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 1

  1. 2019.10.21 서천에 다녀오다

 

 

추석 때 모이지 못했던 시친가댁 모임이 오늘 있었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사는 가족들이 다 같이 모이기 위해 선택된 장소는 막내 고모님이 사시는 서천. 당일치기 모임이기 때문에 새벽 6시에 집에서 출발했다.

 

나는 오늘 이동하는 동안 차에서 거의 내내 잠만 잤다. 책도 두 권이나 챙겨갔는데 10장도 못 읽은 것 같고 듀오링고도 조금 하긴 했지만 거의 대부분의 시간에 잤다. 피곤하기도 하고, 시부모님과의 대화를 조금 피하고 싶기도 하고. 평소엔 대화하는 걸 좋아하지만 요즘에는 곤란한 걸 물으실까 봐 좀 긴장이 되곤 한다. 우리 계획이라든지, 교회에 관련된 거라든지, 돈 문제라든지. 그래 봤자 염려하시는 것뿐이긴 하지만 염려를 드리고 있다는 걸 느끼는 게 좋지도 않고 혹시나 우리를 위해 과한 도움을 주실까 봐 걱정이 되기도 하고 그렇다.

 

날씨가 매우 더웠다. 먼 길 오가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점심 한 끼는 아주 든든하고 맛나게 먹어서 좋았다. 너무 도움도 안 드리고 밥만 얻어먹었나 싶긴 한데, 아직 나는 여기서는 아기이고 손님이니까 내가 뭘 더 할 것은 없겠다 싶었다. 남편이랑 가영이도 안 하는데 뭘. 대신 소윤이 시윤이를 데리고 나가서 놀고 왔다. 얘들이 없으면 얼마나 더 어색할 뻔했나.

 

그래도 사촌동생들 중에서 제일 친한 아이들은 하재, 샘이, 서영이다. 자주 봐야 정든다는 말이 정답이다.

 

낮엔 그렇게 덥더니만 밤엔 꽤나 쌀쌀했다. 목티에 트렌치코트까지 입었는데도 추웠다. 오늘이 보름이던가, 달이 아주 휘영청 밝았다.

 

오늘 길에 차 안에서 어머님의 사는 이야기, 힘드신 것 얘기를 하다가 결국 오늘도 살아온 인생이 얼마나 고달프셨는지 듣기도 하고 또 위로와 격려를 말을 해드리기도 했다. 듣다 보면 늘 똑같은 레퍼토리인데 어머님은 늘 저 얘기구나라는 생각이 아니라, 얼마나 저 이야기를 제대로 듣고 이해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저 이야기가 아직까지도 이렇게 제자리를 빙빙 돌며 허공에 소리를 뿌리고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이야기할 곳이 우리에게 밖에 없으시겠지. 지금 당장 바꿀 힘도, 바꾸고 싶은 마음도 없다는 말도 이해가 된다. 그렇게 30년이 넘게 살아오셨으니까. 하지만 천천히 조금씩 그 고통의 세월을 내려놓으실 수 있도록 도와드리고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지만, 격려와 기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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