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사이좋게 교회 가는 길. 하지만 희한하게도 이 길이 종종 논쟁의 길, 싸움의 길이 되기도 한다. 오늘은 그보다 조금 강도가 약한 건설적 토론의 길이었다. 주제는 도대체 행복이라는 게 뭐냐. 어쩌다 시작된 토론인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남편의 주장은 '행복'이라는 것은 근대에 '공리주의'를 주장하면서 만들어진 개념이며 사실 매우 정체가 모호하고 누구도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쫓아가는데 급급한 개념이라고 했다. 주변을 보면 정말 그런 것 같다. 인생의 목표는 행복이라고 하며 다들 행복을 추구하는 삶을 좋은 삶으로 분류하는데 정작 행복에 대한 정의는 제각각이며 매우 주관적이다. 결국 행복에 대해 이야기 하기 위해서는 '당신에게 행복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져서 대답을 다 모아 대충 이런 느낌이다라고 말하는 수 밖에 없다. 

행복은 초콜렛을 먹는 거에요.

행복은 엄마가 아빠 셔츠의 냄새를 맡는 거에요.

뭐 이런 식으로.

행복스트레스라는 것도 있다. 행복하기 위해 노력하는데 도무지 행복해지지 않아서 힘들다는 것이다. 나는 불행한데 주변 사람들은 행복한 것 같아서 더 불행하다. 행복보다는 보다 정확한 상태를 나타내는 말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기쁨, 즐거움, 편안함 이런식으로 말이다. 

나도 어느 정도 동의한다. 그런데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 


작년이었나,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행복한 나라 부탄으로의 여행" 뭐 이런 포스팅을 본 적이 있었다. 작기도 하고 가난하기도 하고 아직 왕이 존재하는 전근대적 나라인데 이 나라 사람들이 그렇게 행복하다고 한다. 작고 가난해도 경쟁이 치열하지 않고 비교적 평등하고 자연을 맘껏 누릴 수 있어서 행복한가보다 싶었다. 이 곳에 가면 행복의 비밀을 알 수 있을까하는 궁금증이 생겼지만 자유여행이 불가능하고 공식가이드 비용이 1일 200불이라길래 여행은 살포시 미뤄두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한동안 소식이 뜸하던 한 지인(이름도 한지인이야...)이 갑자기 무슨 행사에 오라고 연락을 했다. 본인이 소식 없던 동안 사실 영국의 슈마허칼리지와 부탄의 GNH(Gross National Happiness)센터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Good Livelihood 라는 코스에서 공부를 했다고 한다. 그러고보니 한동안 이 분 인스타에 계속 부탄 사진이 올라와서 여행가셨나 했더니 공부하러 가신 거였다. 거기서 뭐 배웠냐고 하니 '잘 사는 법' 배웠다고 한다. 오, 그런걸 가르쳐주는 곳이 있나. 그런 방법 가르쳐주는 것은 별로 믿지 않는 편이지만 이번 행사의 주제인 행복인덱스에 관해서는 관심이 갔다. 

그 행사에 가서 부탄의 국왕이 나라의 발전 정도를 경제량(GDP)으로만 측정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GNH라는 개념을 생각해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면 어떤 기업이 환경을 파괴하는 생산활동을 한다고 하자. 이 기업이 하는 일은 나쁜 일이지만 GDP로만 보자는 +라는 것이다. 그리고 주부가 집에서 열심히 가정을 돌보는 일은 분명 삶을 이롭게 하는 일인데 GDP에는 전혀 잡히지 않는다. 선출된 대통령이 책임감으로 일하는 것보다 왕위를 물려받은 왕이 백성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큰가보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혹시 이반 일리치라도 공부하신 건 아닌지.. 

GNH를 증진시키기 위해 전세계 석학들을 초청하여 행복을 측정하는 지표들을 개발했다고 한다. 4개의 기둥과 9개의 영역이 있는데 여기에는 신뢰할만한 정치, 생활수준, 커뮤니티, 시간활용 등등이 포함된다. 모든 정책을 만들 때 이 기준에 따라서 평가하게 되며 몇 년 마다 전 국민 상대로 이 지표를 기준으로 한 설문조사를 실시해서 행복의 정도를 측정한다. 사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라기 보다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나라에서 행복도를 관리하는 나라라고 해야 맞겠다. 아무래도 신경써서 관리한다면 증진될 가능성이 크겠지. 

이 행사에 다녀오고 나서 이 방법이 꽤 유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와 관련해서 지인님과 꽃친 아이들과 뭔가를 꿍짝꿍짝 꾸며볼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오늘 아침 남편과 한 대화와 행복인덱스가 내 마음 속에 사이좋게 공존하지를 못하는 것이다. 

사실 이런 얘기를 남편에게 처음 듣는 것은 아니다. 행복을 추구하는 삶을 의심하게 하는 계기는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내 입장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다. 당장 급한 일은 아니었으니까 천천히 생각해보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최근에 들어서는 내가 분명한 입장을 가져야 하는 상황이 자꾸 생기는 것 같다. 

자기는 행복한 삶을 추구한다고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B. 하지만 그 아이가 현재 보여주는 모습 뭔가 답답하다. 어떤 이질적인 것이 존재하는 게 분명하다. 그런데 그게 뭐라고 딱 꼬집어서 말해줄 수가 없다. B뿐만 아니라 이 시대 청소년들에게 행복은 큰 화두이다. 행복한 삶을 살으라고 교육하는데 왜 아이들 사이에 혐오가, 폭력이, 조급함과 두려움이 늘어날까. 

이것을 설명해낼 수 있는 말이 나에게는 필요하다. 

2017. 10. 24. 23:46. RSS feed. came from other blogs. Leave a Response.
Posted in 쓰기 시간. Top