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개천절을 이용해서 집 구조를 바꿨다.

 

우리 집은 작은 방 하나에 거실이 있는 사실상 1인용 아파트인데 신혼이라고 들떠서 너무 큰 침대를 사는 바람에 작은 방에 침대를 넣으면 꽉 찬다. 재작년 여름, 방에서 자는 게 너무 답답해서 획기적으로 침대를 거실에 내놓았었다. 그 상태로 2년을 넘게 지냈다. 확실히 여름에는 방에서 자는 것보다 탁 트인 느낌이 있어서 좋다. 집에 아이가 있거나 손님이 자주 오는 것도 아니니까 침대가 거실에 있다고 해서 크게 불편할 것도 없었다.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 남편은 집에서 작업을 하는 일이 많아졌다. 하지만 집이 작업하기 좋은 환경이 아니다보니 자꾸 카페를 가게 되는데 매일 한 번, 많으면 두 번씩 카페에 가게 되니 지출이 커졌다. 그래서 홈오피스에 대한 생각이 커졌나 보다.

 

그리고 9월 말, 우리가 늘 한 번 가보고 싶었던 동해시의 "단순한 진심"에 다녀오고 나서 좋은 공간에 대한 열정이 커진 것도 있다. 넓거나 세련된 가구들로 꾸며진 것이 아니지만 정말 딱 알맞은 아늑함과 편리함을 주는 단순한 진심의 비밀이 공간지기인 현우 님의 고민과 여러 번에 걸친 공간 배치 시도 끝에 나온 것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

 

남편이 주목한 것은 두 가지였다. 침대를 다시 방에 넣고 거실을 넓게 쓰자. 그리고 가장 생산성을 높여줄 데스크는 앉았을 때 창 밖이 보이는 자리에 놓자. 우리 집은 베란다로 연결되는 샤시가 매우 좁다. 일반 문 넓이 2배 정도밖에 안된다. 게다가 베란다에는 이런저런 짐들이 있기 때문에 열지 않는 문은 거의 항상 커튼으로 가려둔다. 그러니 밖을 볼 수 있는 공간은 고작 문 하나 정도의 넓이 밖에 안 되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틈으로 밖을 바라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자리에 데스크를 두기로 했다. 

 

두 가지 조건을 놓고 여러 가지 배치를 생각해보고 시도해봤다. 일단 침대를 방으로 넣고 방에 있던 책장을 밖을 뺀 다음에 이리저리 배치를 바꿔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번에 생긴 가장 큰 변화 중에 하나는 이 집으로 이사 오고 나서 항상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소파의 자리를 바꾼 것이다. 아까 말한 밖을 내다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자리에 원래 소파가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 책상을 놓기 위해 소파는 상대적으로 구석진 반대편 벽 앞으로 옮겼다.

 

개천절 아침 3시간 동안 쉴 틈 없이 움직였다. 가장 재밌었던 부분은 소파나 책장 등을 이리저리 옮기면서 실제로 앉아보고 바라보고 하면서 느낌에 맞춰 배치를 바꿨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는 단순한 진심의 현우 님이 해봤다는 방법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인테리어만큼 직관이 중요한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배치를 바꾸고 나서 우리 둘 다 매우 흡족하다. 결과가 좋은 것도 있지만 그 결과를 둘이서 만들어 냈다는 것이 내내 뿌듯하다. 정말 작은 변화이고 시도이지만 해내었다는 성공의 느낌이 이렇게 좋은 것일 줄 몰랐다. 그 성공의 느낌이 괜한 자신감을 준다. 또 해보고 싶은 마음을 준다. 더 잘해보고 싶은 마음을 준다.

 

요즘 작은 성공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한다. 충분히 가능성이 많은 사람들인데 자신을 너무 작게 생각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너무 큰 꿈만을 바라보며 이룰 수 없어 괴로워하는 주변 사람을 보며 드는 생각이다. 작은 성공부터 만들어나가면 좋을 텐데, 어쩌면 그 작은 성공만으로도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도 있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든다.

 

4명을 뽑는데 1,000명이 몰린다는 실용음악과 보컬학과를 지망한 A. 이렇게 거의 가능성 없는 시도만을 반복하다 보면 지칠 수밖에 없다. 입시철을 지나고 있는 지금, 우선은 열심히 하라고 즐기면서 하라고 응원해주었다. 혹시나 이번 해에 학교에 붙지 않는다면 가수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네가 다른 방면에서 작고 다양한 성공 경험을 쌓아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2019. 10. 21. 21:58. RSS feed. came from other blogs. Leave a Respo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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