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 1

  1. 2017.02.24 처참했던 첫번째 노래시간

오늘은 꽃친에서 처음으로 함께 노래 부르기를 시도한 날이다. 제목은 또 내 맘대로 "내가 좋아하는 노래". 


덴마크 에프터스콜레에서는 함께 노래 부르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의식 중에 하나라고 한다. 머리로는 금방 이해가 되지만 어떤 노래를 어떤 식으로 부르는지는 감이 잘 오지 않았다. 덴마크 폴케 호이스콜레에 6개월간 다니고 온 지인을 통해 접한 정보에 의하면 그들이 부르는 노래는 Communal Song이라고 해서 모두가 공통으로 사용하는 노래집이 있다. 어플로 다운받을 수도 있어서 시도해보니 멜로디나 가사가 거의 찬송가와 비슷하다. 물론 멜로디가 심플하고 아름답고 내용도 좋은 것이겠지만, 어렸을 때부터 이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 꽃치너들을 데리고 이런걸 부르는 건 대략난감이다. 그리고 또 그들의 문화를 접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통로는 여러 에프터스콜레(주로 예술중심학교)에서 학생들이 노래 공연하는 혹은 연습하는 모습을 찍어서 유투브에 올려둔 것이었다. 그 중에서 정말 노래도 좋고, 아이들 분위기도 좋아서 내가 반해버린 영상이 하나 있었다. 그 노래가 어떤 노랜지 알고 싶어서 여러모로 알아보았지만 아직까지는 알아내지 못했다.. ㅠ ㅠ 알 수 있으면 꼭 한국말로 번안해서 불러보고 싶은데!! 


아무튼, 이런 사연과 소망을 가지고 함께 노래 부르기에 대한 로망을 키워왔었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와~ 그거 좋겠다~'하고 머리 속으로 생각하거나 '와~ 진짜 멋지다~'라고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보고 말하는 건 쉬운 일이다. 그런데 내가 그것을 만들어내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게 어려운 일인줄 모르고 그냥 샤워하면서 노래하는 것 마냥 '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던 것이 오늘의 폭망을 불러온 것이렸다. 


어떤 노래를 함께 부를 것인가는 예전부터 틈틈이 생각해왔다. 아주 뚜렷한 기준을 세울 수는 없지만, 대략 내가 좋아하는 노래들로 채울 셈이었다. 그런데 '왜 이 노래냐'라고 물으면 할 말이 없을 것 같았다. 우리에게 덴마크 같은 공통의 노래집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방향을 조금 바꾸기로 했다. 아이들이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친구들에게 소개하고 함께 불러보는 것으로. 그리고 첫 시간은 내가 시범을 보이는 것으로. 이렇게 하면 내 부담도 줄고 아이들이 조금 더 신나게 참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게 또 말이 쉽지, 청소년들 입장에서는 이 기획의 하나부터 열까지가 질색팔색할 일이라는 걸 나는 왜 진작에 알지 못했던가. (알았으면 아예 엄두를 안 냈을지도 모른다. 몰랐던 게 차라리 다행.) 나름대로 동기부여-분위기조성-흥미유도-실행-피드백 이라는 흐름을 짜보기도 했으나, 내 마음 한 구석에서는 절대 내가 의도한대로 그렇게 아름답게 진행되지 않으리란 생각이 나를 두렵게 했다. 노래를 고르면서, 프린트를 하면서, 흐름을 기획하면서, 오늘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내내 두려웠다. 다음 주로 미룰까 생각하기도 했으나, 이미 지난 시간에 아이들에게 공지를 해두었고 같이 노래를 부르기를 할거라는 말에 심히 당황하는 아이들 앞에서 애써 태연한 척 했었기에, 그리고 아이들도 당황하긴 했어도 나름대로 이 시간을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부족함과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감행하기로 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오전에 장애인복지시설에서 처음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심신이 지쳐 돌아온 아이들... 아무리 재밌는 걸 하자고 해도 다 귀찮아할 분위기다. 그래도 난 용자니까 어서 준비한 걸 하자.

음악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하려고, 나아가 노래 부르는 것을 다들 좋아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고자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 그리고 각자의 노래방 18번 곡을 이야기하도록 했다. 분위기? 안 살았다.

흐으.. 이 분위기에서 준비해온 노래 가사 종이를 나눠주는 것은 정말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눈을 딱 감고 시행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다. 내 안 좋은 버릇 중에 하나가 대중들의 분위기가 좋지 않으면 준비해온 걸 자꾸 바꾼다는 것이다. 융통성이 있어서 좋을 때도 있지만, 애초에 기획한 것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는 단점이 생긴다. 그래서 이번엔 계획한대로 무조건 다 하기로 했다. 


가사를 눈으로 읽어보게 했다. 혹시 마음에 드는 가사가 있으면 말해보라고 했다. 두 명이 대답해줬다. 착한 아이들. 

그리고는 노래를 틀어줬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이기에 더 조마조마. 안 좋아하면 어떡하지? 촌스럽다고 디스하면 어떡하지? 

한 번을 다 듣고 나서 다짜고짜 불러보자고 했다. 나는 수백번 들어본 노래니까 쉽다고 느껴졌지만 아이들은 처음 들은 노래인데!! 절대 따라할 수 있을리가 없다. 


"어려워서 못 따라부른 사람? (2명) 쑥쓰러워서 못 부른 사람? (1명) 노래가 싫어서 못 부른 사람? (....) 귀찮아서 못 부른 사람? (...)"

"그래, 아무튼 이 이유 중에 하나겠지."


어디서 이런 용기가 났는지, 한 구절씩 따라불러보라고 했다. 반주도 없이 내가 라이브로 불러주면서 말이다. 하하하... 

2~3명 정도가 따라한다. 이 쯤 되서 1절만 해보는 것으로 목표를 수정했다. 그리고 다시 노래를 틀어놓고 따라부르기. 그래도 아까보단 좀 낫다! 핸드폰엔 구간 반복 기능 따윈 없어서 손으로 조심스레 재생위치를 옮겨가면서 겨우 1절을 2번 정도 불러봤다. 하아.. 여기까지 하기로 하자. 나 정말 무모하고 뻔뻔했던 것 같다. 덕분에 그래도 1절이라도 불러봤다. 이제 피드백의 시간.


얘들아 해보니까 어떤 것 같아?라고 물었다. 과연 반응을 해줄까? 무반응이 최악인데.. 


한 친구가 "그런데 왜 이걸 하는거에요?"라고 물어봐줬다. 와, 진짜 고마운 질문이었다. 대답이 충분히 설득력 있지 못할까봐 또 두렵기도 했지만 그래도 내 생각을 이야기해줄 수 있었다. 동의하든 안하든. 그리고 아까 정신이 없어서 보여주지 못했던 덴마크 에프터스콜레 친구들의 합창 영상도 보여줬다. 나처럼 삘 받는 친구가 또 있기를 바라며.


그리고 좀처럼 모임에서 얘기를 하지 않는 친구 한 명이 또 의견을 주었다. 악기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코드가 있으면 자기가 기타를 칠 줄 안다고 자원하기까지 했다! 그래 맞다. 이 아이들 음악 좋아하는 아이들이다. 나는 헛발을 디뎠지만 아이들이 좀 더 좋은 길을 제안한다. 또 한 친구가 이야기한다. 한 번 듣고 따라부르는 건 어려우니 미리 들어보고 오면 좋겠다고. 우와, 예습의 의지까지 보여준다. 너무 고맙다. 


정리하자면, 1. 미리 들어보고 온다. 2. 악보를 구해서 악기 반주에 맞춰 부른다. 이 내용을 적용해서 다음 주에 다시 한 번 해보기로 했다. 또 어색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말해준 개선점을 반영해보기로 한 것이니 의미가 있다. 


모임을 정리하고 아이들을 보내고 나니, 긴장이 풀리고 피로감이 몰려왔다. 그리고 무력감, 패배감도 몰려왔다. 지금은 좀 긍정적인 해석이 가능하지만, 아까는 정말 그 어색했던 분위기 자체의 중압감이 너무 컸다. 나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는데 여기까지가 나의 한계인 것 같아서 화가 났다. 멀리서부터 힘들게 모인 아이들의 시간과 노력을 헛되게 한 것 같아서 미안했다. 안 좋은 생각은 점점 더 깊어져서 나는 이 일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우울했다. 비참했다. 생각을 정리해야했다. 


남편을 만나 저녁을 먹으며 이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눈물이 났다. 이번주에 너무 바빴고, 지금 이렇게 멘탈어택을 받으면서도 처리해야될 일들의 압박을 받고 있다보니 괜히 서러웠다. 

감정이 격해져서 말도 안되는 자기 비하의 말들을 쏟아냈다. 한참을 그러고나니 감정이 조금 해소가 되고, 상황이 그나마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위에도 썼듯이 그래도 그 상황에서 아이들이 노력해준 것, 개선점을 말해준 것들이 생각나서 그 이야기를 남편한테 해주었다. 

남편은 교회 청소년 아이들과 4년째 함께 노래부르기를 하고 있는데 이제야 아이들이 개미소리만큼 따라한다고 했다. 그 전에도 남편이 그 얘기를 했던 것 같은데 내가 이 상황이 되고나서야 그 동안 그가 얼마나 어색하고 힘들었을지 이해가 됐다. 그리고 그게 원래 그렇게 어려운 일이구나라고 생각하니 좀 위로가 되었다. 


꽃친 쌤들 채팅창에도 내 상황을 알렸다. 함께 노래부르기 시간이 잘 진행되지 않았고 그래서 지금 마음이 힘들다고. 음악치료사이기도 한 신실쌤이 함께 노래부르기는 난다긴다 하는 음악치료사들에게도 최고난이도 수업이라고 한다. 그 얘기를 들으니 또 한번 위로가 되었다. 이어서 병구쌤이 본인이 교도소 수감생들과 싱어롱 한시간을 악몽으로 경험한 폭망선배라고 고백했다. 빵 터졌다. 폭망 간증이 이렇게 따뜻함을 주다니. 화룡점정으로 수진쌤은 말 안 통하는 몽골아이들 백명 앞에서 폭망하신 경험이 있단다. 근데 그 중에서 제일 어려운 건 청소년들 앞인 것 같다고 또 나를 한 번 더 위로해주신다. 


참, 이런 게 왜 위로가 될까? 첫번째, 나만 유독 못나서 못하는 게 아니구나. 다른 사람들한테도 어려운 일이구나. 두 번째, 지금 이렇게 힘든 내 마음을 저 사람들도 경험해봐서 알겠구나. 세 번째, 그런데 지나가면 웃을 수 있는 일이구나. 

이런 작용이 마음 속에서 일어났던 거 아닐까. 


난 오늘 왜 괴로웠을까. 늘 멋지고 싶은데 실패한 모습이 스스로 보기에도 후져서 괴로운 거였다. 그런데 사실 처음부터 다 잘하는 사람이 어딨겠나. 하는 것마다 처음부터 다 잘하면 좀 사기캐 같다. 사실 내가 진짜 멋지다고 생각되는건, 자꾸 실패하는데 끊임없이 새로운 무기를 장착하고 덤벼들어서 결국은 해내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을 봤을 때 뒷통수 한 대 딱! 맞은 기분이 들더라. 곁에서 보고 있는 나에게도 에너지를 불어넣더라. 


그런데 그 실패의 시간을 어떻게 견디면서 계속 도전할까? 방향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이 필요하다. 이 확신이 없으면 재도전은 불가능하다. 또 한가지 재도전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동료'다. 비록 실패했을지언정 그 노력에 대해 박수를 아끼지 않는 동료들. 나 혼자만의 확신으로 가는 길은 책임도 혼자 져야 하기에 두렵기도 하고 리스크도 크다. 하지만 '동료'와 함께 내린 확신이라면 약간의 방향 선회 정도는 즐거이 할 수 있다. 


나에게는 확신이 있다. 동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패는 쓰지만, 한 번의 실패가 곧바로 포기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 같다. 가다듬고 다시 한 번 간다. 두 번, 세 번 계속 간다. 그러다보면 언젠가 내가 생각지도 못한 멋진 지점에 와 있을 것만 같은 기대감이 든다. 





2017. 2. 24. 22:23. RSS feed. came from other blogs. Leave a Respo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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