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즈돔을 다닐 때 내가 제일 듣기 싫었던 말은 동료였다. 아무리 스타트업이고 수평적인 관계로 일하지만 엄연히 누군가는 사주이고 나는 고용된 직원인데 동료라는 말로 그 구조를 무효화시키는 것이 무책임하다고 생각했다. 


뭔가 회사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을 때 "예지씨는 동료예요, 직원이에요? 동료이고 싶으면 동료로 대접해주고 직원이고 싶으면 직원으로 대우할게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가 그 단어에 대한 혐오감이 가장 피크를 찍었던 때라고 기억한다. 그리고 위즈돔을 떠날 때까지 그 부정적인 인식은 바뀌지 않았고 그 이후로는 동료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 환경에서 일하고 있긴 하지만 가끔다가 동료라는 단어를 들으면 자동적으로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느낌을 받는다. 


동료라는 건 뭘까? 그 단어를 미워하는 마음에는 졸업 직후 마땅히 뜻을 세우지 못하고 어리버리했던 나를 회사로 끌어들이고는 책임은 져주지 못했던 사람들에 대한 원망이 담겨있다. 그러나 이 감정이 단순한 원망을 넘어서서 나를 아득한 무력감에 빠지게 만드는 더 큰 이유는 자립할 수 없었던 다른 누군가를 위즈돔에 끌어들이고 책임지지 못한 내 모습이 자꾸 생각나기 때문이다. 내 머리속에서 조차 그들 앞에 나는 떳떳할 수가 없었다. 


위즈돔은 결국 서비스를 종료했다. 그리고 지난 토요일 그 동안 위즈돔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솔직히 모임에 가기 직전까지 마음이 많이 심란했다. 가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하기도 했다. 문 닫은게 뭐 좋은 일이라고 이렇게 모여서 먹고 마시자고 하나 싶기도 했고 내가 남몰래 원망한 사람들, 그리고 나를 원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사람들을 어떤 표정으로 마주해야 하나 정말 감이 잡히질 않았다. 


내가 내린 결론은 마지막까지 남아서 회사를 지켰던 사람들의 표정을 따라가자는 것이었다. 그들이 웃으면 나도 마음을 놓고 웃으며 우리의 한 시절을 떠나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회사의 마지막을 지켰던 그들은 그 날도 여전히 바쁘게 움직이며 음식을, 물건을, 사람들을 챙겼다. 다행히 발걸음이 가벼워보였다. 


내 마음도 생각보다 좋았다. 옛날 사진들이 인화되어 있었다. 언제 이런 사진을 찍은 적이 있었나 가물가물했다. 사진 속의 내 모습, 우리들의 모습을 보니 갑자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위즈돔에서 일하는 동안 항상 고민스러웠고, 갈팡질팡했고, 잘 될 수 없을거라고 생각했었던 것만 같은데, 사진 속의 나는 꽤 즐거워보였다. 처음부터 이 사업은 잘 될 수 없는 사업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일에 청춘을 바친 우리는 바보 같은 사람들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2~3년 전의 그 시간, 이 사진 속 그 장소에 우리가 함께 있었다는 것은 썩 소중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동료라는 것은 그런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솔직히 지금 다시 그 상황에 처하면 여전히 나는 동료이기를 강요당하는 상황에 화가 날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나고나니 고맙고 미안하고 소중하다. 지나간 것은 다 아름답다는 보편 진리의 한 줄기일 수도 있겠다. 



2018. 1. 22. 22:26. RSS feed. came from other blogs. Leave a Respo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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