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 1

  1. 2019.10.30 사랑의 뒷담화

 

"안녕하세요"

한참 집중력이 떨어져 가던 오후 3시, 올 사람이 없는데 누가 사무실에 들어온다.

"아, 쌤~ 오늘 어쩐 일이세요"

화, 금에만 꽃친에 오시는 유식쌤이 갑자기 사무실에 오셨다.

"이따 근처에서 약속이 있는데 시간이 남아서요. 밖에 조용히 있다가 갈게요."

하지만 유식쌤의 등장으로 우리는 핑계 낌에 티타임을 가졌다. 마침 내가 점심때 사온 꽈배기 간식도 있었기에.

 

쌤들 넷이서 다 같이 아이들 없는 휴식 시간을 가진 건 오랜만인 것 같다. 하지만 오늘도 우리는 열렬히 아이들 얘기를 했다.

주로 지난 모임 후에 있었던 일대일 상담 이야기였다.

 

또미는 요즘 부모님과의 갈등이 한창이다. 서로 못할 말까지 내뱉어 가면서. 이제는 왜 싸우는지 알지도 못하고 서로 증오하는 감정만 더해져 가고 있다. 하지만 얘기를 가만히 들어보면 또미는 부모님 사랑이 너무 고픈 아이다. 여름에 잠시 삼촌댁에 가 있는 동안 떨어져 있던 부모님과의 사이가 가장 애틋했다며. 가끔 3박 4일 정도 같이 여행을 하면 예쁜 사진을 찍어 부모님에게 보낸다. 어느 한 쪽만 잘못해서 싸우는 일은 없겠지만 우리는 주로 아이들을 만나기 때문에 아이들 입장에서 생각하게 된다. 그냥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예쁜 아이들을 하나부터 열까지 못마땅하게만 생각하고 야단치시는 부모님들을 보면 참 안타깝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 싶기도 하고, 오히려 너무 가까이 있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지 못하는 걸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어떻게 보면 가족의 입장에서 제3자일 수밖에 없는 우리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신다는 것이다. 결국 이걸 해결하는 것은 그 가족의 몫이겠지만.

 

한수와 상담을 하는 날 수진쌤은 장난스레 난감함을 표하셨다. 한수는 좀처럼 솔직한 마음을 이야기하지 않는 친구이기 때문에 그렇다. 멀쩡한 척, 쿨한 척, 상관없는 척하면서 하나마나한 이야기들로 시간을 때운다. 그러니 이야기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힘이 빠질 수밖에. 너 이 녀석, 그렇게 대화를 회피하기만 하면 안 되는 거야!라고 따끔한 말을 해주고 싶기도 했지만 언젠가 이 아이가 우리를 더 믿게 되면 진짜 자기 속마음을 뭐라도 얘기하겠지라는 마음으로 그 신뢰 관계를 섣불리 망쳐버리기 싫어서 싫은 소리는 꾹꾹 참았다. 혹시 오냐오냐가 아니라 쓴소리해주는 게 우리 책무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만날 때마다 하면서 말이다. 그러던 한수가 지난 시간에는 슬쩍 자기 얘기를 하더란다. 사실 수진쌤은 한 15분쯤 이야기하시고 한수가 또 시답잖은 이야기를 하면 일찍 마무리하시려고 했단다. 그런데 잠시의 침묵 후에 사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는 얘기를 했다고 한다. 물론 중간중간 센척하는 건 여전했지만, 그 정도는 한수의 자존심일 테니 지켜줘야 한다. 아무튼 은근슬쩍 우리에게 SOS 신호를 보내온 한수가 고맙고 다행이었다. 그동안 잔소리를 꾹 참아온 우리 모두에게 큰 선물이었다. 

 

그렇게 1시간을 네 명의 길잡이 교사들이 모여서 9명의 아이들을 떠올리며 이런저런 마음을 나눴다. 이 정도 비율이 되니까 한 명 한 명의 사정을 들여다보고 마음을 헤아려보고 조금 더 사려 깊게 대하는 게 가능하다. 우리도 사람이니까, 그리고 벌써 애들이 16~17이면 어른들의 마음도 막 공격하고 그러니까, 때로는 속상하고 힘들고 피하고 싶은 이슈들이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판단이 서지 않을 때, 또 다른 성숙한 시선을 가지고 나를 도와줄 팀원이 있다는 것은 정말 든든한 일이다. 우리끼리는 우스갯소리로 애들 뒷담화 한다고 말하곤 하는데 이만큼 사랑을 쏟아붓는 시간이 없다.

 

진로수업 피드백 회의를 하러 오신 지연쌤이 이런 말을 하셨다. 매번 수업이 끝나면 전체 수업과 아이들 개별에 대한 일지를 작성해서 보내주셨다. 수업에 다 참관한 게 아니었던 우리로서는 매우 도움이 되는 자료였는데 그걸 쓰는 게 힘들진 않으셨는지 여쭤보았다.

"조금 시간이 들긴 했지만 저에게도 좋은 시간이었어요. 사실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관심을 가지고 개별적인 상태를 알아차릴 수 있었던 건 일지를 정리하면서였어요. 수업을 하는 중에는 그게 잘 보이지 않거든요."

나도 이 말에 참 공감이 되었다.

 

그래서 쌤들의 아이들 뒷담화 시간은 꼬옥 필요하다. 또미 이야기를 하면서 '이렇게 예쁜 아이를, 이렇게 그냥 있기만 해도 소중한 아이를'이라는 말을 열 번도 넘게 하시는 현아쌤을 보면서 저렇게 사랑스러울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모든 아이들이 아이 10명 당 쌤 4명 정도의 비율로 전적인 사랑과 관심을 받으며 딱 1년씩만 여유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아이들의 삶은 그 시절의 기억으로 얼마나 용기 있어 질까. 이 정도의 돌봄 규모를 어떻게 현실화할 수 있을까.

 

2019. 10. 30. 00:02. RSS feed. Trackback 0 came from other blogs. Leave a Respo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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