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오늘 제가 잠시 후에 있을 예배에서 대표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기도문을 쓰려고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오늘 아침에 남편과 싸운 생각만 머리 속에 가득합니다. 이런 화나는 마음을 가지고 온갖 경건한 말들로 기도문을 쓰는 건 거의 불가능입니다. 그렇다고 대표기도 자리에서 남편과 싸우고 속상한 제 마음을 이야기할 수도 없습니다. 기도 겸 자기반성을 여기에다 풀어놓고나면 기도문을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시간을 쪼개서 하나님께 제 시시콜콜한 마음을 털어놓습니다. 


오늘 아침에 교회에 가는 지하철 안에서 남편과 싸웠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다가 갑자기 왜 싸우게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누가 먼저 불편한 감정을 느꼈고, 누가 먼저 말 실수를 했으며, 누가 누구의 말을 잘못 오해하고 있는지도 정확히 생각이 나질 않습니다. 

제 생각엔 제가 말실수를 한 것 같고, 남편이 먼저 화를 낸 것 같습니다. (그래봤자 살짝 정색하는 정도입니다만, 저는 '화'로 정의합니다.) 이럴 때 남편은 곧장 진상규명을 하고 싶어합니다. 

"자 예지야, 생각해봐. 너가 이러이러한 말을 했잖아. 그 말이 이런 상황에서는 나한테 어떻게 들리겠어? 저러저러하게 들리는거야. 너가 나에 대해 가지고 있는 불만의 '논거'로 들리는거지."

'논거'라는 단어까지 써가면서 조목조목 이야기를 하는데,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인정하고 싶지가 않습니다. 나도 나름대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지금 이렇게 흥분한 상태로 얘기하면 그놈의 '논거' 된통 당하기만 할 것 같아서 차라리 입을 다뭅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공격을 시전합니다. 얼마 전 꽃친 혜진이를 상담하는데 분명 저에게 불만이 있는것 같은데 아무 말 하지 않는 혜진이 앞에서 답답했던 마음이 생각나고, 지금 꼭 제가 혜진이가 된 것 같은 생각이 들면서 혜진이 마음도 이해가 됩니다.


사실 이건 오늘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어제, 혹은 그 전부터 있었던 일이나 느꼈던 감정들 때문에 일어난 현재완료형 사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제 친구네 집 집들이를 다녀왔는데, 그 집 남편이 요리를 했습니다. 아, 요리를 한 남편이 제 친구입니다. 원래 옛날부터 요리하는걸 좋아했어요. 결혼한 다른 친구 커플도 왔는데 그 집도 남편이 요리를 합니다. 요즘은 역시 남자가 요리하는게 대세인가 보라며 남편들이 부엌에서 뭘 하는지 자기들은 아무 것도 모른다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우리집 남편은 요리기능은 없는데..'라고 말해놓고는 혹시 그렇게 말한 친구들이 무안할까봐, 그리고 스스로 위로도 할겸 '대신 화장실 청소 기능과 빨래 기능이 있지'라고 말했어요. 어제 맛있는 요리를 대접한 제 친구는 요리는 잘 하는데 빨래 기능이 없어서 본인 스웨터를 아기 옷처럼 쪼그라들게 만들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그래, 모든 가정의 모습은 다르다, 우리집은 심지어 남편이 집안일을 조금 더 많이 한다라는 생각으로 애써 마음을 달랬지만 친구가 해 준 요리가 넘나 맛있어버려서... 제가 집에 가야해서 나오는 순간까지 그 친구는 양파를 열심히 볶으며 듣도보도 못한(분명히 맛있을..) 요리를 시작하는 모습을 보여준 바람에.. 12시가 거의 다 된 시간에 집에 들어온 아내를 꾸벅꾸벅 졸다가 맞이한 우리집 남편에게 "A가 요리를 했는데 참 맛있었어. B네 집도 맨날 남편이 요리한대."라는 말을 여러번 한 모양입니다. (아니, 정확히 기억납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그런데 오늘 지하철에서 그 얘기를 왜 또 하게 되었죠? 이건 생각이 잘 안납니다. 여튼 남편은 어제 들은 그 이야기 때문에 마음이 좋지 않았겠죠. 눈치 없는 제가 별 생각없이 몇 마디 더 얹었다가 분위기.. 안 좋아져 버렸습니다. 


남편이든 아내든 서로를 다른 가정의 남편과 아내에 비교해서 말하는 것은 정말 최악입니다. 잘 알고 있는건데, 그래서 어제 같은 일이 있더라도 '아, 음식 참 맛있다'라고 생각하는데서 그쳐야지 '아, 부럽다. 나도 남편이 이런 요리 해줬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는 것은 부당하고(!!!) 더군다나 그걸 남편에게 이야기 한다는 것은.. 참 배려심 없는 아내죠. 네, 저도 압니다. 그런데 내가 배려한답시고 내 마음을 너무 숨길 필요는 없지 않을까? A처럼 맨날 요리를 해달라는 요구를 하는 것도 아니고 '가끔 나도 남편이 해주는 요리를 먹고 싶다~'라는 정도의 메세지인데 애교로 받아들여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자기 중심적인 생각을 하게됩니다. 이 심술쟁이 마음이 늘 이겨 버립니다. 그러고는 항상 남편을 속상하게 만들고, 그러면 나는 남편을 속상하게 만든 나를 자책하면서 정작 제대로 된 사과는 하지 않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남편의 마음을 세심하게 살피고 배려하는 킹왕짱 아내들이 많이 있는데 나는 왜 이모냥인가 싶어서 자존감도 낮아집니다. 내 자존감에 대해 생각하느라 또 정작 남편 마음은 뒷전입니다. 이게 저라는 사람의 현재까지의 한계겠죠. 


하나님, 저는 그래도 제법 괜찮은 사람으로 자라왔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한참 멀었나봅니다. 아니, 어쩌면 아직도 인격이 바닥수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독하게 자기 중심적입니다. 아마 이제는 낳아준 엄마보다도 남편이 이런 제 모습을 더 잘 알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꼬집어서 확인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그럴때마다 눈감아주고 그렇지 않다고 말해주고 적절한 말로 저를 북돋워주는 남편에게 늘 고마워해야 하는데, 내 모습은 바꿀 생각을 안하고 남편의 작은 실수에는 늘 불만이 가득합니다. 내가 잘못한건 알겠는데 그래서 뭐 어쩌라고, 니가 나한테 어쩔건데~ 식의 마음가짐은 증오하는 김기춘이나 마찬가지의 마음가짐인데, 제가 남편한테 참 갑질도 이런 갑질이 없네요. 

이런 모습이 저절로 좋은 아내의 모습으로 바뀌진 않겠죠? 어디서부터 어떻게 마음을 먹고 어떻게 연습을 해야할지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세상의 이런저런 가르침들에는 왠만해선 콧방귀도 안 뀌는 저이니 '자기계발서'등을 읽는다고 도움이 되진 않겠지요. 그래도 제가 살면서 하나님 말씀은 잘 들은 편인 것 같아서 이번에도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고 싶습니다. 저 그래도 이렇게 마음 먹은 정도만 해도 잘한거죠? 이제부터 부부의 관계를 통해 인간의 신비로운 성숙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코칭을 받아 하나하나 잘 해나갈 수 있겠죠? 




2016. 12. 11. 13:02. RSS feed. came from other blogs. Leave a Response.
Posted in 생각.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