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여행 [18.8~ ] - 2

  1. 2019.10.21 저도 '꽃친'하고 오겠습니다.
  2. 2018.10.01 먼저 보낸 사람의 이런 저런 생각

D-30

 

남편을 먼저 보낸 신고식을 호되게 치르고 있다. 출국 며칠 전부터 같이 호흡을 맞추며 정신없이 지내다가 긴장이 풀려서 그런 건지, 내게도 다가오는 여행의 시작이 갑자기 실감 나서 그런 건지, 연애를 시작한 뒤 가장 오랜 기간 동안 떨어져 있게 돼서 그런 건지, 처음으로 혼자 해외로 나간 남편이 걱정돼서 그런 건지, 아무튼 아프다.

 

하지만 나에게는 출국 전 마쳐야 하는 몇 가지 중요한 일들이 남아 있다. 그중에 하나는 '꽃다운친구들' 가족들에게 나의 여행 소식, 그리고 그로 인한 긴 부재의 소식을 알리는 일이다. 

 

'꽃다운친구들'(줄여서 꽃친)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가기 전 1년 동안 자발적인 방학을 가지며 휴식, 놀이, 자기 탐구 등의 시간을 가지는 청소년과 그 가족들의 공동체이다. 꽃친은 학교나 학원이 아니라 비영리 운동의 모양새를 가지고 있고, 나는 3년 전 꽃친이 태동할 때 이 팀에 합류하여 지금까지 이 단체의 행정간사로, 아이들의 길잡이 쌤으로, 도대체 이런 짓이 필요한 일이긴 한 건지 고민하는 자발적 연구자로 함께 일하고 있다. 

 

꽃친쌤으로 산다는 것은 1년 동안 17세 내외의 외계인 같은 아이들 10여 명과 일주일에 두 번씩 하루 종일 함께 먹고 논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1년에 네다섯 번 정도 여행을 가면 먹고 놀고 헤어지지 않고 같은 집으로 들어가 쌩얼도 보고 잠꼬대도 듣는다. 특히나 이 시간 동안 무언가 성취하는데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각 아이들의 마음과 생각에 집중하며 관계를 쌓다 보니 그냥 학생과 쌤의 관계 이상의 것이 우리에게 사이에 생겨난다. 

 

2016년에 시작된 1기, 작년의 2기를 거쳐 올 해에도 3기 친구 10명과 신나는 1년의 방학을 시작했다. 그런데 함께 시작한 마라톤을 끝까지 함께 완주하지 못하고 중간에 내가 여행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게 하려고 애초에 시작하기 전인 3월에 떠나려고도 생각했었다. 지금 와서는 반년이라도 3기 친구들을 만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언제, 어떻게 작별을 이야기해야 하는지 여간 고민이 되는 게 아니었다. 미리 말해서 마음의 준비를 하게 해야 하나? 너무 일찍 말하면 아이들이 나와의 관계에 신뢰를 잃은 채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지는 않으려나? 함께 일하는 선생님들과 의논한 끝에 결국 상반기 활동을 마무리하는 발표회 날에 이야기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날이 바로 오늘이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어제 오후부터 시작된 체기가 여전히 몸에 남아 있었다. 카톡을 보니 어제 밤늦게까지 꽃친 쌤들이 수고해주신 흔적이 남아있다. 얼른 뒷 마무리를 내가 하고 집을 나섰다. 먼 길이지만 최대한 좋은 컨디션을 만들기 위해 택시를 타기로 한다. 나의 쉼을 끊임없이 방해하는 택시 아저씨의 무례함에 무응답으로 대응했는데도 내릴 때쯤엔 헛구역질이 났다. 행사를 준비하는데 계속 헛구역질이 나서 결국 극단의 조치를 취했다. 브라를 벗었다. 여행 다닐 때는 노브라로 다닌 적이 가끔 있었지만 한국에서는 그런 적이 없는데, 이걸 풀지 않으면 계속 구역질이 나고 결국 몸을 가누지 못할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도 아니고 아이들과 그 부모님들이 나를 이상한 쌤이라고 생각하면 어쩌지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이게 살아있는 페미니즘 교육이지 싶었다. 거울 앞에 서서 한참을 티가 나나 안 나나 관찰하다가 남자들은 늘 티셔츠 겉으로 티 나게 다니는데 무슨 상관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아파 죽겠는데 속옷 하나 벗는 게 뭐 대수인가 싶었다.

 

다행히도 점점 몸이 좋아져 끝날 때쯤 되니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고, 행사도 큰 무리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마지막으로 온 가족들이 동그랗게 둘러앉아서 꽃친으로 보낸 반년의 시간의 의미를 이야기하는 써클타임 시간을 가졌다. 나의 여행 소식은 이 순서에 알리도록 되어 있었다. 내 컨디션과 씨름하며 행사 진행에만 신경 쓰느라 정작 뭐라고 이야기해야 할지 준비가 되지 않았었다. 고민 끝에 각자의 키워드를 적는 종이에 '나도 꽃친 하고 올게'라고 적었다. '학생의 본분은 공부지'라는 획일적인 고정관념, 그리고 그 안에 도사린 '뒤쳐지면 죽는다'라는 모두의 숨통을 조이는 협박 앞에서 '과연 그럴까?'를 외치며 보란 듯이 놀고 웃고 기다리고 손 잡는 그런 시간, 그런 사람들이 바로 꽃친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잘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이 나를 옥죄어 올 때, 진짜 나는 누구인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생산하는 인간이 아닌 존재하는 인간으로서 보내는 충분한 시간이란 어떤 것인가, 나와 이해관계가 전혀 없는 타인과 만나고 대화하고 우정을 나눈다는 것은 어떤 감각인가를 느끼고 싶어서 떠나는 나의 여행이야 말로 '꽃친'과 꼭 닮은꼴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숙제를 마쳤다. 모인 사람들 중에 미리 알고 있던 분은 거의 없었다. 다소 무책임하다고 느끼진 않을지 걱정했었는데 대부분 나의 취지를 잘 이해해주었고 기대 이상의 격려와 응원을 해주었다. 꽃친을 현재 진행형으로 경험하고 있는 이들이기에 나에게도 꽃친이 필요했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앞으로 어떤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것인지 어렵지 않게 이해한 것 같았다. 

 

남은 반년은 보지 못할 거라는 이야기를 전하니 은혜가 울었다. 꽃친에서 보낸 반년에 시간에 대한 자신의 키워드를 ‘소중함’이라고 적어낸 아이다. 은혜 어머니도 나에게 계속 배신이야를 외치셨다. 그게 싫지가 않다. 나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니까. 모전여전이다. 남자아이들은 헤헤거린다. 장난친다. 마지막으로 사진을 같이 찍자고 했는데 다들 너무 밝게 웃는 거 아니냐며 핀잔도 들었다. 뭐 사실 생각해보면 슬픈 일은 아니니까.

 

우리의 여행이 꽃친 아이들에게 아직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었기 때문에 남편은 출국하면서 출국 포스팅도 하지 못하고 나갔다. 아이들과 SNS 친구이기 때문이다. 이제 뭐든 올려도 된다고 얘기해줬다. 남편이 고생했다고 말해줬다. 글쎄, 고생했나? 생각보다 덤덤하게 지나간 것 같다. 지금 나는 아직 남편이 떠난 여파가 더 크다. 아이들과의 이별도 그 일이 다 벌어지고 난 후에야 여파가 밀려오겠지. 하지만 내년에 더 멋진 예지쌤이 되어 돌아오기로 했으니 그 약속을 힘으로 삼아 그리움을 잘 이겨내 봐야겠다. 

 

 

*꽃다운친구들 : http://www.kochi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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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7. 11. 

D-33 


드디어 남편을 먼저 보냈다. 다행히 저 세상으로 먼저 보낸 것은 아니고 러시아로 보냈다. 


왜 둘이 같이 떠나지 않고 남편이 한 달 먼저 떠나냐는 질문을 정말 많이 받았다. 질문을 받기 전에는 전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질문을 받고 보니 그러게 왜 그랬나 싶다.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강력한 한 가지의 이유 보다는 자잘한 여러가지 이유가 합쳐져서 이런 결정을 하게 되었다. 신혼여행 때 남편은 파리를 가고 싶어했는데 내가 반대했더니 자기 뜻을 접으면서 그럼 나중에 자기 혼자 파리를 보내달라고 하더라. 그럴 일이 있겠나 싶어서 알겠다고 했는데 그럴 일이 꽤 빨리 생긴 듯 하다. 파리 뿐만이 아니라 이미 유럽여행을 두 번이나 한 나에 비해 가보지 못한 도시들이 많은 남편이 어차피 사직하고 쉬고 있는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일찍 가서 먼저 여행하고 있기로 했다. 나는 아직 휴직이 시작되려면 한 달이 더 남았고, 이미 여행한 나라들을 또 가기 보다는 북유럽 나라들의 교육현장을 탐방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리고 또 공식적으로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솔직한 내 마음 중에 하나는, 그냥 재밌을 것 같아서이다. 뭐라도 좀 독특하게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고 남편과 6주 동안 떨어져 있다가 만나면 어떤 기분일까 궁금하기도 하고, 각자 여행하다가 만나면 할 이야기도 더 많을 것 같고 그래서! 


그런데 이렇게 시차를 두고 출발하기로 한 결정이 참 많은 것에 영향을 미쳤다. 한달 전부터 남편은 본격적인 출국 모드에 들어갔다. 매일매일의 체크리스트를 만들어서 빼놓지 않고 준비하기 위해 애썼다. 그런 그에 비해 나는 일 하느라 바쁘기도 했지만 마치 영영 여행은 떠나지도 않을 사람인 것처럼 지냈다. 애써 그의 모드에 맞춰보려고 했지만 당장 내 눈 앞에는 여행가기 전 한국에서 잘 마쳐야 할 일들이 현재진행형으로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쉽지 않았다. 


몇 주 전 미국 출장을 위해 비행기에 타고 멍하니 생각에 잠겨있다보니 지난 6개월 동안 남편의 생활, 그리고 그 마음이 어땠을지 내가 하나도 이해하고 있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미안했다. 누군가는 일 안하고 쉬고 있으니 좋겠다고 말하겠지만 생산성 신화의 나라 대한민국에서 쉰다는 게 어디 그리 말 만큼 쉬운 일이겠는가. 몸은 쉬어도 내적갈등은 심했을거다. 어디 말할 데도 없고, 가장 가까이 있다는 아내도 잘 안 들어주고. 심지어 출근 안하니 집안일을 좀 더 많이 해달라는 무언의 압박도 주고. 


출장을 다녀오니 어느덧 남편의 출국이 2주 남짓 남아있었다. 시차적응이 안되어서 초저녁부터 잠에 골아 떨어지는 생활을 1주일 정도 하고, 이제 1년 동안 보지 못할 양가 가족들과 한 주씩 여행을 다녀오니 내 남편을 떠나보낼 날이 정말 코앞이었다. 마지막 3일을 함께 보내기 위해 부랴부랴 휴가를 냈다. 딱히 나랑 할 일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심지어 사람들 만나러 다니느라 정작 나를 혼자 둔 시간이 많았지만 남편에게는 정말 오랜만에 필요할 때 내가 언제든 응답가능한 상황이라는게 좋지 않았을까 싶다. 


작별이 이렇게 간단한가. 배낭 매고 출국장 앞에서 사진 몇 장 함께 찍고 그는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공항버스에서 긴장이 풀리고 이런 저런 생각이 떠오른다. 남편의 카운트다운이 끝나고 나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나의 여행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지만 우리 둘의 여행은 시작됐다는 사실이 묘하게 모순적인 느낌을 주었다. 작년 4월 무심코 던진 말로부터 시작된 어찌보면 터무니 없는 여정이 진짜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어떤 설렘과 각오가 있는게 아니라 약간 어리둥절하다. 


시엄마와 같이 쇼핑을 하고 차를 마시고 조카들을 만나고 저녁까지 먹을 뒤 집에 돌아왔다. 집 문을 여니 기분이 멍하다. 나는 어제와 다름 없이 이 집에 있는데, 이제 그는 없다. 여름 수련회 가듯이 몇 일 뒤에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365일 이상 들어오지 않는다. 30일 뒤에는 나도 오랫동안 이 집에 들어오지 않을 준비를 마치고 그를 뒤따라 가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 두렵다. 


우리는, 남편은, 나는 진짜 이걸 원한게 맞았을까? 


지난 몇 일 동안 그를 보면서 뭔가에 쫓기는 사람 같고, 내가 억지로 그를 이 상황에 몰아 넣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두려울 것이다. 


인천공항에서 헤어진 지 약 10시간 만에 연락이 왔다. 좀 고생을 하긴 했지만 첫번째 도시의 숙소에 잘 도착했다고 한다. 기분이 어떠냐고 했더니, 솔직하게 말해도 되냐면서 ‘내가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나’ 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아하하 하고 웃어 넘겼지만 가슴이 철렁했다. 우리는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인가? 완전히 잘못 맨 단추라는 것이 있을까? 집 문을 열며 느낀 심란함이 더 증폭됐다. 지금 블라디보스톡에 함께 있었다면 ‘우리 지금 뭐한거야?’, ‘잘못되는 일이란 없을거야’하며 서로 이야기로 풀었겠지만 지금은 그의 생각을 상세히 알 길이 없으니 더 불안하다. 


뭔가 좀 비장해진다. 늘 이게 별 일이 아닌 것처럼 생각하고 대단하다고 하는 주위 사람들에게 별 거 아닌 것처럼 대답하곤 했지만 이게 정말 별 일이 아닌게 아니고, 큰 용기와 많은 준비가 필요한 일이고 무엇보다도 삶의 태도와 방식을 바꾸는 결심이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모든 사태가 다 벌어지고 난 지금에서야 실감한다. 


나는 원래 이렇게 모든 일이 벌어진 뒤에야 의미를 느끼는 사람이지만, 이런 각오와 결심, 두려움과 긴장이 발생하리라는 것을 미리 예측하는 능력을 가진 남편은 장기여행 아이디어가 나오고 결정되고 추진되는 동안 얼마나 많이 두려웠을까? 그에게는 씩씩한 내가 마치 모든 것을 다 알고 이겨낸 용기가 있는 사람으로 보였을 것이다. 나는 아직 두려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을 뿐인데. 그런데 저질러 버렸다. 이제 어쩌지?! 


침대에 누워 한참을 뒤척였다. 심란해지자면 한 없이 심란해질 수 있는 문제. 평소라면 남편에게 징징거릴 수라도 있겠지만 지금은 들어줄 사람도 없다. 나 스스로 내 마음을 달래지 않는 이상 누구도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씩씩한 생각이 올라온다. 


시작이야 어떻게 됐든 무슨 상관인가. 우리의 여행 동기가 말이 되는지 안되는지 누가 판단하겠는가. 이 시간과 돈을 쓸 만큼 이 여행이 중요한지, 타당한지 우리 스스로만 설득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타인에게 인정받을 만한 이유인지에 더 신경을 쓴 것은 아닌가 싶다. 


즐기자. 잘못 보낸 시간이란 없겠지. 즐기는 것만이 이 시간을 옳게 만드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게 되니 더 이상 지나간 일은 생각하지 않게 된다. 다가올 시간에 더 집중할 수 있다. 


지난 1년 나는 어떻게 살았는가? 일하고 살고 배웠다. 여행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만나고 대화하고 배우고. 떠돌며 기도하며 깊이 들어가는 시간이 되길 바라고 다짐하게 된다.



2018. 10. 1. 22:58. RSS feed. Trackback 0 came from other blogs. Leave a Respo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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