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들과 하는 어떤 활동이 그대로 어떤 의미가 되기는 참 어려운 것 같다. 물론 어른이 하는 일도 그렇긴 하지만, 최소한 어른은 의미를 가지고자 스스로 노력하기 때문에 기획하는 자와 반반씩 노력한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청소년들과의 활동은 기획자의 노력이 80이상을 차지하는 것 같다. 20퍼센트 이상의 노력을 기울여 의미를 획득하고자 하는 아이들은 별로 없다. 어쩌면 그게 솔직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여튼. 그런데 꽃친은 이 활동이 이 아이에게 의미가 되었는지 되지 못하였는지가 여실히 드러나는 구조이다. 그리고 그 활동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왜? 의미를 찾으려고 학교를 나왔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들도 좀 더 주체적으로 의미발견에 발 벗고 나설 필요가 있지만, 일차적으로는 지도하는 사람들의 역할이 너무나 중요하다. 의미 있을 만한 콘텐츠와 연결해주고, 아이들이 스스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장치들을 마련하고, 때로는 겪었지만 해석하지 못했던 의미들을 말로 해석해주기도 하고. 그게 참 어려운 일이다. 배워본 적도 없고 이 역량을 개발하기 위해 투자해본 적도 없으니 어려운 게 당연하다.
또 다시 모르는 것을 아는 단계에 들어왔다. 내가 알아가는 시간이 걸리는 것은 괜찮지만, 그 시간 동안 나와 함께 하는 아이들이 나의 부족함 때문에 손해를 보지는 않을지 그게 걱정이다.


2017. 2. 28. 00:46. RSS feed. came from other blogs. Leave a Respo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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