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편은 목사다. 남편과 나는 결혼 전부터 같은 교회를 다녔기 때문에 결혼을 하고나니 교인들은 장난 반 진심 반으로 까마득히 어린 나를 사모님이라고 부르고 싶어했다. 그래서 결혼한 다음날 교회를 갔을 때 앞에 나와 소감을 이야기해 달라셔서, 남편이 먼저 감사하다는 인사를 길게 했으니 나는 간단히 하고, 한 가지 부탁을 했다. 나는 남편을 통해 우리 교회 교인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으로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니 사모님 보다는 예지 자매, 예지 집사로 불러 주셨으면 좋겠다고. 잘한 일도 아니고 못한 일도 아니고 그냥 내가 원하는 바였고, 우리 교회 교인들과의 관계에서 그 정도는 이해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바여서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렇게 나는 남편의 직업으로 인해 내 인생이 정의되길 원하지 않았다. 

그리고 결혼 전, 친정 엄마는 남편의 직업이 목사이기 때문에 내 인생이 자유롭지 못할까봐 많이 걱정하셨다. 하지만 나는 남편이 답 안나오는 교회에서 답 안나오는 목회를 할 타입의 인간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걱정하시는 엄마 앞에서 늘 당당했다. 우리는 자유롭게, 재미있게, 새롭게 살거라고. 


어느 덧 결혼한지 3개월이 지나고 신혼기도 안정에 들어섰다. 어색하고 쑥쓰럽고 집에서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신경 쓰이던 시기를 조금 지나고 나니 이런저런 것을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머리속에 생겼다. '철들면 늙는다'를 신조로 삼아 어디서나 철없음을 무기로 삼는 나이지만, 여전히 함께 만들어나가고 싶은 꿈 같은 일들 중에 이제는 우리가 가진 시간과 자원으로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은 할 수 없는지도 가늠하고 결정을 해야한다. 때마침 요 근래 '남편은 진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냐'고 묻는 이들이 몇몇 있었다. 재밌는 것은 내 진로보다 남편 진로를 더 궁금해 한다는 것. 나야 뭐 워낙 똑부러지게 잘 할거라고 믿으셔서 그런거라고 믿고 싶긴 한데, 사실 직업이 뭐냐고 물어보면 한 30분은 설명해야 하는 나에 비해, '목사'라는 직업을 가진 남편은 '어~ 내가 목사들은 좀 알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많아서 그런 것 같다. 


문제는 그런 질문을 들은 내 마음 속에 '그러게, 내 남편은 앞으로 뭘 어떻게 할 생각인건가'라는 의문이 남는다는 것이다. 분명 연애할 때도 묻고, 결혼하고 나서도 묻고 그 때마다 자세히 설명도 듣고 동의도 되고 열심히 잘 살아봐야겠다는 다짐까지 했던 것 같은데, 뒤돌아서면 또 아리송하다. 내 해석력과 상상력의 문제인걸까, 남편의 설명력의 문제인걸까. 아리송한 기분에 사로잡혀 있다보면 '내가 비젼도 없고, 미래에 대한 준비도 없는 남자랑 결혼한거 아닌가'라는 불안함이 문득 스쳐 지나가기도 한다. 그러나 이내 '참내, 나 진짜 이상한 여자다. 그러는 나는 뭐 뚜렷한 비젼 있고 미래에 대한 준비 되있나.' 싶은 생각이 떠올라 참 다행이긴 하다. 


남편이 정치범으로 감옥에 갇혀 있어도 몇 년씩 수발을 들며 그의 신념을 지지해줬다는 아무개씨의 부인 같은 그릇은 못 되어서, 아마 앞으로도 종종 저 남자의 미래를 의심하며 책 읽는 척 하고 소파에 앉아있다가 남편이 들어간 화장실 문을 지긋이 노려보게 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모두가 다 그럴듯한 자리 하나씩 차지해보기 위해 불행속으로 성실히 뛰어들어가는 이 시대에서 그 대열에 끼지 않기로 결심한 우리 둘의 삶의 자리는 기본적으로 불안한 것이 맞지 않겠는가. 남들이 보기에는 한참 모자라 보이지만 우리 나름대로는 신념이 있고, 희미한 빛줄기 같은 희망이 있고, 아름답고 새로운 자리를 만들어보겠다는 의지가 있고 그것을 알아봐주는 사람을 만났기에 결혼한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 길에서 우리 둘이 함께 오래 즐겁게 걸어가려면 상대방의 꿈을, 미래를 내 뜻대로 해보려는 생각은 확실히 버려야겠다. 결혼해서 제일 처음으로 배운 점이 배우자의 밤잠 자는 패턴이 내가 보기에 잘못되어 보인다고 해서 고쳐주려고 노력해봤자 기분만 상하게 한다는 것, 나와 결혼하기 전 이미 그 정도는 혼자 조절할 수 있는 인간이 되었다는 것처럼 말이다. 


남편의 미래는 남편의 것이다. 그것이 내가 기대한 방향으로 나가지 않을지라도, 혹은 실패할 지라도 말이다. 

대신 제일 먼저, 그리고 제일 끝까지 이야기를 들어주는 역할은 나의 것으로 삼겠다. 

2016. 12. 6. 00:48. RSS feed. came from other blogs. Leave a Respo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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