을 주었다. 하지만 둘이서 점차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내 글에 얼마나 뼈대가 허술했는지가 드러나게 되었다.

 

"예지 네가 이런 이유에서 쉼이 필요했다고 생각하고 여행을 시작하게 됐다면 듣는 사람들은 그 이유가 충족되었는지 궁금하지 않겠어? 그리고 실제로 여행하면서 너는 처음엔 이런 모습이었는데, 이런 이런 계기들을 통해서 조금씩 변화하게 되었다고 나는 기억하는데..."

 

남편에게 이런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면 나는 도대체 어제 보고회에서 어떤 발표를 하게 됐을지. 생각해보니 아찔하다. 그 피드백을 받은 것이 이미 마감날 밤이었다. 얘기를 주고받는 내내,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뒤집으면 오늘 안에 글을 마감하지 못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 이야기가 점점 핵심으로 다가가고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이야기를 멈출 수 없었다. 결국 자료집에는 발표 개요만 싣는 것으로 결정하고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정리를 해서 보내드렸다.

 

이렇게 막판이 되어서야 아웃라인이 갖춰지게 되어 다급한 면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꽤 만족스러웠고, 현재로서는 이게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편으로는 왜 이걸 더 빨리 잡지 못했을까, 남편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나 혼자 할 수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남편과의 대화로부터 추출된 이 발표를 과연 내 발표라고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하지만 연구팀으로부터 보고회 자료집을 받아서 꽃친 청소년 연구 결과를 받아보고 나서 나는 이런 생각을 조금 접게 되었다. 누군가 자기가 한 경험에 대해서 스스로 의미를 추출해 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자서전보다 평전이 읽을 만한 게 아닐까. 내게는 남편이 연구자였던 셈이다.

 

그 아웃라인을 바탕으로 주말에 피피티를 만들고 발표 당일인 어제 낮에 종일 발표문을 작성해서 무사히 발표를 마쳤다. 막판까지 다소 급하게 마무리하게 된 발표였지만 발표 개요, 피피티, 발표문까지 3종 세트로 준비해서 한 발표는 이게 처음이었다. 대학생 때부터 수많은 발표를 했었지만 제대로 된 발표는 이제야 처음 해 본 느낌이었다. 카메라를 가져가서 녹화도 부탁했다. 동영상을 보면서 어떤 부분이 제일 중요하게 들리는지, 어떤 부분은 덜어내도 되는 부분인지 체크도 해보려고 한다. 내가 이렇게까지 공을 들이는 이유는 뭘까?

 

어디선가 비슷한 주제로 또 발표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은근한 기대가 있음을 부정하지 않겠다. 내 경험, 내 이야기가 너무 훌륭하고 막 더 알리고 싶고 자랑하고 싶어서라기보다는, 나도 내 경험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어떤 이야깃거리가 있는지 스스로도 궁금하고 최대한 많이 파내 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 계기로 내가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들과 주고받을 수 있는 장이 열리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해 준비한 덕분에 기대하지 못했던 발제비도 받았고(!!), 어제 발표를 야근 인정받아 오늘 오전에 이렇게 카페 휴식도 취할 수 있게 되어서 너무너무 좋다 ㅋㅋ

 

 

 

2019. 10. 21. 22:08. RSS feed. came from other blogs. Leave a Respo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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